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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하 시집 <물 따라 바람같이> ‘작품해설’/정성수(丁成秀)
2012-03-04 10:54:44
chungpoet

조회:1339
추천:120

문태하 시집 <물 따라 바람같이>  ‘작품해설’

- 서정으로 만나는 과거의 현재진행형

정성수 (丁成秀, 시인)

 

  누가 뭐래도 시의 기본 정체성은 ‘서정(抒情)’이다.  지금은 소설로 바뀌어서 거의 사라져버린 ‘서사시’,  그리고 희곡에 편입(?)되어 역시 거의 사라지고 만 ‘극시’는 물론 일반적 의미의 ‘서정시’는 그 생명이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바로 시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서정성’에 있다.

 이미 오래 전에 한양대 윤재근 교수는 ‘남는 것은 서정시뿐’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시가 여러 문학 장르의 꽃으로 비유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시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서정성’ 때문일 것이다.

 일반사회에서 시가 문자나 언어, 혹은 그 어떤 상황에 대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쓰이는 이유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불과 단 한 줄의 시, 또는 몇 구절의 시가 독자에게 오래오래 감동을 전해주거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 역시 놀라운 감성의 소용돌이인 ‘서정성’ 속에서 이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시인 나름의 독특한 시적 해석과 표현의 묘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요즈음 한국시단 일각에서는 그러한 시의 독특한 위대성(!)을 내팽개치고 비시적 시, 즉 서정성이나 시적 축약, 감동이나 신선한 충격이 사라진 일반 ‘산문’이나 다름없는 평범한 글을 산문시나 자유시, 또는 정형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글들이 색다르거나 특별한 실험시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주제나 내용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시적 감성도 없는데다가 신선한 심상(이미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를 횡설수설, 중언부언 사설을 늘어놓거나 안이하기 짝이 없는 개인적 고백이나 평범한 서술로 이루어진 ‘시 아닌 시’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의 시다움이 사라진 시는 사실상 이미 스스로 시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시를 죽이고 시인 자신을 죽이고 독자를 죽이는 참으로 무책임한 행위이다.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직무유기요 근무태만이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 한국시단의 그런 비시적 병폐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시인이나 평론가나 학자는 거의 없다.  중앙대 이승하 교수와 서울대 오세영 교수,  그리고 문단 변방에 서있는 필자가 그 점을 지적하고 거론한 적이 있는 정도이다.

 시가 시답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시가 아니다. 그런 작품은 시가 아니라 ‘잡문’이다.  ‘잡문’이 좋은 시 행세를 하고 문학상을 받고 일부 평론가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시’를 위해서 ‘독자’를 위해서 또한 ‘한국문단’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시가 시다운 가운데 ‘좋은 시’, 혹은 ‘평범한 시’ 등의 시적 평가가 가능한 일이다. 물이 물답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생명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태하의 시집 속에 시로서의 서정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다음 작품을 보기로 하자.

먼 데 있는 옛 벗이

밤늦게 찾아왔나

문을 두드리는데

귀를 기울여도

인기척 없다

 

무정한

이 친구야

내다보지

않는다고

그냥 돌아가느냐

 

말 달리는 소리 바람이 인다

그래, 마냥 갈 수 없어 다시 돌아오는가

일어나 문을 여니

감나무 잎새에

비 듣는 소리.

                                                                                                                -「가을 밤비」전문

  3연으로 이루어진 서정시, 우선 이 아름다운 한 편의 시 속엔 군더더기가 없다.  꼭 필요한 말, 시적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만으로 한 편의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낸 것이다.  말하자면 전통적 서정시의 형식과 표현으로서 시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을 보여준 셈이다.

 ‘밤비’를 ‘옛 벗’으로 의인화시켜 전개한 무기교의 기교도 예사롭지 않다.  3연의 마지막 2행, ‘감나무 잎새에 비 듣는 소리.’는 결구적 표현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조금도 난해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비 내리는 가을날 밤의 정서,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따뜻한 우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다음 시를 보자.

저녁 먹고 마실 나온

산골처녀 함박웃음

아장 맵시 걸어가다

산들바람 널브러진

오동잎새 걸려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선 저만치

가죽나무 타고 긴 여름날

사랑으로 감싸안은 손마디에

둥그러니 하얀 달이

또 하나 걸렸다

                                                                                                                  -「가을•달•박」전문

 대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시의 훌륭한 소재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아무리 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듯이 아무리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듯이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듯이 대자연은 아무리 노래해도 질리지 않는 대단히 소중한 그 무엇이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까지도 대자연의 ‘그 무엇’을 자기식대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문태하 역시 가을의 대자연을 자기 식대로 노래한다.  ‘가을 달’을 ‘저녁 먹고 마실 나온/산골 처녀 함박웃음’에 비유하고 나서 ‘아장 맵시 걸어가다/산들바람 널브러진/오동잎새(에) 걸려’라는 기막힌 표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귀뚜라미 소리에/귀 기울이고 선 저만치/가죽나무 타고 긴 여름날/사랑으로 감싸안은 손마디에/둥그러니 하얀 달이/또 하나 걸렸다’라고 ‘박’을 달로 비유, 가을 밤에 뜬 두 개의 ‘달’을 아름답게 노래한다.  이런 개성적인 상황 묘사만으로도 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황홀하게 환기시켜준다. 그것이 시가 지닌 훌륭한 미덕 중의 하나이다.  다음 시를 보자.

화려하게 분단장 곱게 한

정상에서 내려서는

애절하게 아름다운

퇴영(退嬰)의 발자국

 

나뭇가지가 흐느낀다.

                                                                                                     -「낙엽 2」전문

 2연으로 된 시이지만 실제로는 5행밖에 안 되는 짧은 작품이다.  ‘낙엽’이 질 때, 그 ‘애절하게 아름다운/퇴영(退嬰)의 발자국’ 때문에 ‘나뭇가지가 흐느낀다.’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의인화시켜 이승을 떠나가는 ‘낙엽’의 슬픔을 ‘나뭇가지’가 대신 ‘흐느끼는’ 것으로 표현, 슬픔의 대상화, 객관화를 이루어냈다. 다음 시를 보자.

외로움의 절반은 그리움

그리움 한 쪽이 쓸쓸한 내

갈 길 없어 올라선 언덕바지

내려서는 산은 왜 자꾸만

무지개 빛깔로 물들려 하나

                                                                                                            - 관  부분

  "외로움의 절반은 그리움’이라니!  멋지고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이런 표현은 아마도 이 시인의 인간적 연륜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시는 사실 때로는 ‘지혜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 시인은 또 ‘그리움 반쪽’은 ‘쓸쓸’함이라고 표현한다.  역시 개성적이고 적절한 표현이다.  ‘갈 길 없어 올라선 언덕바지/내려서는 산은 왜 자꾸만/ 무지개 빛깔로 물들려 하나’.

 "갈 길 없어 올’랐다가 갈 길 없어 내려가는 하산의 심상(이미지)을 ‘무지개 빛깔’이라는 희망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삶에 대한 사랑은 아름답고 따뜻하다. 다음 시를 보자.

조국 강토를

뒤흔든 포화(砲火)와

탱크 굉음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한 피란 행렬

아수라(阿修羅)에 뒹구는 시신들

 

밀고 밀리던 전황도(戰況圖)

여기에 생생하게 화면(畵面)으로 살아있다

 

남도 천리 뉘 어깨에

죽기 위해 매달려 온 밥통

살기 위한 총칼과

땀 베인 군복        

군화, 나침반, 탄띠…

                                                                                                                - 거제 포로수용소 1」부분

 지난 1950년에 발발한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을 노래한 이 시는 전쟁의 참상을 사실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반전사상’을 드러내준다.  ‘전쟁’은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창조한 모든 상황들 중에서 가장 추악한 것 중의 하나가 아닌가.

 쟁에 대한 역사의식은 아직도 휴전 상태인 남북한의 적대상황 속에서 통일의 그날까지 지울 수 없는 일종의 자가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를 보자.

피에 젖었던 초연

묻은 저 산과 들을

건너오고 건너가서

할아버지 입었던

빛바랜 옛 모시 바지저고리

다시 하얗게 헹구어 입고

너와 내가 진종일 얼싸안고

눈물범벅이 된

춤을 출 수 있도록

 

우리들의 통일은

이념 때 묻지 않은

홀딱 벗은

벌거숭이로 와야 한다

                                                                                                           - 벌거숭이로 오라」부분

  "6.25전쟁’을 노래한 시인은 이번에는 ‘남북통일’을 노래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치욕스러운 오명의 당사자인 대한민국과 북한은 전쟁이 일어난 지 6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일은커녕 살아남은 이산가족 상봉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념(이데올로기)’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핏줄보다 앞서는 것인가.  시대의 희생양으로 본의 아니게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의 사랑과 눈물과 삶보다 앞서는 것인가.  앞서야만 하는 것인가.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우리들의 통일은/이념 때 묻지 않은/홀딱 벗은/벌거숭이로 와야 한다’고 노래한다.  순수한 민족애 하나만으로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시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다음 시를 보자.

오고 가도 끝없는

어려운 미궁만을 남긴 채로

흘러가는 세월에 빌붙어 살아가는

미물 같은 나는

어디쯤의 정류장에 내릴 것이냐

 

우주선 공기가 너무 갑갑하구나

창을 열어야겠다

                                                                                                                      - 우주선 창가에 서서」부분

 지구를 하나의 우주선에 비유한 이 시는 ‘오고 가도 끝없는 미궁’, ‘흘러가는 세월에 빌붙어 살아가는/미물 같은 나’ 등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화자 자신에 대한 겸허 속에서 ‘어디쯤의 정류장에 내릴 것이냐’고 생명체 모두에게 주어진 죽음의 숙명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러한 회의와 자성과 겸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사는 보편적 정서로서 ‘생각하는 갈대(파스칼)’로서의 인간의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자는 ‘우주선 공기가 너무 갑갑하구나/창을 열어야겠다’라고 이상향에 대한 꿈을 반어적으로 노래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 시를 보자.

옛날에나 지금이나

사정은 있었고 사정도 했다

사정 안 했는데 사정하고

사정한다 하니 사정하고

사정하지 않았는데 사정하고

사정만 하고 사정은 안 하고 사정을 한다

사정하면 사정 안 했다고 하고

사정을 사정사정한다

사정 안 하면 사정하라 하고

사정하면 사정하고

사정하면 사정을 사정한다

정사는 안 하고 정사만 하고 사정만 하다 정사한다

 

사정에 서면 표적이 보이는

사정은 있었고 사정도 있었다

사정 안 하면 사정하고

사정하면 사정을 사정하고

사정하면 사정하고 죽기도 하고

사정하면 사정사정하다 살기도 했지

사정을 사정하고 죽은 자도 사정했고

사정하고 죽은 억울한 사정은

살풀이 사정하고

사정은 시원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며

억울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처녀 애 배도 사정은 있고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사정은 다 있다

事情 司正 査定 私情 射程 射亭 査正 射精은

                                                                                                                     "혼돈(混沌)」전문

  "혼돈(混沌)’이라는 직설적 제목이 말해주듯 이 시의 화자는 세상사의 ‘혼돈’을 ‘동음이의어(한자)’ 8개를 활용하여 대단히 재미있게 표현한다.  아마도 이 시집 중에서 가장 특이한 시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8개의 동음이의어를 어느 시 구절에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이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어떤 구절에 어떤 한자 단어를 넣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 시를 감상하는 특별한 재미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다음 시를 보자.

 언제라도

어디에나

무엇에도

어떤 때나

 

어떻게 해도

항시 모자람이 넘치는

지상(至上)의 보석

자로 잴 수도 달아볼 수도 없는

아름다운 무형의 결정체

 

그러나 때로는

가슴 설레임의 기다림을

떠나보내는 허무(虛無)

환희에 찬 웃음 뒤에

피는 끝없는 울음꽃

 

그래도 갈망하는 모든 것의 포용(包容)

없어서는 안 될 인생(人生)의 약(藥)인 것을

사랑

한다는 것은.

                                                                                                        -사랑」전문

  잘 아시다시피 기독교의 기본정신인 ‘박애’나 불교의 ‘자비’나 유교의 ‘인’이나 모두 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뿌리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 누구든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주는 가장 이상적인 무지갯빛 다리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이 지구별 위에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인류사의 영원한 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실 문학, 미술, 음악 등 모든 예술들의 궁극적인 주제는 넓은 의미의 ‘사랑’이 아닌가.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사랑’을 ‘어떻게 해도/항시 모자람이 넘치는/지상(至上)의 보석’이라고 극찬한다.  또한 ‘사랑’을 ‘자로 잴 수도 달아볼 수도 없는/아름다운 무형의 결정체’라고 예찬한다.

 "사랑’할 때의 ‘환희에 찬 웃음’과 이별 뒤에 오는 ‘끝없는 울음꽃’을 대비시킨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의 포용(包容)’이며 ‘없어서는 안 될 인생(人生)의 약(藥)’이라고 선언한다.  이 세상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인간의 모든 결점을 상쇄시키는 가장 탁월한 선의의 무기이자 인간의 인간다운 영혼을 승화시켜주는 아주 특별한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문태하의 다양한 시편들을 읽어나가며 필자 또한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시인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공감하면서 잠시나마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건져올리는 과거의 현재진행형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뜻있고 행복한 기회였다.  이 나라의 독자들과 함께 문태하의 시 작업이 더욱 눈부신 감동의 광채로 빛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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