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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풍자/ 맹식이/ 정연균
2010-04-02 14:14:37
dusrbs0324

조회:1322
추천:85

맹식이는 컴맹에 가까운 사내였다.

그런 그가 컴퓨터의 도사들이나 할 법한 채팅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였다.

어느 날 업무상, 급히 확인해야 할 메일이 있어서 시내의 한 피시방을 찾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맹식이의 바로 옆자리에는 날씬빠꼼 호리낭창한 미모의 한 아가씨가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기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연방 생글생글 웃어가며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어차피 한 시간 셈은 기본이다 싶어, 아가씨가 눈치 못 채게끔 곁눈질로 슬금슬금 화면을 훔쳐보았다.

워낙 천리안을 가진 맹식이기에 대충 봐도 낯선 사내놈과 소위 채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쉽게 짐작이 되었다. 또한 내용상으로 봤을 때 상대편은 맹식이만큼이나 나이가 지긋한 놈이라는 것도 감으로 때려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날씬빠꼼 호리낭창은 핸드폰을 꾹꾹 누르더니

"호호.. 전번이 진짜네. 지금 명동이라고요? 정말로 멋진데 데리구 가 주실거예요? 그럼 어디서 뵐까요?"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발딱 일어나 빽을 달랑거리며 또각또각 피시방을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맹식이는 야릇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아까 그 날씬빠꼼 호리낭창이 들어갔을만한 사이트를 열심히 뒤진 끝에 드디어 채팅방이라는 곳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동의도 하고 밝히라는 것도 밝히고 결재 하라 해서 결재도 마쳤다.

이윽고 여자, 아니 妖자들이 우글대는 채팅방에서 맹식이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난생처음 채팅이라는 걸 시도해본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아까 그 "날씬빠꼼 호리낭창" 그런 놈 하나만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삐리릭!

갑자기 화면에 네모난 창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 방가방가~^^*"

"올커니! 드디어 한 놈 걸렸나보다."

맹식이는 희색이 만면하여 어설픈 자판 실력이지만 통빡을 나름대로 굴리며 열심히 독수리 타법을 구사해서 보냈다. 한참의 이런저런 대화 끝에 상대편이 직접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그렇지, 고거이 순선가보다.’

맹식이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토닥토닥 쳐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정말 벨이 울려왔다.

"아, 여보세요."

맹식이는 차분하게, 그러나 최대한 중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호호...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술은 좀 하시는 편인가요?"

"허허... 장부가 어찌 주색을 마다하리이까?"

"호호... 색도 많이 밝히시나 봐?"

"본시 영웅호걸은 그게 기본 아니겠소?"

"치, 본인이 무슨 변강쇠라도 되시나?"

"허허...장부라면 그야 당연한 일인 것을..."

"확인 없이야 알 수 있나요? 입으로만 오른 양긴지..."

"이것 참... 어떻게 해야 믿으시려나?"

"그럼 우리 지금 함 볼까요?"

‘아, 채팅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맹식이는 내심 감탄하며 아예 내친김에 약속시간과 장소까지 잡아버렸다. 자신의 옷차림새를 충실히 설명해주고 약속을 정한 종각으로 서둘러 나섰다.

 

세계 10대 도시에 당당히 들어간다는 화려하고도 복잡한 도시. 보통시도 아니고 특별한 특별시 서울이다.

그리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의 반은 분명 여자다. 바야흐로 음력 춘삼월이 눈앞에 다가오니 여인들의 노출도 더욱 과감해졌다. 또 요염한 몸짱들의 쾌활한 활보를 보노라면 가히 여인들의 천국이 따로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해가 늬엇늬엇 지고 있을 무렵의 종각은 많은 선남선녀들의 약속장소로 요긴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맹식이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는 나이는 삼십 중반 쯤 되고 풍만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다가 설 낯선 여인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았다.

우선 만나면 맨 처음 인사는 어찌해야 멋있을까?

그냥 양코백이들처럼 살포시 안으며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는 것도 좋겠지. 아니면 조용히 악수를 청하며 점잖게 맞이하는 건 어떨까? 목소리를 들어보니 감칠맛이 착착 붙던데 아무렴 무게 잡는 것 보다는 가볍게 대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또 데이트 코스는 어디로 잡을까. 북악 스카이웨이가 좋을까, 아니면 남산 타워를 한 바퀴 돌아 깨끗한 러브호텔로 곧장 직진을 한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맹식이는 혼자 사뿐사뿐 걸어오는 여인이 눈에 뜨이면 혹 저 여자가 아닐까 싶어 잔뜩 긴장이 되곤 하였다.

-찌릉찌릉!

이윽고 손에 쥔 핸드폰에서 신호가 터졌다.

"지금 어디 계세요?"

끈적끈적한 코맹맹이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 맹식이의 고막에 대고 속삭였다. 드디어 한참의 통화 끝에 맹식이의 앞에 나타난 하나의 얼굴.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맹식이는 자신의 두 눈을 정녕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시 사람은, 더더구나 여자는, 원천적으로 얼굴 전체에서 어느 곳 하나는 분명 돋보이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조물주가 몸살감기에 만사가 귀찮아 자다 말고 발로 대충대충 빚었다 해도 여자는 여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맹식이는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그렇게 전체적으로 망가진 얼굴, 아니 그렇게 부적절한 모양새의 얼굴은 일찍이 본적이 없었다.

얼굴은 말상이요 피부는 맨날 조맞았는지 푸르딩딩하다 못해 아예 거무틱틱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눈은 뱀눈처럼 찢어진데다 눈까풀이 전혀 없어 잘 때 감기기나 할런지 모를 눈이었고 이는 옹니에다 코는 매부리 닮은 화살코다. 반갑다고 배시시 웃긴 하는데 그 웃는 얼굴이 더 찌그러져 보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아!"

맹식이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적어도 체팅방에 나오는 여시들은 비록 머리 속에는 똥만 그득하더라도 외모는 그런대로 봐 줄만하려니 맹식이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래도 인간성 좋기로 둘 째 가라면 서러운 맹식이가 아니던가?

"반갑소. 우리 저기로 들어가서 호프나 한 잔 합시다."

섣불리 만나자고 한 자신에게도 불찰이 있었으니 그냥 이대로 도망을 친다는 건 차마 장부가 취할 자세는 아니었다. 다만 빨리 아무 곳이나 어두운 곳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시쳇말로 쪽 팔려서도 밝은 곳에서는 그녀와 잠시라도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호프집 여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와서는 맹식이 얼굴 한 번 보구 여자 얼굴 한 번 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던지며 사라졌다.

여자는 마치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노골적으로 덤벼왔다. 술이 나오고 나서는 아예 여자가 맹식이 옆으로 대뜸 옮겨 앉았다. 정말 강쇠인지 직접 확인이라도 해 보겠다는 것인지 여자는 맹식이의 허리춤을 더듬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수작을 걸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조명이 어둡다 해도, 아무리 맹식이가 몇 달간 독수의 외로움을 견뎠다 해도, 아무리 이 여자의 거시기가 無主空處라 해도 천길만길 달아난 마음이 좀체 살아날 리 없었으니 결국 애쓰는 여인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미 고개 숙인 맹식이의 거시기는 자라 목 숨듯이 어디론가 움츠려 미동도 아니 했다.

"어머, 우째 기별이 없으실까? 강쇠보고 고개 좀 들어보라고 해여."

맹식이는 파고드는 여자의 손을 밀어내며 조용히 일어섰다.

"잠시 화장실 좀..."

다행이 화장실은 출입문 밖에 있었다. 맹식이는 키를 받아 쥐고는 밖으로 나가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넣었다.

"주인장, 잠깐만 밖으로..."

여주인에게 화장실 키와 술값을 지불한 맹식이는 서둘러 종각을 떠나왔다.

맹식이와 전혀 상관없는 거리의 여자들은 여전히 풍만한 가슴을 출렁이며 요염한 자태로 서울의 밤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후, 맹식이는 느닷없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대번 듣기에도 건달냄새가 묻어나는 끈적끈적한 목소리였다.

"내가 귀신도 아니고 말을 해야 알지."

다짜고짜 날아오는 반말에 맹식이도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야, 이 새끼야! 너 어제 종각에서 내 마누라 만났지?"

"? ...."

"너 가정 있는 여자 불러내서 찝쩍거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거기 어디야? 마누라가 다 불었어 임마. 너거 두 연놈 간통으로 콱 쳐 넣어버릴 테니 각오하고 있어 이 나쁜 시끼."

맹식이는 애써 어제 일을 잊고 있다가 은근히 부아가 나서 한마디 되받았다.

"네 놈이 남편인지 기둥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 너 참 훌륭한 놈이다. 그런데 제발 그 여자 밖으로는 내 돌리지 말고 그냥 집안에서만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더구나."

말을 마친 맹식이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곧 이어 또 벨이 울렸다. 이번엔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쩌죠? 어젯밤 남편 닦달에 못 이겨 우리 일 죄다 말해 버렸어요. 미안해요. 남편이 우리가 간 여관 주인한테 확인까지 다 했구. 이젠 어떡하죠 우리?"

맹식이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더러는 세상에 꽃뱀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저런 요상한 꽃뱀은 정말 상상도 못해 본 맹식이었다.

"여보시오. 그만 좀 웃기고 이쯤에서 장난 거둡시다 예?"

다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날의 상황이 장난으로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들이 맹식이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은 전화가 있고나서 약 일주일쯤 후였다. 들어서는 사내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빽바지를 입은 땅딸한 체구였고 그 뒤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그 요상한 얼굴도 다시 맹식이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내는 맹식이에게 다짜고짜 서류봉투 하나를 쑥 디밀었다. 겉장에는 고소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좋은 말로 끝내려구 했는데 당신 태도가 영 맘에 안 들어. 그래서 지금 경찰서로 접수하러 간다는 최후통첩이야. 너거 두 연놈, 어디 한 번 개망신 좀 당해 봐."

사내는 남의 사무실에서 기본 예의는 갖추려는 듯 목소리는 깔았지만 대신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맹식이가 대충 훑어보니 고소장에는 진짜로 어느 여관 주인의 확인서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막혔지만 직원들 이목도 있는 터라 대놓고 큰소리를 칠 수도 없었다. 물론 무고로 두 연놈을 고소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로 경찰서에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 온전한 정신으로는 차마 못할 노릇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내게 바라는 게 뭐요?"

맹식이가 체념하듯 사내에게 물었다.

"진적에 그러실 일이지. 음...5백만 내슈.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흐르지만 한 번만은 눈 감아 줄 용의도 있으니까."

"그건 말이 안 되오. 난 저 여자와 손도 안 잡아 봤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거 아니오?"

그 말끝에 사내가 다짜고짜 옆에 앉은 여자의 뺨을 우악스럽게 후려쳤다.

"이년아. 이 앞에서 똑바로 다시 얘기 해. 얼른!"

여자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발뺌해도 다 소용 없어요. 제가 전부 털어 놓았어요. 흐흑.."

맹식은 서둘러 그들의 소란을 막았다 "

아, 알았소."

맹식은 다시 사내에게 말했다. “

그럼 내가 2백을 줄 테니 여기서 그냥 조용히 나가주시오."

"2백은 말도 안 되고 4백이면 기꺼이 합의를 봐 주겠소."

"진짜 내게 지금 2백 50밖엔 없소."

"좋아, 최후통첩으로 3백! 그 알로는 나도 절대 안 되겠어."

이렇게 하여 맹식이는 그 요상한 여자 얼굴 잠시 구경한 값으로 거금 3백만원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뒤를 따라 나서던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는 맹식이에게 감기지도 않는 눈을 찡긋하더니 한마디 희롱을 건넸다.

"멍충이, 달랄 때 강쇠나 한번 줘 보지." 終

계간 <풍자문학> 2010년 봄호.

http://blog.daum.net/dusrbs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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