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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벌 소동 추억 / 이화국
2010-04-07 20:02:25
38hwakook

조회:1505
추천:85

               벌 소동 추억

어딘가를 날고 날아서 오느라고 이렇게 늦게 도착했을까. 고향에서 총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한 날부터 윤정옥의 가슴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육 학년, 육이오 사변이 난 때를 향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몇 회 졸업생이 되는지는 몰라도 1954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부터 한 해가 모자르는 사십 년 만의 일인 것이다.

 당시의 시골 소읍 남녀 공학인 중학교 학창시절의 고운 추억이 색종이처럼 접혀 가슴 밑바닥에 늘 자리해 있었기야 했다. 또 같은 학년 중 서울에 올라와 사는 여자 동창 끼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져온지 여러 해 되기도 하지만 무궁화 기차 한 량을 전세 내어 모교에 내려가 총동문회를 갖는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머루눈을 하고 대평리에서 다니던 그 애도 올까. 만나면 알아 볼 수 있을까. 거울 앞에 서보니 동갑들보다 겉늙어 다 세어버린 머리털, 거기다가 무슨 고집인지 그 흔한 염색도 하지 않아 앞뒤 아무리 보아도 백발 할머니가 분명한데 행여 예뻐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서랍장을 열고 스커트를 내어 입었다, 바지를 꿰어봤다 하다가는 동행할 친구를 찾으려 여기저기에 다이얼을 돌린다.

 명희는 집에 없고, 영자는 허리 아파 꼼짝 못하고, 준옥이는 딸 해산 산바라지 하러 가고, 영규는 시모님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는 등... 또 누구는 절대로 주일을 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에이 ooo 것들이라니..."

 마지막으로 동의를 얻은게 김경숙이었다.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만나기로 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지런을 떤만큼 약속 시간 훨씬 전에 시계탑 앞에 설 수 있었다. 모든 약속은 시계탑 아래서만 이루어지는지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며 오락가락 하고있었다.

 "워매 이게 얼매만이랴아"

"워째 혼자 온댜아. 이번인 석태 꼭 데리고 오라니께에"

"내가 전화 여러 번 했응께 아마 올껴어"

동향 사람 만나자 사투리가 저절로 튀어나올테지만 돌아보니 모두 낯설어도 귀에 익은 충청도 사투리

정겨운 목소리들이었다.

 저 속에 동기동창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궁굼하기 짝이 없다. 김경숙이 그 때 마침 왔다. 윤정옥은 경숙이랑 나란히 개찰구를 빠져나와 무궁화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기차여행도 참 오랫만에 하는 것이구만...

그 지겹던 장항선...

  J 여고에 입학하여 서울로 온 후 가족이 모두 이사하기 전까지 방학중에 K읍 고향까지 가려면 자리 하나 차지 못하고 모내기 전 못자리판 같이 촘촘히 박혀 선채로 비지땀을 흘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에어컨도 들어오고 곤색 우단 의자의 푹신한 촉감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기차가 출발하자 후배들인지 <K중 총동문회>라 쓴 어깨띠를 맨 젊은이 몇이 먹을 것을 돌리기 시작한다.

김밥, 인절미, 우유. 사이다, 맥주, 마른 안주 등등등 먹을 것이 풍성하다.

"아침 뭇 잡쉈쥬우. 대신 김밥 떡으로 잡슈우"

"그런디 선배님은 1회 졸업생인개뷰우"

윤정옥의 흰머리 때문임을 짐작하고 미소지으며 그냥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김경숙이가 곁에서 너 때문에 나는 덩달아 빨리 늙는다며 쿡쿡 웃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투리. 매끄러운 비단보다 질박한 목면에 정이 가듯이 투박한 사투리 듣기가 참으로 졍겨웠다. 그 사투리가 그녀의 추억 하나를 물어올렸다.

여고 시절, 사투리가 아무런 죄가 아닐텐데 처음 서울에 와 사투리 쓸 때마다 친구들 웃음속에 부끄러움은 왜그리 탔던지 그녀는 한사코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조심하였고, 국어시간에 배운 표준말로 하여 웬만큼은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청소시간이었다. 양동이 물을 잘못하여 쏟는 바람에 튀어나온 감탄사, 그것도 그만 놀라서 큰 목소리로 '얼라'라고 소리 치자 청소당번은 모두 웃었고 윤정옥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었다. 그 '얼라' 소리 대신에 저들은 '어머나'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던 그녀...

 K읍에 내려 안내를 따라 갔을 때에야 옛날의 교사는 이미 없어지고 다른 곳에 새로 세워진 학교를 볼 수 있었다. 좀 더 커지고 반듯한 새 건물에 넓어진 운동장에서 학생 밴드가 빨간 줄이 날서듯 들어간 유니폼에 활처럼 휘인 파란 깃털이 멋있게 꽂힌 모자를 쓰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격세지감이었을까. 알지 못할 감격으로 그녀의 가슴이 막혀왔다.

 재학생들이 팻말에 졸업생 1회에서부터 순서로 졸업 횟수를 적어들고 일렬 횡대로 서 있었다.

윤정옥과 김경숙은 몇 회 졸업생인지도 확실히 몰랐다가 물어물어 6 회 졸업생이라는 것을 알고 6회 졸업생용 천막 밑으로 들어섰다. 가벼운 운동시합과 공식행사가 끝나면서 술이 날라져오고, 안주가 따라 나오고, 술이 한 순배 돌아가면서부터 갑자기 좌중이 일렁였다.

 "그래 이 쪽은 누구랴아, 나 알겄남? 담서리서 핵교 댕기던 황수철인디 그 쪽 이름은 뭐여어?"

질문이 시들어도 한참인 호박꽃 같은 두 여자에게로 일시에 쏟아졌다.

"나 김경숙, 자전거포 집 딸 생각 안 나요?"

"나는 윤정옥이, 가래실 가지 전 소용골에 살던..."

"소용골?"

"아 그 개울가에 왕배나무 선 동네. 왕배나무 밑에 바위가 무지 커서 유명했는데..."

 조금은 열적은, 그래서 술이 더 자주 돌아가는지 몰랐다. 술이란 얼마나 묘한 음료인가. 흥겹게 하고 열적음을 덜어주며 용기는 물론 감상에 찡한 파장을 얹어주기도 하는... 왁자하게 통성명이 끝나자 금방 옛날 얘기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아 글씨 그 때 말이여. 사변 나구 월매 안 지난 때라 여간 가난들 했남. 꽁보리밥 먹구 와서 내놓는 방구라니. 그 뿐인감. 방구소리에 킥킥 거리다 혼쭐난 건 또 몇몇 번인디"

"야 그건 그렇고 광목 물 디려 해입은 교복에 슬슬 겨댕기던 이는 어떻고"

 "난 말여. 여학생헌티 잘 뵐라구 바지줄 좀 세워 입어야겄는디 광목바지가 줄이 설게 뭐냐. 밤마다 물 발러 요 밑에 깔구 자넌디 이놈의 요가 요가 아닝겨. 포대기걸랑. 자다 움적거릴 적마다 엉망이 돼서 아침에 일나보먼 네지끼는 두 개 세 개가 되버린겨. 얌전히 잘라구 월매나 애썼는지 알것남?"

"아 글씨 그 때 강당서 낭랑공주와 마의 태자 연극 안 했남?"
"그건 상고 애덜이 한 거여."

 "워쨌거나 낭랑공주 역을 맡은 형이 월매나 이뻤던지 광중 여자애덜이 쪽을 뭇 썼응께."

그러고보니 윤정옥에게도 그 기억은 살아있었다. 그 낭랑공주는 김성원이었다. 같은 소용골 동네 왕배나무집에 살던 과수댁 외아들 김성원이.

"그 공주가 우리 동네 살던 김성원이었어."

"워매! 그렁 걸 안 잊구 사능 걸 보니 윤정옥이가 김성원이 좋아했나벼. 하하하"

 그녀는 주먹으로 그 말한 동창의 가슴을 질르는 시늉을 하며

"거야 한 동네 살았으니까 아는 거지."

"아 글씨 그 때 박수완이는 연애편지가 들켜서 퇴학 당했잖여. 그건 너무 헌 일이였어. 이선치 선생허구

김순옥선생 허구 자기덜은 연애 안 했남. 결국 결혼 했응께 숭될 건 읎지만서두."

"그 말 허니께 생각나는 게 한 가지 있네."

 옆에서 얼굴이 볕에 그을러 새까만 친구가 뛰어들었다. 졸업 후 K읍에 그대로 머물러 살았는지 사투리가 그중 진하게 배어있고 말도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아 글씨 김순옥 국어선생 시간이디 말여. 왜 해필 벌이 교실로 들어왔댜아. 그것도 한 마리가 아녀. 여러 마린 겨. 그러자 벌을 먼저 본 놈이 짝궁 옆구리 찔르면서리 벌 봐라 했지. 그게 여러 마리닝께 우덜도 놀래서 벌 봐라 벌 봐라 하다가 선생님 벌이유. 벌 봐유, 벌 봐유 연속으루 했잖았것남.

 꽃삔을 꽂었던지 아니먼 젊은 여선생이 꽃으루 뵌 건지 그건 알길 읎지만서두 선생 코 앞에서 벌이 뱅뱅 도는겨. 우덜도 놀랭겨. 선생이 손으루 쫓어두 장님벌인지 도망 안나가니께 우덜은 몰짱 웅성웅성 선생 눈텡이라두 한 방 쐴까봐 계속 벌 봐유, 벌 봐유 했구.

아 그게 뭔 잘못이래여어. 선생이 문 열구 얼렁 나가더라구. 그런디 문밖이서 해필 연애 허는 이선치 선생을 만난겨. 그 선생은 수업두 안 허구 왜 해필 그 시간에 거길 지내갔댜아.

 뭐라구 했넌지 후닥닥 뛰어들더니 성난 늑대매루 지랄난리가 난겨. 우덜은 이구동성으루 사실대루만 말

한겨. 벌 봐란 소리만 했다구 말여. 그 이선치 선생이 연애에 빠진 영어선생여서 그랬다는 건 훨썩 댐에 안알았것남. 안 그럼 그 때 종아리에 털도 안난 우덜이 영어 실력도 읎넌디 그 어려운 단어를 워치키 안댜아"

 한 쪽에서 킥킥거리드니 일시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옛날 일들이 기억나는 모양이었다.

윤정옥은 그게 무슨 얘기거리가 되나 싶어
"사실 벌이 있으니까 벌 봐라 한게 무슨 잘못이라고 그랬대요? 이선치 선생도 그 때 들어왔으면 진짜 벌이 있는 것을 봤을께 아녜요?"

곁에 있던 다른 친구가

"어엉? 못 알아듣네. 그게 영어선생 아니것남. 오바쎈쓰 한 거지. 벌 봐라 한 걸."

그제서야 벌봐가 Vulva 인 것을 알자 그녀도 허리를 잡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부텀 벌 소리만 나오먼 머리속이 윙윙거리구 어지러워 죽겄다니께."

 그 바람에 스스럼도 없어지고 자리는 더욱 흥겨워져 2차 가자, 3차 가자 하면서도 윤정옥과 김경숙은 예약된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차안은 그 사이 낯 익힌 선후배 동기 동창들이 어울려 불러대는 교가 합창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장엄한 오서명산 반공에 솟고

        양양한 황해수 밀려드는 곳

        거룩한 우리 학원 우리를 맞아

        진리의 배움터로 길이 빛나리 길이 빛나리

                                                    *주 :  Vulva -- 여성생식기,  陰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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