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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목사시인의 시평
2013-01-07 10:04:12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1657
추천:118

 

해설

비가되어 내리고 싶은 목사시인

-첫시집 『침묵을 노래하는 악기』에서

 

 

 

조성호목사시인의 첫시집 『침묵을 노래하는 악기』발간을 축하한다. 등단한지 9년이 되었으니 이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시점에서 조성호목사시인의 성숙성을 들게 되었다. 다름아닌 시의 하이퍼적 특성으로 하여 철저히 목사시인으로서의 목적성을 가진 면모를 향해 발돋음을 하고 있음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조성호 시인은 목사시인이다. 따라서 시인으로서 절실히 닥아오는 시심의 내면을 절대자에 대한 절절한 감성을 절제하면서 그를 나타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바라보는 대상을 존재의 가치로 격상하고 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사역자로서의 목적을 가진 고민과 철학을 발산한 젊은 목사로서의 시이다.

철저히 의도된 목적시를 보이는 모던형태의 시인 조성호 시인의 첫시집 제목은 『침묵을 노래하는 악기』이다. 절대자의 침묵과 이에 대한 시의 은유로서의 기대감을 유발하는 노래와 악기를 나란히 동등선상에 놓음으로서 시에 대한 방향은 하이퍼시로서의 목적적인 행보를 한다. 다시 말하면 시의 의미를 나열서열에 맞게 놓고 있으며 이를 대표하는 제목 또한 이에 맞게 정하고 있다.

시집 제목『침묵을 노래하는 악기』는 신학상에서의 하나님의 잠잠하심과 이를 사역하는 몸인 악기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자의 노래이다. 이러한 시가 그 내면에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점을 은유하면서 시심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은유할가 하는 다소 실험시가 되고 있다. 신앙시로서의 확대과정이 얼마만큼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시이다.

이제 논자로서 이를 증명하려는 『침묵을 노래하는 악기』의 차례는 1부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와 2부 2부 ‘그의 하늘에 떠 있고 싶다’와 그리고 3부 ‘그날이 언제일까요’와 4부 ‘바람처럼 사랑하여라’ 5부 ‘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 차례에서 예견되는 절대자의 뜻과 관련된 시작이 하늘과 연계되는 선상에 놓이고 있다. 따라서 시의 서열 또한 계획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성호목사시인은 시적화자로서 이 지상의 참상을 제일처음 나열하고 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시선으로 읊어가는 서열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을 한 번 내쉬고 사는 것

언제부터 그리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말라비틀어진 뱃골에 달린

가느다란 숨결

산소 호흡기를 탯줄처럼 달고 있다

 

날마다 마주하던 해와 달

스위치 켜고 내리면 나가고 들어오는 전등처럼

쉬이 교대하는데

아직도 무엇이 남아있어

저리도 사지(四肢)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향유했던 시간은

끈이 끊어져

별똥별처럼 지려하고 있는데

삶과 죽음의 문턱은

꼬리가 끊긴 도마뱀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치열하다

-「존엄사의 진실」

 

‘숨을 한 번 내쉬고 사는 것이/ 언제부터 그리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말라비틀어진 뱃골에 달린/ 가느다란 숨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산소 호흡기를 탯줄처럼 달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는다는 것은

시간을

축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산다는 것은

사랑이란

거름 장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삶과 죽음」에서

 

조성호목사시인은 시적화자로서「삶과 죽음」시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죽는다는 것은/시간을/축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사랑이란/거름 장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결정을 통하여 목사시인이 하여야 할 나변의 이유를 현실의 어두움으로 조명한다. 일차적으로 시적화자 자신이 조명된다.

 

온 몸 붕대로 칭칭 감은 미라 같던

어머니 때문에

-「누굴 저리 사랑했을까」에서

 

나를 이고 사느라

지친 몸뚱이가

-「건강검진」에서

 

못 다 푼 내 인생의 페이지는

거드름으로 밀어 넣은

-「고지혈증(高旨血症)」에서

 

일차적으로

하루 종일 기다리다 지친 종은

-「실컷 울지 못한 종」에서

 

「누굴 저리 사랑했을까」에서 시적화자는 화상으로 온 몸 붕대로 칭칭 감은 미라 같던 어머니 때문에 내 마음 데인 8월은 참 덥다는 것이다. 불 햇살로 된 햇볕 알레르기가 된 몸을 본 기억은 이글거리는 포도(鋪道)를 따라 붉고 뜨거운 8월의 사랑조차 속을 울렁울렁하게 한다. 여름 장마에 줄줄 새던 천정 벽지를 따라 활활 불 지핀 곰팡이 꽃에게서도 어김없다. 「대장간은 없다」시에서도 21세기의 생생한 현실이 아닌 헛된 매스컴을 타고 뜬 대장간의 농기구들과 칼날들이 즐기던 시대에서는 떨어져 있다. 앙상하게 그 뼈대만 남은 상태에 대한 화자 자신의 해야 할 기업이 불에 달구어 쇠망치로 두드려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화자 자신도 사실은 내 욕망뿐인 것 앞에서 좌절한다.「잘못된 연산을 수행하여 죄송합니다」시에서마저 컴퓨터시에서의 화면 가득한 사각의 링을 접하면서 손은 커서를 따라 허공을 연신 두드려 팬 괴리를 지적한다. 눈과 생각들이 블랙홀처럼 빠져 드는 현실의 시간낭비는 가상공간이 먹어치운 시간이다. 이 유용하지 못하게 사용한 시간은 없어져 버린 나의 분신들이고 그것들은 오히려 끝내 흰 수건을 컴퓨터 속으로 집어 던질 일만 된다.

따라서 이 지상의 어느것도 시인의 마음을 만족하게 다독거리지 못한다. 곧 실제 대상을 바라보면서 일반적인 인간은 희노애락을 느낄것이지만 목사시인은 대상을 철저히 곧 지상에서의 사랑이 천상의 사랑과 다름을 제시한다. 이에 시적화자의 곧 행하는 일은「나목(裸木)」에서 보이는 회개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참 시

 

내 탓으로부터 출발하는

성당의 고해성사

 

캔버스에 담을 수 있는

무채색 누드

-「나목(裸木)」

 

시적화자가 잘못을 회개한 나목(裸木)이다. 이러한 갖가지 현실에 접하면서 목사시인이 가지는 소망이 있게된다.

 

1. 지상을 바라보면서 가지는 소망

1부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는 조성호시인의 내면의 갈망이다. 이 비는 젖과 꿀이 흐르게 하는 물(신 26: 15)이 되는 비이다.

비는 절대자가 그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실 때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축복하였다(신 28: 12).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는(겔 34: 26) 의미는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비이다.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리시어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는 비(슥 10: 1)이다. 따라서 조시인은 시적 화자를 통해 실질적인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음을 표출한다. 조성호목사시인이 인식하는 이 지상에서의 시 인식은 1부의 제목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존엄사의 진실」「누굴 저리 사랑했을까」「실컷 울지 못한 종」 「건강검진」「고지혈증(高旨血症)」「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대장간은 없다」「잘못된 연산을 수행하여 죄송합니다」「퍼포먼스」「삶과 죽음」「하산(下山)」「새 장」「노숙(露宿)」「나목(裸木)」「침묵을 노래하는 악기」이다. 곧 이 땅에서의 실존적 리얼리틱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보여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를 바라보는 목사시인에게 보여지는 잔혹성 그 자체이다. 이러한 의미는 침묵의 개념이며 이를 절대자에게 보고하고 있다. 그런다음 이들에게 사역자로서의 비로서 내리고 싶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늘에서부터 땅 까지 잇는(창 2: 6, 욥 36: 27) 것이 비다. 비에 대한 신학상의 접근은 다비드 토시오(David Toshio)를 들게 된다. 다비드는 성서에서의 비와 관련하여 하늘에서 땅이 이어지의 ד󰔟(에드)라 하였다. 곧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까지 내려오사 하나님의 아들로서 번제드려졌다.

조성호목사 시인이 비가 되고 싶음을 들고 있는 것은 이와 관련이 없지 않다. 조성호목사시인은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는 희망을 공개한다. 스스로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가 되어 내리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

거부할 수 없는 순리로

너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이슬이 되고 싶다

아침이면

네 메마른 심장에 젖어 들기 위하여

 

바람이 되어 날아가고 싶다

부나비처럼 흔들리는

너의 마음에 파고들기 위하여

-「비가 되어 내리고 싶다」

 

비가 되어 내리고 싶은 이유는 그에게 가까이 가게되는 길이기에 거부할 수 없는 순리이다. 철저하게 번제드려진 이는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다. 시적화자는 ‘너’라는 대상을 정한다음 곧 밤사이 내리는 향기나는 이슬로 변한다. 이제 까지 밤에 내리는 이슬로 몸을 적신 다음 아침에 할일은 네 메마른 심장에 젖어 드는 일이다. 그런 다음 바람이 되어 날아가고 싶고 그리고 부나비처럼 흔들리는 너의 마음에 파고들 일을 하기 위하여서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가진 사역은 이제까지의 온갖 지상에서의 어렵던 일들이 그 해결점이 보이지 않아 보이는 침묵에서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색소폰을 몇 번 못 불다가

하늘로 가셨다

 

인사동 신상 겔러리

딸이 그린 화폭에는

검고 붉은 악기들이

천상(天上)의 연주를 한다

 

색(色)과 색(色)

악기들 틈사이로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는

한 호흡

한 호흡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고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부호를(-) 쏟아낸다

 

아버지 몸을 빌려 침묵을 노래하는

그녀의 화폭은

공명판이 되어

시공간의 벽을 무너뜨리며 날아오른다

-「침묵을 노래하는 악기)」

 

「침묵을 노래하는 악기」라는 제목이 제시하는 시의 난해성은 신학상의 해설이 필요하다. 침묵은 하나님의 잠잠하심에 대한 인간의 안타까움이 들어있음이다. 침묵은 깊은 바닷속이나 하늘높은 곳에 해당한다. 성경은 바다 속의 깊음과 하늘의 높은 세계를 동일 언어로 하는데 다름아닌 샘이다. 맑은 물은 먹을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하나님의 세계이다.

성서는 아주 깊은 심연 םוּח󰚚(테홈)을 םי󰗬󰖸(바다/암밈)와 연계시키고 있다. 바다 깊은 곳(창 1: 10)은 속 샘물을 말하고자 하는 성서의 숨은 시적 내포로 순수한 물이 있는 곳이다. 깊은 바다 속 그 깊은 곳에는 바다의 용이나 바다의 포효하는 물결과는 관계가 없다. 히브리 우주상에서는 바다 심해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힘이 솟아오르는 샘의 원천이 있다.

맑고 맑은 물 하늘높은 물 ת󰗿󰖾󰘤󰗫(마엔노트/그로부터 온 샘물, 창 8: 2; 시42: 7)과 깊고 깊은 땅속의 물 ם󰖹󰗫 ת󰗿י󰘠(에노트 마임/샘물, 출 15: 26)은 공동 동일어 눈 ן󰖹󰘠(엔/눈)을 쓴다.

곧 눈이라는 의미와 동일시된다. 성서에서 깊은 바다란 바로 하늘 창이 열리어 하늘 깊은 샘물이 하늘 아래로 내려와 된 그 의미는 하나님의 일으 하는 사역자들이 바라보는 깊이 있는 ‘눈’에서 발견되어지는 보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아주 깊고 신비한 바다 깊숙이에서 솟아난 샘물과 하늘의 창들이 열린 바다 깊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깊이는 같다.

따라서 조성호 목사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되고 싶음으로써 하나님이 내리는 맑고 깨끗한 그래서 하늘과 땅을 잇는 사역자로서의 길을 가고 싶음을 제시한다. 이 엄청난 희망은 하나님의 아들만 할 일이지만 사역자로서의 그 범례에 들고 싶음을 ‘...싶다’로 희망을 괄호안에 넣는다.

하나님이 펼쳐놓은 깊은 물의 신비는 깨끗한 물, 깊은 물로 그로부터 온 하늘깊음의 물이다. 따라서 더러운 물은 ה󰗚וּצּ󰗚(라쭐라/더러운 물, 느 9: 11; 시 69: 15; 사 44: 27; 욘 2: 3)과는 철저히 다르다. 더럽고 추한 다신들이 모여 사는 바다와는 다른 곳이다.

시적화자는「침묵을 노래하는 악기」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색소폰을 몇 번 못 불다가 하늘로 가셨다. 이 악기는 히브리어로 나발이며 한글에서도 이 언어가 발견된다. 나발은 비단 악기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온 전신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자 곧 사역자로서의 몸이다.

그리고 노래 또한 신학상으로서의 해설이 필요한 바 이 רי󰚄(쉬르/노래)는 일반적인 음악과 구별되는 성서언어로서의 노래이다. 성가대의 노래를 들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노래는 몸의 뼈가 물이 없어 절규하는 그 자체 곧 더 깊이를 가진 이해로서는 예수님이 몸의 피와 물을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다 쏟으신 다음 하나님을 향한 절규이다. 일반속성으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곤고하고 괴롭고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해 말씀을 달라는 절규가 노래이다. 이 갈증에 대한 목마름의 절규는 마른 뼈들이 하나님을 향해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한 부르짖는 것이 노래 רי󰚄(쉬르/ 노래, 출 15: 1)이다. 곧 성가대의 노래이다. 영으로 노래하는 성가대의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그 깊이가 하도 깊어 절규하는 음성이다.

관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속상함과 울분이 아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기쁨의 노래이다. 기쁨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는 기쁨과 즐거움의 선물이다.

이 노래는 흰 색으로 퍼져가서 수평적으로 널리 퍼지는 성질을 지닌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퍼져나가는 하나님 음성이미지이다. 그리고 그 색체는 흰색이다. 천은 하얀색의 흰 양털의 이미지를 지닌 세마포이다. 예수님은 세마포를 입으셨었고 제사장이나 그리고 오늘날의 목사님들도 이 의미의 예복을 입는다.

조성호목사시인의 시집제목은 그 의미가 시적화자인 딸이 그린 화폭에는 천상(天上)의 연주를 하고 아버지 몸을 빌려 침묵을 노래하는 그녀의 화폭은 공명판이 되어 시공간의 벽을 무너뜨리며 날아오른다. 입으로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실천하는 일이다.

 

 

 

 

2. 지상에서의 절규와 그의 하늘에 뜨는 날은 언제

 

철저히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임하셔야 함을 역설적으로 표시한 조성호목사시인의 시선은 아뢰어야 할 지상의 갖가지 일들의 시사성이다. 그 일을 다 한 다음의 언젠가는 그의 하늘에 뜨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있다. 따라서 2부 ‘그의 하늘에 떠 있고 싶다’와 3부 ‘그날이 언제일까요’는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어진다.

2부 ‘그의 하늘에 떠 있고 싶다’는 「매화」「꽃비」「봄은 폭발한다」「봄비」「봄은 비밀로 가득 차 있다」「봄의 승리」「냉이」「패랭이꽃」「민들레」「오월은 슬프다」「시골장터」「석류」「고로쇠1」「고로쇠2」「고로쇠3」「그의 하늘에 떠 있고 싶다」이다. 3부 ‘그날이 언제일까요’는 「질주본능」「구멍 난 양말」「나의 유년」「마라도 교회」「옛 동산에 올라」「통풍」「달팽이」「흰 눈」「마지막 달력」「벽시계」「황태덕장」「커피」「후박나무」「그날이 언제일까요」「아름다움에는 눈물이 있다」「가슴을 쪼는 새」로 되어 있다. 한결 같이 꽃이 아름답다거나 꽃의 신비를 읊지 않고 치열하리만큼 이 지상의 일을 리얼하게 보고한다. 그 해결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 예로「매화(梅花)」시에서 시적화자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이냐고 다그치고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해

눈도 뜨기 전에

맨 얼굴에

치장인가

 

차가운 봄은

성화에 못 이겨

먼저 빗장을 푼다

 

오늘은

당신의 몫으로

흰 꽃잎으로

가정 먼저 피고 싶다

 

이 몸

먼저 태워

눈발 날리듯

당신께 더 빨리 안기고 싶다

-「매화(梅花)」

 

상징성의「매화(梅花)」로 조명되는 당신의 몫과 당신께 눈발 날리듯 더 빨리 안기고 싶은 목사시인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꽃에 대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매화(梅花)」와 눈발이 등가관계로 놓이고 있다. 이러한 하늘나라에 대한 바람은 그 하늘에 떠 있고 싶은 소제목과 동일선상에 놓인다. 또한 「민들레」에서도 낮아지기로 하면 민들레만한 꽃이 없다고 하며 가볍기로 말하면 민들레 홀씨만한 것이 없으면서도 꽃 진자리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을 보듬어 새 세상을 희망으로 심고 있다는 것이다. 꽃을 매개로 한 하늘나라를 가지기를 소망한다. 「봄비」시에서도겨우내 참았던 날씨가 울먹울먹하더니 새벽에 봄비가 흐른다고 하였다. 목마른 대지는 혈관을 열어 굶주린 아우성으로 소리 내어 핥고 불면(不眠)의 겨울나무 링거 병을 오롯이 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 지상에서의 객관적 상관물 특히 온갖 꽃이 만발하는 봄에서조차 대상화하는 시각은 하늘나라와 비교되는 대상의 것이다.

이러한 하늘에 대한 절대치의 관념은 목사시인의 ‘하늘을 걷고 싶다’고 하는 것에 그 이유가 되는 하늘과 지상과의 완연한 차이를 알린다. 시적 시선의 일관성은 「꽃 비」「봄은 폭발한다」「봄비」에서도 그 지속성을 계속한다.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한

눈물이

나무에서 흐른다

-「꽃 비」에서

 

3월 초

천지에 뇌관(雷管)이 가득하다

.............

 

불만의 긴 겨울 창살을

뒤흔드는 봄 타령에

불똥이 튀고

 

기다리기 힘든 시간도

체면이고

인내고 뭐고 없이

벼랑 끝에서

사정없이 폭발할 지경이다

-「봄은 폭발한다」에서

 

「꽃 비」시에서 꽃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한 눈물이 나무에서 흐른다. 이때의 눈물은 상징성을 띄게 된다.「봄은 폭발한다」에서도 봄이 오는 골목에 대한 관점을 “3월 초/천지에 뇌관(雷管)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불만의 긴 겨울 창살을/뒤흔드는 봄 타령에/불똥이 튀고” 있는 사실을 객관화한다. 온갖 봄의 동태는 “기다리기 힘든 시간도/체면이고/인내고 뭐고 없이/벼랑 끝에서/사정없이 폭발할 지경이다”이다.「봄의 승리」시에서도 융단폭격이다. 시적화자는 시어의 폭력을 통하여 거침없이 이 지상의 상황을 거칠고 폭격이 있는 세상으로 들어낸다. 따라서 2부 ‘그의 하늘에 떠 있고 싶다’와 3부 ‘그날이 언제일까요’는 같은 맥락에서 시인이 바라는 그 언제쯤인가에 ‘그의 하늘에 떠 있고 싶어 그 날을 간절히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들고 있는 목사시인이다.

이 세상은 「냉이」시에처럼 세상의 정체를 들어낸다. 세상은 “냄비처럼 들끓는/열나는 속내를 들여다” 보지 못하였기에 봄동산의 냉이가 머리채를 뽑히는 것이다. 세상은 “처녀처럼 파릇한/가슴 향기 날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냉이가 머리채를 잡혀서 끌려나와 “봄 향 가득한/나물 한 접시로 무쳐”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내면이 정서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본다. 「패랭이 꽃」시 또한 “내 달리는 바람 소리에/치일 듯 내 유년의 고통”이며 “가슴에 쌓아두고 삭인 것이 많아/누워버린 의식불명의 환자”라는 것이다.

철저히 하늘나라와 다른 이 세상이다. 역사에 대한 시각 또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5월이 슬픈 이유가 있다. 시적화자의 관점인 “어깨가 훤히 드러난 여인네의” 얌전하지 못함을 느끼게 하는 5월은 “5월1일 5월5일 5월8일 5월15일”로 하여 “꺾인 꽃다발”이 있어 시적화자를 슬프게 한다. 특히 “5,18까지/투쟁! 투쟁! /춘투(春投)로 싸움판이 되고/꽃다움은 순간의 넋이 되어” 「5월은 슬프다」시가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이 지상의 현장이기에 목사시인은 하늘에 떠 있고 싶은 그 날이 언제인가고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 「시골장터」시에 비치는 세상은 “낮술에 취한 아저씨/비틀거리는 생담배 연기사이로/난닝구 구멍이 뚫”린 세상으로 하여 목사시인을 슬프게 한다. “고장난 커피 자판기”며 “문 닫은 생선 가게”며 어느 것 하나 시선을 가져가는 곳은 항상 같은 현실이어서 시저화자는 슬프다.

이러한 지상의 어느것 하나 온전하지 못함을 보고 슬퍼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시고 그로 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잊지 못하는 조성호목사시인으로서는 「고로쇠 -십자가」를 시작(詩作)한다.

 

봄바람 불기 무섭게

목을 빼고

내 겨울 잠 꼭지마다

불을 켜고 기다리는 너는

내 불면을 모른다

 

텅 빈 가슴을 파고들어

꼭 꼭 묶인 호스로

젖을 빠는 너는

뼈 속이 에이는

내 갈증을 모른다

「고로쇠 1」-십자가

 

나를 뚫어라

속내를 환히 밝혀

세상 밖으로 흘려주는

나의 생수니라

 

내 잔을 받아 마시라

네가 마시는 잔은

너의 가슴을 치유하는

나의 심장 이니라

 

내 몸을 찢어라

나무에 달린 저주는

살갗이 찢기는 고통이 있고서야

네 꽃을 피우리라

「고로쇠 2」-십자가

 

 

조 목사의 시적 화자는 ‘고로쇠’의 즙액을 의인화하여 봄바람 불기 무섭게 목을 빼고 산에 올라 즙액을 짜 가는 사람들을 십자가와 철저히 동일화 한다. 이 때 ‘너’와 ‘나’의 관계는 소통되지 않는 세계는 절대세계와 인간세계이다. 당연히 단절이다. 그리하여 ‘나’는 ‘너’를 향해 뼈 속이 에이는 갈증을 성경의 내용과 동일시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겪었던 십자가상에서의 그 갈증이 지금 이곳에 있다. 조성호 목사시인은 「고로쇠 1」을 -십자가-로 그 제목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객관화되는 ‘고로쇠’는 목사시인의 마음이 철저하게 그에게 사로잡혀 모든 시적대상이 사역자로서의 전달에 사로잡혀 있음을 증명한다. 점층법으로 진화하는 「고로쇠 2」-십자가-에서는 한층 더 가까이 그의 곁을 지키는 증언자가 된다.

나를 뚫어라

속내를 환히 밝혀

세상 밖으로 흘려주는

나의 생수니라

 

내 잔을 받아 마시라

네가 마시는 잔은

너의 가슴을 치유하는

나의 심장 이니라

 

내 몸을 찢어라

나무에 달린 저주는

살갗이 찢기는 고통이 있고서야

네 꽃을 피우리라

「고로쇠 2」-십자가

‘나’는 명령형의 “나를 뚫어라/속내를 환히 밝혀/세상 밖으로 흘려주는/나의 생수니라”의 말씀을 ‘너에게’ 들리게 한다. 다시 점층법으로 이어지는 “내 잔을 받아 마시라/네가 마시는 잔은/너의 가슴을 치유하는/나의 심장 이니라”한다. 또 다시 점층법으로 “내 몸을 찢어라/나무에 달린 저주는/살갗이 찢기는 고통이 있고서야/네 꽃을 피우리라”하여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타당성은 “나를 뚫어라”의 경지까지 이른다. 이러한 동일화는 목사시인이 아니고서는 도달하지 못하는 고로쇠와의 일치이다.

“생수”와 “잔”을 받아 마셔야 너의 가슴을 치유하는 나의 심장이 이제 “내 몸을 찢어라”라라고 이 세상의 목사로서의 전달할 마음을 대신 한다.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그날이 언제일까를 조성호 목사시인은 3부 ‘그날이 언제일까요’라고 하였다. 이 지상에서의 온갖 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에는 거리가 먼 일들만 일어나는 현실을 다시 들어낸다.

돌아서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질주 본능」시는 세상의 세태를 대변한다.

 

“비켜요 비켜”

파란 신호를 따라

사사건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추월해 달리다 보면

“아서요 제발”

빨간 신호가 온다

(과속 했으나 그렇다고 추월은 아닌)

 

“要注意!”

삶의 길목 어귀마다

노란 경계 신호

옆길로 빠지거나 되돌아 갈수 없다

(난 언제 다시 이 길을 돌아갈 수 있을까)

 

불만의 줄기찬 흐름은

목적지를 잃고

 

오늘

다시

그렇게

운명처럼

 

질주본능은

신호를 따라 대기한다

-「질주 본능」

 

세상의 질서인 파란 신호를 따라 달리는 추월의 길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과속까지 한다. 이 세상사는 “要注意!”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로하여 삶의 길목 어귀마다 노란 경계 신호가 이제는 옆길로 빠지거나 되돌아 갈수 없는 경지까지 온다.

얼마나 많은 일들에 불만의 줄기찬 흐름으로 하여 목적지를 잃은 삶의 길인가!. 늦더라도 되돌아서야 함을 시적화자는 제시한다. 「구멍 난 양말」시에서도 양말이 항변하면서 블렉홀로 빠져가는 삶의 모습인 세상은 죄인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같은 이미지로서의 「통풍(痛風)」「달팽이」「황태덕장」 「그 날이 언제일까요」「가슴을 쪼는 새」에서도 같은 삶의 궤적이 쌓여있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통 사정해도

내 신열(身熱)은

상처를 내동댕이치고

저만치 나 몰라라 내달린다

-「통풍(痛風)」에서

느릿느릿 살면서도

미친 속도에 목숨 걸고

 

날마다 팽이가 되고

다달이 달이 되고

해마다 이자(利子)가 붙는다

-「달팽이」에서

 

바람 맞을 소리 하냐며

햇밥 한 상 받고

 

회초리에 꿰여

심장을 덜렁 덜렁

매달고 있다

-「황태덕장」에서

 

막상 만나면

애꿎은 애들 안부만 묻습니다

 

하고픈 말은 많지만

차일피일

입안에는 식은 재만 남습니다

 

많은 말들 속에서

나의 소리는

정작 들려줄 수가 없는 걸까요?

 

언제쯤 내 말과 행동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암반에서 솟아나는 물처럼

그대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그 날은 언제일까요

-「그 날이 언제일까요」에서

하늘로 향하는 길에는

꿈속에서만 날아오르는

바보새가

포충망에 꾸역꾸역

가슴 시린 날갯짓으로 안겨들고 있다

-「가슴을 쪼는 새」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데 돌아서지 못하는 삶의 일상들은 늪처럼 쌓여진다. 하늘을 언제쯤 날아다닐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잠이 오는 나날들에 빠진 삶은 끝까지 그를 슬프게 하였던 일이다. 세상에 빠지는 늪은 일상성의 사람들이 갖는 다반사이다. 이 세상이다.

 

3. 목사시인의 한계

시적화자는 일반목사와 목사시인의 차이를 제시한다. 시집 4부인 ‘바람처럼 사랑하여라’와 5부 ‘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에서 서정시인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자유로 와 보인다. 얼마만큼 그는 자유로이 표현하였는가?

4부 ‘바람처럼 사랑하여라’는 「온유한 가을」「가을의 전설」「낙엽은」「나는 지금 춤추는 중」「바람처럼 사랑 하여라」「빙어낚시」「제 살 깎기」「산을 오르며」「원단의 태양」「칡뿌리의 변신」「비상구」「주전골에서」「고등어」「민달팽이」「양수리에 가면」으로 되어 있다. 5부 ‘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는 「시는 젖가슴이다」「그까짓 시가 뭔데」「시가 운다」「내 시는 긴 기다림이다」「외상시대」「일송정(一松亭)」「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대협곡」「파라오의 무덤」「헌금 통에 날아든 새」「디지털 아이들」「3일 간의 사랑」「흥정계곡」「아버지의 설렁탕」이다. 이들에서 이제까지 다소는 지적이고 모던한 경향에서 서정시로 돌아와 조금은 자유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목사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온유와 빈손을 강조한다.

 

가을은 온유하다

................

맨손으로 경고하니

가을은 예언자다

-「온유한 가을」에서

 

하늘은 더 높이 도배를 한다

-「가을의 전설」에서

 

 

새벽녘 가을비는

가을을 쏟아 내려 호수를 애무하고

단풍은 새악시처럼 부끄러움을 탄다

 

억새는

무리무리 바람 안고 춤을 추고

민달팽이 서로 부둥켜 떨어지질 않고

 

정겨운 풀꽃들과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서로 추파(秋波)를 보내고

곱게 물든 산을 보며

함께 물들어 간다

 

사랑 했기에

바람 불기에

가을은 깊다

 

바람 난 사람들은

시린 하늘에 마음을 씻고

푸른 물에 눈을 헹구어

우수에 젖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가을은 바람처럼 사랑하여

위대한 계절이 된다

-「바람처럼 사랑하여라」-산정호수 에서

 

‘가을 = 온유’로 시각화된 조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그가 걸어온 목사의 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나아가 ‘가을 = 예언자’로만 감각화 한다. 이러한 사정은 제목조차 「온유한 가을」이다. 「바람처럼 사랑하여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조금은 자유롭기를 희망하지만 “우수에 젖어/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했다.

도대체 아빠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체험하는 일에 시적화자는 소홀하지 않는다. “무대를 휘젓는/발레리나/바들바들 떠는 것이 보여/내 딸이려니 생각하니//...투명한 유리 구름처럼/떠다니는 딸은/애비의/흔들리는 마음을 타고 날아다니고”있다고「나는 지금 춤추는 중」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는 “이는 내 살 이요 내 피니 받아먹으라”라고 하는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보려한다.(「제 살 깎기」). 그 길은 “사잇길로 난 고통”이며 “눈물로 오르”는 그리고 “소리 없는 울음”의 길(「산을 오르며」)이다.

이제 다만 ‘출구’를 향해 달릴 것이라고 약조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생의 한 굽이를 돌아

나의 선택은 오직 하나

 

하늘 문

-「비상구」에서

 

다시 오지 않을 생의 굽이를 돌아 선택한 길 오직 하나는 “하늘 문”(「비상구」)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내가 찾는 하나님은 어디로 갔을까?의 시적화자는 5부 ‘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에서 젖가슴을 내보인다.

 

엄마 잃고 울부짖는 아가들에게

한 아줌마 여경

자신의 젖가슴을 열어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인다

젖가슴을 푸니

13억이 감동한다

 

시는 젖가슴 이다

-「시는 젖가슴이다」에서

 

시적화자는 일반목사와 목사시인이 다른 점을 제시한다. 젖가슴을 열어 감동할 시를 쓰는 일은 그의 사랑을 실천하는 시를 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시 쓰기가 에베레스트만큼 오르기 어렵지만 그리고 한도 끝도 없는 길이지만 시의 나라에 중독(「그까짓 시가 뭔데」)되면서까지 시를 써야 할 일이 남는다. 홀로 울기도 하지만 “반향(反響)이 되어/마음을 헤집어 흔들어 놓기에(「시(詩)가 운다」) 그치지 못한다. “한 줄의 시라도 영혼을 울리는 시를 쓰고 싶은/시적화자 ‘나’의 시는 긴 기다림(「내 시는 긴 기다림입니다」)에 있음을 고백한다.

 

목자의 피 발린 깨진 종소리 따라

눈물 자국만 그렁그렁하다

 

어느 하늘에

아픈 영혼의 상처 닦아 줄

빈자리 있을까?

 

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에서

 

 

지금 조성호목사시인은 목자의 피 발린 깨진 종소리 따라 길을 걷는다. 눈물 자국만 그렁그렁하지만 아픈 영혼의 상처 닦아 줄 길을 지금도 걷고 있다고 자신한다.

일상에서 아버지이면서도 하늘아버지의 길을 걷는 길을 따라 걸으려 한다.

 

엄마 없던 그 시절

아버지와 난 설렁탕집에 자주 갔다.

“아들아, 밥 먹으로 가자우”

“또 그 집입니까? 다른 것은 안 먹습니까?”

“그만한 것 없다”

 

그 식당은 손님들로 늘 붐볐고

주인의 걸죽한 평안도 사투리를 들으며

투박한 국그릇에

소금 푹 넣어

소주 한 잔을 걸치고 나서야

아버지의 축 쳐진 어깨가 조금 펴졌다.

 

“아부지, 설렁탕 어때요?”

그 설렁탕 횟수가 늘어나면서

난 설렁탕 맛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아버지는

그 설렁탕 횟수가 줄어들더니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들아, 설렁탕 어때?”

“그러시죠, 아빠”

선심 쓰는 척 따라온 내 아들놈과

추억의 설렁탕을 먹는다

-「아버지의 설렁탕」

붙들린 한 영혼 복 받은 목사시인은 사역의 현장에서 시를 통해 아버지 → 아버지 → 아버지의 길을 아들 → 아들 → 과함께 따라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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