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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비행복 시집 자작평
2013-08-08 07:27:22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1388
추천:137
첨부파일 :  1375914442-44.hwp

해설
 
이영지 기독교시학 4
 
 
 
이 영 지
(문학박사 · 철학박사 · 시인 · 시조시인)
 
이영지의 사랑비비행복은 순전히 개인적인 은혜받음에 대한 시집이다. 그리고 친근감의 22숫자로 접근되는 특징을 이이곧 가까운이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연작시가 가지는 특징은 무엇보다 시어의 연결이 주는 메시지가 강하다.
연작시의 시어 여름((2201 - 이후 1부터로 표시)) 여름, (2) , 비오는(3) 비오는(4) 오는, 꽃잎(5) 꽃잎, 포옹다앙(6) 포옹다앙, 그냐앙(7) 그냐앙, 빗방울(8) 빗방울, 사랑모음(9) 사랑모음, 햇살꽃비비(10) 햇살꽃비비, 해실해실(11) 해실해실, (12) , 오시네(13) 오려, 깃을 털고(14) 깃을 털고, 푸른바람(15) 푸른바람, 폭포비비(16) 비비볼(17) 그리움비비(18) 사랑비비(19) 사뿐비벼(20) 사뿐비비, 한자락(21) 한아름, 꽃덤불(22) 꽃덤불, 꽃피도록(23) 꽃바구니(24 꽃잎, 꽃덤불(25) 꽃나비비(26) 첫비비, 비비느라(27) 비비비(28) 그리움비비, 하늘(29) 하늘(30) 하늘끝(31) 하늘꿈(32) 하늘하늘(33) 하늘물(34) 하늘물새(35) 하늘, 사랑(36) 사랑(37) 사랑(38) 사랑(39) 사랑(40) 사랑, 당신(41) 당신, (42) 옷자락, 은비늘(43) 은비늘, 등을 업어(44) 등을 업어, 나직하게(45) 나직히, 사랑(46) 사랑하며, 꽃밭(47) 꽃다발,(48) 꽃잎, 떨어짐(49) 떨어트려, 한구비(50) 한구비, 봄볕이(51) 봄길을, 파랑하(52) 새파랗다, 하늘(53) 하늘이, 열두폭(54) 열두해, 빛이되어(55) 눈빛만이, 빗소리(56) 비에젖어, 종소리다(57) 종소리다, 앞마당(58) 앞마당, 벗어서(59) 벗어들고(60)이다.
이러한 연작시적 특징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헤에 감읍하는 여름으로 시작하여 물이 비오는 은혜를 입으면서 꽃잎은 씻어지며 포옹다앙 떨어지며 그냐앙 그 분위기를 즐기는 즐거운 마음이 시의 주된 작업이다. 비의 빗방울이 사랑모음이 되어 곧 햇살꽃비비로 변하면서 해실해실웃는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이영지 목사의 삶은 비에 대하여 비, 오시네로 존칭을 표시하고 사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오려 다른 깊이에 대하여는 깃을 터는 가벼움에 있다.
따라서 이영지 시인에게는 푸른바람이 있다. 이푸르름의 폭포는 그대로 내리는 폭포같은 은혜로 하여 비비볼 마음이 되어 있다. 시에 늘 있는 그리움비비가 된다. 사랑비비가 된다. 더구나 사뿐비벼 내리는 사뿐비비 내는 한자락은 한아름의 꽃덤불이다. 이 꽃덤불이 꽃피도록 담는 꽃바구니의 꽃잎과 꽃덤불에게는 꽃나비비가 있다.
첫비비의 그 즐거움을 아직도 비비느라 변함이 없다. 비가 비비며 내리는 경이로움을 본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이 그리움비비 그 하나만으로 하늘을 지붕삼아 사는 사는 하늘 사람이 되어 있다. 따라서 하늘 끝에 하늘꿈을 걸어두고 늘 이영지 시인은 하늘하늘 거린다. 그것은 하늘물을 먹은 하늘물새가 되어서이다. 그것은 하늘의 사랑을 받은 자의 행복이어서 그렇다. 사랑 그 하나로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을, 당신을 등가형으로 한다. 이 지극함은 당신의 옷을 입고 사는 생활이다. 목사로서의 삶의 옷자락은 은비늘을 입고 있다. 그러기에 이 은비늘의 등을 업어 나직하게 살아간다.
아주 나직히 사는 사랑은 사랑하며 꽃밭을 만들어 꽃다발을 만든다. 더구나 자신의 꽃잎이 떨어짐으로 하여 그 떨어트려버림의 미학에서 한구비를 지난다. 이 한구비에 봄볕이 드는 봄길은 파랗다. 아주 새파랗다. 때문에 하늘의 그 푸르름이기도 하다. 이영지 시인에게 있어서 하늘이 열두폭인 것은 열두해 견디는 빛이되어 있는 힘이다. 이 존재의 감사함은 오직 눈빛만이 그 증거로 남아있다. 말소리가 보다는 빗소리로 들려오는 말씀을 들으려 비에 젖어 있는 종소리다. 이 종소리는 이영지 시인의 앞마당의 종소리다. 그러기에 맨 몸으로 벗어들고 종소리를, 하늘의 종소리를 듣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
1부는 꽃물을 말아올린 꽃비비이다. 이영지는 윤년에 태어나서 4년마다 겨우 생일을 한번 얻어먹는다. 이러한 마음의 여운이 윤년으로 시작되는 첫 시의 메시지 노란여름과 행복보라사이는 행복끼우기이다. 8월 대보름이면 가을이미지이고 7월이면 여름이다. 이 구분은 12초의 구별로 더위에서 가을온도로 넘어간다. 이 특징은 시조가 3612절로 된 이유이며 그토록 논의가 되는 예수님의 제자와 12지파 심지어는 모든 물건들의 한묶음도 12개를 기준으로 하는 황금비율의 수치이다. 겨울과 봄 사이의 바뀌는 온도가 어느날자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12초 사이로 그 온도가 바뀌고 여름과 가을사이 역시 12초의 간격사이로 온도가 바뀐다. 가을과 겨울역시 이 온도차이로 시작되면서 바뀐다.
이러한 자연의 신비는 깨닫는 자만이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이번의 시집은 순간의 아주 찰라적인 느낌을 그때그때 적으면서 지어진 비교적 전부 시조이다. 윤년인 7월마저 다가고 8월이랑 들녘은 노란꽃과 보라꽃 핀 들녘을 부른다이제 갓 피어 보라꽃이 연하디 연한 들 들꽃 되어 많이도 피어 피어 이리로 딩굴딩굴 저리로 딩굴딩굴 흐드러 흐드러지다 누워버린 노랑랑이다. 역시 끝발음이나 종성발음에서 이응발음을 많이 사용하여 행복을 불러오는 콧소리 비음이 들어있다. 행복이 언제부터 나에게 늘 따라 있는지 행복하고 송구스럽다.
여름과 가을사이를 가르는 꽃은 슬며시 그 빛을 노랑꽃에서 보라꽃으로 바뀐다. 여름이 들녘 불러 여름은 노란 옷에 보라가 새로 서며 노란 보 둘러싸서 들녘은 노란여름과 행복보라 사이에 내가 있다. 들녘이 보라보라 한 여름 하늘보라 어 엄청 큰 행복이 줄줄이 들어서는 가을의 행복보라로 서성이며 기어가고 있다.
다음의 옥수수와 참외의 여름에서 시어로 이어진다. 이 물은 이영지의 시의 하이퍼성으로 얼핏 보기에는 시의 외연이 여름 옥수수로 단순한 먹을거리 옥수수 같지만 이러한 외연과는 달리 옥수수 옥수(玉水)이다. 곧 맑은 물이다. 옥수수(玉水水)는 아주 맑은 물이다. 한창 여름에 그 맑은 물이 더욱 맑아지는, 다시 말하면 물의 의태어에 대한 절대의 물의 가치이다. 참외는 참으로 익어가는의 의태어이다. 따라서 여름은 참된 진리가 익어가는 계절이 된다. 단순한 물의 의태어에서 벗어나 물이 그 양을 많이 하면서 새벽기도가 주는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익어가는 이영지 삶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시에서의 외연과 내포의 긴장성이 있을수록 시의 하이퍼성이 된다. 옥수수 참외참외 여름이 익는 밤이 참 참외 익혀가며 한낮을 걸어오자 내 산은 한창 익어가 지금 마악 익어가는 곳은 내산이다. 나의 산이다. 따라서 이영지가 내 산을 소유하고 있는 내 산은 강물에 한강물이 하안창 불어나며 가슴에 들이밀며 발목에 감아들며 커다란 부피로 들며 들이치는 한여름이 되고 있다. 그 안에서 하늘 물 웃음속이 훠언히 들어나는 옥수수 촘촘히로 참외씨 촘촘히로 쾅쾅쾅 여름소나기 들이밀어 붙이는 여름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은혜로움을 즐기고 있다.
이 이영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시의 소재이다. 꽃물을 말아올린 꽃비비는 비를 만나는 꽃의 정경이다. 가장 반가운 것이 꽃이며 꽃과 비가 합쳐 꽃비비며 한창 반가움을 바람에 그 뜻으로 전한다. 꽃물을 말아 올린 꽃비비 꽃바람을 물고는 두루비벼 사알살 돌리다가 오는 이 반가운 비에 비비느라 꽃 사람이 된 꽃과 꽃비와 어울려 있다. 분홍비는 본의 아니게 가장 사람들에 오르내리는 인기작품이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니어서 더더욱 그 이유는 모른다. 다만 시의 내포는 비가 오는 날의 행복이 가장 우선되는 시의 발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벗이요. 그대, 그대는요, 비오는 날에만은 분홍옷 분홍우산 분홍옷 분홍구두 분홍옷 분홍치마를 두르는가 분홍비를 맞으며 행복하다.
해살보쌈또한 인기작품이다. 아마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누구나 겪는 햇살 받기의 경험과 한국적 정통성의 보쌈김치며 이러한 보쌈의 어휘가 주는 친근성에서일 것이다. 눈 안에 늘 어리는 대상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이 싸비비어져 있는, 눈을 뜨면 먼저 눈앞에 아른아른, 눈을 감으면 먼저 떠오르는 대상이다. 기분좋은 대상은 하늘가 그쯤에서 나른나른 내리는 떠 오른 해 덩어리이다. 대상은 봄꽃을 입에 물고 봄이 뜨면 먼저 피고 안 봐도 먼저 떠오르는 종종걸음 그 쯤에 아장아장 앞으로 걸어가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내가 삼삼히 떠 오는 햇살보쌈이다. 이쯤대면 시적 화자는 봄 잎을 입에 물고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다시 입에 문다.
그 느낌은 이슬비비에서이다. 서로 비를 맞는 대상은 꽃잎과 꽃잎이슬이다. 이슬비 비 온 뒤에 어깨를 살짝 대어 소곤소곤 웃어대면 그 사이 이끼 낀거 또르르 또르또르르 포옹다앙 떨어져 나간다. 이래서 이슬비는 고마운 존재이다. 이젠 아예 비비다. 비비는 낮은 집 창 밖사이로 비만 비만 오면 들리는 음량의 폭을 잘 강당할 수 없도록 취한다. 비소리 만을 시집으로 준비 중이지만 후두둑 포롱포롱 화들짝 포롱포롱 후루룩 후루후루 다르륵 다다르륵 마음이 내려앉으면 소리하나 포르륵 뜨는 비이다. 시를 쓰려고 앉으면 어느사이 똑똑똑 또오오옥 딱딱딱 따아아악 그치다가 시를 접고 다시 누으면 쏴쏴쏴 쏴아아아 하늘이 무너지나 겁도 난다. 그러다가 시를 쓰려고 다시 앉으면 어느새 뚜우욱 뚝뚝 하나두울 가늘게 멈춘다. 적어도 시인인 이영지에게 있어서 비는 하늘이 내려오는 소리가 포롱포롱하는 것이고 땅으로 내려앉는 소리가 포롱포롱하여 싸비비며 서로 안아 포로옹 하늘그림을 그리고서 포로옹 안고 안고 또 안는다.
비가 그리웁다. 비의 발음인 계심이어서 하나님이 계심이어서 그러하다. 비야비야비비와시에서 비는 비비고 싶은 마음이다. 모든 생물이 비를 기다리는 마음일 때 특히 호수 안의 고기에겐 생명이 달린 비이다. 이 마음을 읽으려고 호수안을 들여다본다. 여름비 호수 안에 단 꿈을 푸느라며 물 닭이 호수 안을 들여다 보느라며 호수 안 한복판으로 비야비야 비비와 라고 부르고 있다. 물닭은 물에만 있는 닭이다. 호수를 가만히 들여다 보는 사이 비는 내리고 비실비실 비치는 물닭은 자기를 보며 어리는 물의 꿈을 듬북뿍 먹어놓고 있다. 혹여 먹이 대상이 물고갈가봐이다. 그러나 물닭은 달아난 물고기를 그냐앙 바라보며 아장 아장 호수야 한 바퀴 돌아 비야비야 비비와라고 좋아라하고 있다. 이제 호수에 들어앉은 빗방울은 여름을 창창 달아서 먹이느라 바람쯤 단꿈이야 느긋이 여름익으라 비야비야 비비와라고 비가 비를 부르고 있다.
먹고 싶은 게 있다. 사랑타비비이다. 오직 먹을 게 없으면 사랑타비비하고 싶으겠는가? 이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자는 천국이 저희것이라 하였다. 오히려 축복으로 들리는 사랑타비비는 하늘이 나에게로 긴 줄을 내리나요라고 감격하고 있다. 얼른 긴 줄을 잡느라고 사랑비 비에 젖어 담나요? 사랑타비비, 두 손안에 사랑타 두 손을 모아들고 두 손을 올리나요? 토다닥 모이는 그대소리 빗방울 사랑비비 하늘의 사랑타비비 두 손 안에 사랑타 비 소리 소곤소곤 살포시 내리나요? 비 모아 봄이 피게 담으려 사랑 비는 두 손에 사랑타비비 종소리다. 그것은 사랑타 사랑을 잔뜩 안은 시적 화자의 행복이다. 지금 한창 여름이다.
벚꽃사내비비는 시적 화자가 여성이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겪는 현깃증 어지럼증 도지는 날이로다. 하늘이 얼굴에다 덧분을 잔뜩발라 눈 둘 길 몰라몰라라. 지금 내 눈 뱅글 뱅 돌아라. 봄만으로 꽃나무 동네만도 나로선 과분하여 몸 둘 길 모르는데 분홍의 얼굴되라고, 덧분까지 발라서 현깃증 돌아돌아, 발길이 뒤뚱뒤뚱 파아랑 모자까지, 아이고 마 내사 마 눈 둘 길 없어라 마아 모르겠다. 봄 사내에 대한 연정이 불솟듯하고 있다. 벚꽃나무이다.
이 시적화자는 여성이 남성인 벚꽃에게 유혹당하는 표면구조이다. 미친 짓이다. 미친 거는 또 있다. 햇살꽃비비시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여름날의 신기루가 일어났다. 햇살에 비기 비비며 온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 왔다가 햇빛 났다. 햇빛이 비치는데도 가는 비 내리는 거, 이것은 사랑이 햇살꽃비비이기 때문이다. 햇살꽃비비 사알사알 꽃비비고 있다. 꽃비는 꽃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꽃모양으로 내리는 비이다. 그냥 오는게 아니라 싸비비며 내리고 있다. 그것도 햇빛이 숨 쉴 사이 내리는 꽃모양이다. 사랑이 햇살꽃비비며 비쳐오는 꽃비비이다.
시인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눈물은 비이다. 비가 싸비비며 위로해준다. 풀잎꽃잎물별도시는 눈물이 하늘가에 올랐네, 풀잎꽃잎이라 하고 있다. 울며 눈들어 하늘가에 올랐네, 풀잎꽃잎의 눈물이다. 비가 주는 답이 눈물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풀잎꽃잎이다. 물별도 빛남을 들어주며 위로려 이슬이 하늘이슬이라 말해준다. 눈물이 하늘이슬이라며 눈물이 내리면 이슬이라 내리며 하늘이슬이라 답을 해 준다. 그러므로 그냐양 내리는 비가 아니라 비와 풀잎꽃잎이 같이 된 이때의 내린 풀잎꽃잎이 하늘하늘 물별도 되어 이제는 울음을 거두고 아침이 해실해실 은빛이 되어 있다. 해실해실 웃느라 햇살이고 꽃모자 쓰고나서 별처럼 반짝이느라 해를 담은 물별이다. 이 싸비비어 위로해주는 물과 꽃잎과 별의 위로를 받고도 행복해 지지않으면 그것은 시인이 아니다.
정말. 시인을 위로해주는 비는 그냥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오시네비비이다. 봄비를 좋아하는 바람이 나를 봐요 비 두둑 비의 창을 비비며 비오시네, 비비며 비 아름으로 촉촉하게 오시네라고 시를 지어 화답한다. 비가 그냐앙 오는게 이나라 시적화자를 향해 비 방울 바리바리 싣고서 나를 봐요, 비는 날 기쁨비비 비날개 달아 주는 비비이다. 비 둥지의 비 비 날개로 오시네, 견딜수 없는 고마움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계에 있는 위로로 비비는 마음 창의 비단비 비비대며 비알들 물알되어 비비며 비 오시네이다. 비는 날 촉촉이 적셔 초롱초롱 오네요이다. 눈가에 울음이 이제는 웃음으로 바뀌어 비가 초롱초롱옴으로 눈빛도 초롱초롱 해진다. 이 은혜야말로 가슴이 적셔지는 비이다.
좋아하는 사이는 같이 있고 싶어한다. 방안에 있는 시적화자에게 들비비의 사랑이 들려한다 네게로 들어오려 문 열어 달라고만 깃을 털고 보챈다. 잠자리 들려하는데 문 열어만 달란다. 문 열어 주잖아도 사랑이 들리는데 목소리 그 하나로 알아서 느끼는데, 자꾸만 문 열어 달라 보채고 또 보챈다. 이런 날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붓을 들고 창가에 앉아 시를 읊는다.
2눈물도 빛나면 반짝비비이다. 이곳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함을 노래한다. 시인이 시를 짓는 시간은 낮의 일상성의 시간이 아니라 밤이다. 특히 0시에 깨어나서 기도한 눈물에는 물바다 반짝비비 섬들이 깃을 털고 섬 같은 푸른 바람이 하아야니 빛나면 시를 짓는다.
시를 짓는 시각은 나이아가라폭포비비가 보이는 시각이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영감교류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비를 방안에 들이지 않아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이아가라폭포가 비비며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온 소식을 전해준다. 참으로 사람은 영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다 알게되는 체험을 가진다. 그것의 그리움 하나하나 적고도 꼭꼭 접어 봉투에 나이아가라 탁 튕기며 올릴까 해 본다. 그게 바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온 울림이다. 물들이 물을 떠나 흰 포말 하늘에다 올리며 그리움 하나 붙잡고서 내려오며 울릴까, 나이아가라의 호소를 듣고 있다. 얼마나 그리웠음 흰 포말 가득가득 담고서 춤추면서 재빨리 내려오나. 자아알 계셨습니까 안부부터 띄울까. 가장 그리운 것은 자아알 계심이다.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자알 계시면 그것으로 마음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이 행복은 겪어본 사람이 자알 알고 있다.
앵두앵부비비볼시의 시적화자는 하늘에서 은혜를 받는 대상이 사람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온산이 붉은 이 봄 뒤뜰에 나뭇가지 이파리 새파랗게 달면서 거기에다 앵두볼 수줍게 빨간 앵두앵두 비비볼이 되어 있다. 누가보라고 하여 전시된 것이 아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몸짓은 바로 앵두 그가 하늘을 향해 감사하다는 표시가 아닐까. 바람이 이를 알고 앵두가 뒤뜰에 가득히 늘어서자 바람이 뒤뜰로 와 앵두 볼 물 오르자 앵두 볼 처녀 깃에 처녀의 가슴에 손이 앵두앵두 비비볼 기회를 얻는다. 앵두가 아장아장 걷는다 아장아장 빠알간 앵두 입에 넣으려 입에 물자, 앵두는 조금씩 부푼 앵두앵두 비비볼 처녀야 앵두나무 밑으로 들어와서, 고옵게 인사하자 쬐금만 먹자 하는 새까만 앵두나무에 앵두앵두 비비볼 지금사, 앵두나무 빠알간 알을 낳기 시작한 나무아래 깃들인 앵두 볼이, 한웅큼 앵두 볼로만 앵두앵두 비비볼 볼우물 분홍 잔을 받아서 넣어두는 뒤뜰이다. 온 통 온 통 앵두 잔 앵두잔치 뒤뜰은 꿈꾸기로만 앵두앵두 비비볼이 되어 있다. 바람과 앵두사이의 시적 은유는 금단의 열매인양 유혹을 넘어선 아름다운 신화를 지금 쓰고 있다.
시적화자에게는 어린이, 특히 어머니와 떨어진 아기가 울때의 몸짓이다. 그리고 엄마가 움직이면 한사코 울음을 그 방패막이로 한다. 그것은 그리움이 무지무지하게 쏟아지는 표현이다. 눈물이 그리움으로 가득 찬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어린아가는 서정의 눈물시를 쓰고 있다. 그리움비비이다. 아아주 어어릴 때, 그때에 어린이는 그 때에 처음으로 그리움 그리움을 배운다. 엄마와 그리움비비 떨어저서 그리움 배우는 그리움은, 날마다 커지면서 산은 늘 혼자이고 강은 늘 흘러가며 그리움 그리움비비 거기 엄마 그리움이다. 할머니 외할머니 집에서 나날마다 진달래 뒤집기를 배우고 나날마다 어릴 때 그리움비비 아이 되는 그리움배우기,
사람은 혼자서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 특히 그것이 사라하는 사람과의 사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 외로움을 시적 화자는 사과밭의 사과씌우기를 벗기는 작업으로 한다. 연분홍 사과비비는 연분홍 사과비비 두 손을 함께 모아야 한다. 젤 먼저 흰 색 종이 우선은 걷어내고 다음엔 보름 지나서 두 손 안의 사과는 알몸이 되어 있다. 그 안에서 연분홍 사과비비 나온다. 수줍음의 빨게 진 볼 얼굴을 두 손의 조심으로 싸 담아 하 이뻐이뻐 쓰다듬는 사과는 이미 외로움이나 눈물이 아닌 기쁨이 되어 있다. 더욱더 연분홍 사과비비 벗겨진 사과들로 사과밭 가득가득 놓인다. 초가을 사과밭을 봄 분홍 얼굴로 얹어 다시 피는 사과는, 연분홍 사과비비 햇빛을 흠씬흠씬 받으며 더 빨게 질 거라며 나란히 늘어지게 놓여진 분홍얼굴이 더 빨개진 사과이다.
삶을 무겁게 혹은 사뿐히 살아가는 방법 중 시적 화자는 후자를 택한다. 사뿐비비에서 사뿐한 향기로움 종치는 소리로 난 두 발로 사뿐비벼 종치는 소리로 난 사과알 나란나란히 벵그르르 놓인다. 이 때의 시적화자는 사과이다. 사과는 과일의 사과이지만 상대방을 향한 마음의 낮춤이다. 사과밭집 딸의 경험을 가진 시적 화자는 감사하고 있다. 이제는 시로 물든 비비이다. 드맑은 물이 들어 온 몸이 반짝비비 빛나며 물방울이 이슬로 내려앉는 인생을 한 자락 끝이 물든비비 비비비가 내리는 삶의 여정을 하고 있어 가벼웁다. 그 가슴에는 초록아름꽃다발이 안겨있다. 많은 색채중에서 초록은 기다림의 지붕이 하 맑은 날 꽃덤불 지붕위에 바람이 주렁주렁 하늘의 아름꽃다발 초록지붕 엮인다. 초록은 기다림이 지붕에 얹어지는 꽃덤불 지붕 위를 그리움 한 아름의 내 집이 아름꽃다발 초록지붕 엮이는 것이기에 선택한다. 이 선택의 자율성은 성경이 애초부터 사람을 나그네에 비유하였고 야곱은 나그네 인생이라 하였다. 나그네비비에서는 나그네이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심의 감사함이 스며있다. 푸른 낮 나그네로 요 나의 꿈을 들고 서로들 의지하며 꽃잎의 붉음으로 꿈덩굴 나그네비비 꽃피도록 여름낮이다.
하나님일하기에 바쁜 요나의 인생이 되어 있다. 이 때의 요나는 성경의 요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지시하면서 요 나라 하고 있다. 나그네에게 비가 오고 있다. 비와 시적화자사이는 우리비비사이다. 초록손 닿더니만 꽃나비 우리되어 훌훌훌 어려움을 폴폴폴 날리면서 우리는 꽃바구니로 한 맘 가득 담아서 사는 나그네의 삶은 요 나의 꿈비비는삶이다. 아직도 요 나의 꿈 비비는 아침의 붉음으로 하얀 낮 뜨거움의 밤동산 달따가가 덤불에 분덩굴 풀어 꿈 비비는 요 나의 삶이다. 요 나의 기다림의 끈기는 꽃덤불의 꿈얘기 차랑차랑 늘이어 지붕 위를 꿈동산 되게 하도록 꿈비비는 요 나의 삶이다. 요 나의 푸른 낮에 나그네 나며들며 서로들 의지하며 꽃잎의 파란입술 꿈 덩이 켜켜이 살려 꿈 비비는 요 나의 지붕이 하 맑은 날 꽃 덤불 지붕 위를 한참을 푸르도록 엮어서 보여주려 하늘의 아름다발로 꿈비비는 요 나의 삶이다. 이 시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서정에 머물고 있다.
비비는 대상은 자연의 시적 화자와의 소통인 대상들이다. 그들과 비비느라시는 자꾸 태어난다. 빨강의 파랑노랑 초록의 파랑노랑 노랑의 바구니에 빨간꽃 철이들면 꽃물이 앉아들더니 초록손이 닿더니 마디는 꽃나비비 초록손 비비느라 폴폴폴 꽃바구니 호르룩 나래바람을 비비느라 바구니가 가득찬다. 아울러 소리비비가 탄생한다. 이 입술에 빨강노랑 다홍의 목소리가 파랑의 다홍리듬 천사의 소리비비 목소리 울려 퍼지는 새하야니 첫비비이다. 첫사랑을 고백한 사람에게로 향하는 순진한 회답으로 성가대를 8년간 봉사하며 나온 목소리이다. 사람의 살아감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삶이되어 갈수록 수세미비비가 된다. 수세미 주렁주렁 운동장 한 옆에서 여름을 익혀두고 늘어진 가을 길을 열매로 수세미비비 주렁주렁 비비며 살아온 살의 여정이다. 이름하여 그것이 그리움비비이다. 굽구비 두루마리 옛 날엔 내 걸음만 당신이 펴 놓으시고 바람도 잠자거라하늘의 그리움비비 몸담으며 숨어라 하였던 일이다. 그리고 지금 굽구비 두루마리 오놀은 내 마음만 당신이 보이시고 디딜땅 밟아보라마음의 그리움비비 구슬로서 지내라는 명령을 듣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대신 마음물 편지를 쓴다. 웃옷을 입음같이 빛으로 갈아입고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는 그 안에서 물 누각 들보를 얹어 구름으로 수레를 택한다. 수레에 바람 날개 달아서 바람으로 자기의 사자삼아 샘으로 골짜기에 솟아나 산 사이에서 흐르메 짐승에 마시우게 하시고 들 나귀로 공중의 새들까지 그 가에 깃들이며 바람이 나뭇가지의 사이에서 흐르게 하는 이를 따르는 삶이다.
3부는 하니 비비(飛飛)’이다. 지극히 공의로운 분의 은혜로 하늘 나는 행복을 맞보는 은혜로움을 주신다. 그대는 나에게 오실 때 물묻혀 오시느라 맨살로 방울방울 눈으로 오시는 이어서 또 내가 간지럽다. 때문에 장미를 가슴에 안고 하늘 끝을 건네는 삶이다. 구체적으로 오시는 이의 특징은 포롱포롱비비이다. 물들에 물방울이 피느라 포롱포롱 물속이 다 보이네. 눈 속에 포롱포롱 쌓느라 물방울마음 포롱포롱이다. 파랗네, 하늘꿈 내리느라 보드람 그대로로 방울져 포롱포롱 물두께 포롱포롱 쌓느라 하나로로 다 얹어놓네 파랗네이다. 이영지의 삶은 축복받은 삶이다. 이토록 마음에 닿는 시들이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찰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함이다. 왜냐하면 시적화자에게 대상은 늘 알랑알랑닥아오기 때문이다. 대상이 닥아오는 시적은유는 방긋이 어리다가 닮아진 호수위와 호수는 짝꿍이다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복사꽃 알랑알랑 오늘은 복숭아꽃의 호수비비 어리는 일이다. 어려서 말 못하는 진달래 데리고 와 바람이 하늘하늘 호수가 알랑알랑 하늘이 바람 따라서 호수비비 어린다. 이 경지의 알랑알랑하는 모습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알싸한 리듬으로 폴포르 내립니다. 야트막 가지 잎에 폴포르 내립니다 닿을듯 닿을듯이만 호수비비 어리는 일로 닥아온다.
입술에 닿을 듯이 닿을듯 닿을듯이 가늘게 휘늘어진 허리를 감싸 돌며 닿을듯 손을 내리며 호수비비 어리는 경치 앞에서 시인은 행복하지 않으면 바보이다. 이제는 꽃비꽃비물비이다. 닿을듯 닿을듯이 두 손을 내밉니다. 닿을듯 닿을듯이 두 손을 뻗칩니다. 이토록 이영지 시인의 시는 행복과 감사함으로 일관된 시로 되어있다. 사는 일생이 꿈꾸듯 늘 비치느라고 촉촉히로 납니다라고 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이 파아아란 하늘이 나옵니다이기 때문이다. 하늘물 파파아란 물이 돼 나옵니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새 하늘물새로 햇빛 손이 납니다이다. 이렇게 이영지의 세계는 어떤 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로비비로 이어지는 것은 물을 만나 몸이다에서 들어난다.
이 몸이 다빈도 현상을 일으키면서 호수물새 몸, 하늘물새 몸이 된다. 몸과 대상과의 등가성은 몸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에 대한 환치로서 그 대상이 호수가 되었다가 하늘새가 된다. 그리고 햇빛물새 몸이다 햇빛물이 몸이다 맑은 음표 몸이다. 호수이다. 호수는 맑은 물발음 그 하나로 몸이다. 이토록 시적화자의 마음은 어떤 어두움과 결합하지 않고 맑은 물 발음소리를 낸다. 때문에 아리아리비비의 연속성 위에 사랑이 내리는 곳이 호수가 된다. 은 하늘호수기기 때문이다. 이 하늘호수는 물의 꿈이기도 하다. 하늘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시인뿐만 아니라 호수도 가능함을 시적화자로 하여 아름다운 자연이 곧 삶의 지탱의 시각적 호수가 되고 있다. 그 물은 그냥 비치는 것이 아니라 묻은 물을 수줍은 진달래로 진달래 잔물결 되어 아리아리 비비는 호수를 만들어 낸다.
이영지 시의 근원은 사랑이다. 사랑비비는 작업이다. 예수님이 물으신 물은 네가 날 사랑하느냐녜네에에라고 대답을 하는 이 사랑비비는 이영지의 온 삶을 행복하게 한다. 한 개의 꽃잎이되어, 꽃잎의 행복은 초록물결에 둘러 싸여있을 때이다. 행복의 조건을 알려준데 대해 시적화자는 그래요 알려주신 그대로 초록물결 그것을 알고부터 그리로 꿈길에서 네가 날 사랑하느냐? 당신 음성 내린 날 꽃눈이 꽃나무에 햇살이 담뿍담뿍 네가 날 사랑하냐? 꽃향이 마구마구 네가 날 사랑하느냐? 뿌려대며 내린 날 네가 날 사랑하냐? 꽃불로 화안하게 꽃불을 들이대고 꽃입술 들이 대고 네가 날 사랑하느냐? 눈감기며 내린 날을 행복하고 있다.
예수님이 네가 날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에 대한 답으로 잎피느라 비비새가 되어 그 하나만 하나만 안고지고 가득히 피다지다 봄꽃이 피다지다가 잎피느라 비비새가 되어 있다. 이 과정은 눈비비에서 눈 멀은 상태에서 눈비비어 눈이 열리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처럼 사랑을 말 하려고 나무에 날아올라 거꾸로 매달리며 눈비비 어 꽃눈이 봄에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영적 행복의 과제는 태양비비에서 더 구체화한다. 시적화자와 등장하는 절대자의 거리는 너무 멀음을 태양비비로 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뜨거운 사랑아래에 나뭇잎이 돋아난 기적을 체험한다. 이 체험은 무채색비비에서 무던히도 애썼던 당신의 앞 뜨락의 옷에다 아슴아슴 꽃 수술 달아보려 손 떨림 봄 눈 따서 무채색 하늘 깃이며 나그네의 들길을 고백한다. 앞으로 나서거나 잘 난 척 하기를 싫어하는 가리비비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만 서있기를 희망한다. 이로 하여 이영지시조 세계는 은비늘비비가 솟아있다. 햇살이 비치는 일을 감사로서 하는 그러나 조용하고 싶은 마음은 늘 은비늘비비를 선택한다. 그것은 고기의 모습이며 신앙자의 모습이다.
이아침 이파리에 하늘의 햇볕 받아 화살의 빛살 받아 은비늘 등에 업어 한 치로 은비늘비비에 온 아침이 탱탱한내실에 서 있다. 이러한 경지는 평소의 꿇비비에서 온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얻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 답으로 무릎을 아주 꿇고 재주도 신발 벗어 새싹의 등을 업어 꽃 보라 봄을 안아 후루루 들어 마시면 나직하게, 볼우물로 견디는 그야말로 초극의 경지에 들어간 삶이다. 그토록 소원하는 사랑해를 읊기를 원한다. 스스로 사랑하기를 소원하는 실천을 아직은 미흡하지만 그래도 그 소망을 더욱 놓지 못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길이기 때문이다.
4속삭임비비는 하나님이 속삭여 주시는 속삭임을 듣고 싶어 한다. 때문에 그대의 감싸주는 손길에 들어선 이후 가만히 들려오는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에 속삭임비비 푸른 숨을 마셔라라고 방향까지 제시함을 체험한다. 이 시적화자에게는 아침이 뛰어온다. 새꽁지 햇살 묻혀 별꽃이 수를 놓게 가만히 내려앉는 한 아름 속삭임비비 꽃다발을 마셔라라는 소리를 듣는다. 손비비에서 손으로 그의 소리를 체험하면서 너울의 건반사이 눈부신 안음 노래를 부른다. 바람의 손끝에서 꽃잎이 하얀 손등에 몽울몽울 꽃송이를 날리면서, 너무 들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안개비비로 은빛너울을 쓰고 사알짝 은빛무지개 사이로만 내민다. 시적 화자의 이 습성은 겨우우 보이는 솜털비비일뿐이다. 주위에 비하에 익숙한 삶의 체험에서 이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일이다. 이 길은 누나는 파랗다의 시적화자이기도 하다. 십자가라면 너무 무거운 듯하지만 시적화자는 오히려 그 안에서 시의 비빔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오히려 그로 하여 더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가다듬는다.
울 누나 후울후훌 벗어버린 삶의 여정은 구십세 아버님과 어머님 손잡고서 산길을 걸어간다. 산수유 노오란 길을 순이 누나 파랗다라고 고백한다. 이 파란 삶은 이제 노오랑 아지랑이 산수유 노오랑 새 노랗게 걸어간다. 너무나 많이 닮은 새파란 버들피리가 앞서면서 파랗다고 고백하기에 따라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붙들린 순이 누나 가지가 울렁울렁 살포시 휘어지며 보일락 말락하게 웃음을 풀어놓느라 천천히도 파랗다.
비비오느라의 길은 이제 오히려 햇살이 새하얗다 못해서 닥아온다. 하늘이 새파랗다 못해서 닥아온다. 물맛이 파랗다못해 닥아온다 해달고의 역설성은 그 동안의 아침마다의 새벽기도와 그대를 먼저 생각하는 하늘이 준 마음에서 얻어진 깊이이다. 하늘하늘비비2회리듬에서 이 시집에 추구하고자 한 22단위의 하이퍼성 이이의 가까운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였던 일에 감사하며 고마워하는 시집이다. 결코 자의적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써 내려갔던 새벽기도가 이제는 그 열매로서 사랑하는 이이를 향해 2200단위의 이 사랑비비행복시집이 하늘하늘비비고 있다. 없는 듯 있는듯이 꿈꾸듯 아니듯이 약간은 포르스럼 약간은 하야스럼 하면서 옥색을 두른 그대가 내 눈 안에 오느라는 시적화자는 행복하다. 옥색의 도포자락 꿈꾸듯 날리는날 열두폭 치마에다 옥반지 두르리이 물바른 옥색치마가 하늘하늘 오느라 시적화자는 행복하다.
이러한 시적화자의 맨살비비는 경상도 두메산골 소나무 잎사귀는 가슴 빛 소나무로 열두 해 넘기고도 맨살을 촘촘히 엮어 나에게로 주길래, 한 잎을 넣어두고 바람의 한 잎으로 하늘을 떠받들자 꽃보다도 아름다운 풀잎이 나에게서도 돋아났다. 너도 볼래 어서와, 홍보석 열두개의 뿌리로 내려 앉아 일제히 빛이 되어 잎들이 다시 나서 하나로 붙자마다 또 잎 하늘 한 장 맨살에의 하늘 푸름을 이고 있다.
물우산비비면서 빗소리 구워내는 우산을 쓰고 나면 수직의 메시지가 뜨면서 명령이다. 젖으며, 물 옷 입으라! 그리고는 기다려! 치마로 젖어들라 가슴이 젖어들라, 당신의 눈빛만이 젖으며 우산쓰고 거기서 여기까지 온 수직법을 읽으라!라는 절대명령을 듣는다. 이 시적화자는 오히려 사랑비를 더욱 맞으며 젖어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사랑비를 맞기를 시적화자는 바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하나님이 명령하여 축복하러 내래오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로 한다. 좀더 촉촉한 비맞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종일을 비에 젖는다.
이제 이영지 시인의 몸은 뚱뚱한 바람배이다. 성령의 배로 하여 시적 화자의 배는 남산만큼 불러있다. 바람배 남산만큼 불러서 종소리다. 바람이 댕그렁댕댕 햇빛마당 익힌다. 바람의 앞마음을 댓비로 싹싹쓴다. 사랑을 마당가득 불러서 종소리다. 바람이 햇빛마당을 동그렇게 익힌다. 바람은 시적화자의 성령의 바람이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나무로 있다. 구름의 삼천삼백 계단을 오르려고 해 뜬 땅 불붙듯이 가슴이 활활타는 그리움 가시떨기의 앞마당에섭니다이다. 그리고는 일평생 그리움 목걸이를 걸고 절대그리움을 노래한다.
 
 
 
 
 
 
해설
 
이영지 기독교시학 2
 
 
 
이 영 지
(문학박사 · 철학박사 · 시인 · 시조시인)
 
1. 물의 의태어
1). 시인의 눈
이영지의 시와 시조에서 들어나는 물의 의태어에 대한 하이퍼(HIPER)성의 연결잇기를 위한 기본 근원은 눈이다. , 시인의 눈은 사물, 곧 물을 시인이 눈으로 봄에서 시의 의태어가 탄생한다. 시인이 사물을 보아 객관화함으로써 시의 의태어는 역동적 상상력의 구체성으로 된다.
 
 
(1) 히브리어 성경 언어에서의 눈
 
시인은 사물을 일차적으로 눈으로 바라보고 그 다음에 보여지게 된다. 눈에 대한 기본개념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언어는 히브리어 성경기록중의 하나인 여호와 보시기에י󰗽י󰘠󰔶(브에네/보시기에/왕하 24:9) 언어 발음 브에네이다. 한국의 한글에는 보이네혹은 뵈네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나 히브리어 모두 발음이 보이네뵈네이다. 내용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사람들에게 보이네’ ‘뵈네이다. 곧 사람들에게 눈이 있기에 대상을 볼 수 있다. 히브리어의 글자풀이는 하나님 집 안에 들어 있어야 눈으로 볼 수 있다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눈י󰘠(/)이기에 하나님은 사람의 눈을 뜨게도 하시고 감기게도 하시었다. 성경은 사울의 눈을 감기게 하시었다가 뜨게(사도행전 9:1-9) 하시었다. 삼국유사에서는 경주 한기리의 여인 희명의 아들이 생후 다섯 해 만에 갑자기 눈이 멀게 되자 분황사 좌전(左殿)에 있는 천수대비의 벽화 앞에서 아이로 하여금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마침내 밝음을 얻었다는 십구체(十句體) 향가 희명(希明)의 작품이 있다.
눈에 보이는 일에는 물리적인 일 곧 자연현상 곧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일과 이로 인한 인간의 정서를 덧입히는 시인의 시가 있다. 이 때문에 시인들은 우선 대상을 바라본다. 여행을 하던지, 집안일을 하던지, 혹은 직장에 다니던지 간에 무엇이든지 보게 된다. 시인이 한 대상을 처음 보기를 시작하여 계속 보는 시간이 더 늘어날수록 시인들은 이에 집중하여 시를 만들게 된다. 이 때 의태어 시가 탄생한다. 시인에 의하여 시인 나름대로의 정서를 덧입혀진다.
시인에게 있어서 눈은 상상력과 직결된다. 살아있음의 근거로 사물을 보며 상상력을 동원함으로써 하늘과 강과 땅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들딸과 그리고 부모를 바라보며 시인이 겪어온 일상의 일들이 순간적으로 지나가면서 호소하는 서정의 시를 쓰게 된다. 따라서 시인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리고 순수로 돌아가는 마법사에 걸려 자신을 회개하듯 써 내려간다. 이러한 정서는 시인이 살아온 역사이며 하루의 일기이다.
 
(2). 눈의 특성
 
시를 보면 그 사람이 거울처럼 들여다 보인다. 눈의 생물학적 특징은 홍체와 동공을 제외하고 눈 전체를 감싸는 흰색 부분은 각막이다. 각막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굴절시켜 수정체로 보낸다. 수정체는 각막과 함께 빛을 모으는 굴절기관이다. 수정체를 둘러싼 모양근의 수축과 이완으로 수정체 두께가 조절되어 가깝거나 먼 거리에 초점을 맞춘다.
각막으로 들어온 빛이 굴절되어 굴절체와 간상제와 추상체가 있는 망막에 상이 거꾸로 매치게 된다. 이 상은 눈 뒤쪽에 시신경 신경섬유다발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이 섬유 다발 중 간상체가 추상체가 없어 상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맹점이라고 한다.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정보가 전달되면 원래모습과 같은 상을 통해 정보를 파악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눈은 양안시로 양쪽 눈에 매치는 상을 하나로 합쳐 거리를 가늠한다. 몸을 돌리지 않고서 보이는 거리를 시야라고 한다. 이러한 눈의 특징으로 하여 사람은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시인은 다양한 대상을 시의 장르로 표시한다. 이영지 시에서의 의태어가 탄생하는 그 일례이다.
 
 
2). 안상반점
시인의 눈동자 속으로 아름다운 색깔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눈의 홍채가 아름다운 색깔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곧 안상반점(眼狀斑點, ocellėe)이 된다. 사실 보이는 것과 시각과의 차이는 이 때문이다. 시인에 따라 달리 대상에 대한 의태어가 탄생한다.
 
오랑캐꽃의 우아한 눈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의 색깔이 자신의 색깔이 닮게 될 때까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의태어의 탄생은 시인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시인의 눈도 푸른 하늘이 되는 이 닮음 옮기기가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지시한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비처럼 촉촉이 젖는다. 김민정은 이영지 시조 바리바리 비를 시의 향기란 평으로 첫 수에서는 비단비 같은 단비가 내리면 마음이 촉촉하게 젖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가뭄 끝에 오는 눈물비라고 하여 비를 기다리는 들판을 적셔 초록 들판이 되기를, 셋째 수에서는 비단비를 맞고 초롱초롱한 맑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였다고 하고 있다고 하였다.
 
 
 
단비를 좋아하는 바람이 나를 본다
 
후두둑
마음 창을 비단비 비비대면
부비어
한 아름으로 촉촉하게 젖어라
 
물방울 바리바리 싣고서 나를 본다
가뭄의 눈물비에 비날개 달아 주며
초록비
바리바리 비 타는 들판 젖어라
 
후두둑 마음 창을
비단비 비비대며
비알들 물알되어
부비며 비 오신다
머릿결 촉촉이 적셔 초롱초롱해져라
- 이영지 바리바리비
 
비 온다
비 열린다
입술이 귀에 걸린
머리로 들어오는 심장을 열어 두면
슬픔도 열매가 도어 주렁주렁 열린다
 
등어리 뱃가죽이 몸에 착 달라붙어
심장에 들어가기 전에 젖꼭지 끝을 지나
영혼이 흔들릴 요람 바다 열린다
 
햇빛 그
주님만이
담긴 그
밤을 지나
꽃잎의 꽃순이로
늘 만난 십자가의
무늬에 등 닿는 찰나
 
비 열린다
비 온다
- 이영지 비 열매
 
하늘이 나에게로 긴 줄을 내리는 날
긴 줄을 잡느라고 종일을 비에 젖어
담는다
가느다란 비
한 줌안에
사랑비
 
두손을 모아들고 두 손을 모아 펴도
토다닥
모이는 건 몇 방울 사랑비다
하늘을 받아내리는 내 손 안에
사랑비
 
비소리 소곤소곤
사랑탕 말아들면
비에서 나는 그대
바람비
사랑비는
두 손을 받들게 하는 종소리다
사랑비
- 이영지 사랑비
 
사물 곧, 물이 되어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시인에 의하여 시가 탄생한다. 비를 바라보다가 비에 젖는 마음이 되는 진행과정이 전개된다.
비는 히브리어로 계심으로 발음된다. 비는 수직으로 내린다. 이영지 시조에서는 이 비의 의태어가 자주 등장한다.
 
훗훗한 봄바람을 비비며 울렁울렁
정말로 꽃이 되는 봄 가슴 찰랑찰랑
꽃비가 꽃바람으로 가는 길에 봄가슴
- 이영지 봄가슴 찰랑찰랑
 
 
꽃물을 말아 올린 꽃비비 꽃바람을 물고는 두루비벼
사알살 돌리다가
오는 이
반가운 비에
비비느라
꽃 사람
- 이영지 꽃물을 말아올린 꽃비비
 
벗이요 그대는요 비오는 날에만은 분홍옷 분홍우산 분홍옷 분홍구두 분홍옷 분홍치마를 두르는가
분홍비
- 이영지 분홍비
 
봄비는 사랑비다
사랑을 맞으려고 우산쓴 사랑비다
사랑쓴 우산비다
입술에 빗방울 콕콕 사랑방울 콕콕콕
- 이영지 사랑비
 
여름비 호수안에 단 꿈을 푸느라며
물닭이 호수안을
들여다 보느라며
호수 안
한복판에는 여름비야 내리라
 
어리는
물의 꿈을 듬북뿍 먹어놓고
달아난 물고기를
그냐앙 바라보며
호수가 한바퀴돌고 푸른비를 내리라
 
호수에 들어있는 빗방울
여름창창 달아서
먹이느라 바람쯤 단꿈이고
느긋이 여름익으라 비잉돌고 내리라
- 이영지 비야비야비야와
 
사랑비
멜로디가 들린다
토닥토닥
단모음 동그라미 또르르
또그루루
또르르 달콤콤하게 속삭이는
- 이영지 사랑비
 
하루에 비가 세 번 왔다가 햇빛 났다
해빛이 비치는데도 가는비 내리는 거
햇살이 활짝 피는데 사알사알 꽃비다
꽃비는 꽃이 아닌 내리는 꽃모양비
햇빛이 숨 쉴 사이 없이도 꽃모양비
햇빛에 비가 꽃이 된 그야말로 꽃비다
- 이영지 꽃비
 
구슬이 굴러간다
구르던 구슬 속에
어머니 그리움이
떨어진 물이랑에
또르르 피마자 잎이 또르또르 또르르
- 이영지 비구슬
 
사랑이 울고 있다 네게로 들어오려
문 열어 달라고만 보채고 또 보챈다
잠자리 들려하는데 문 열어만 달란다
 
문 열어 주잖아도 사랑이 들리는데
목소리 그 하나로 알아서 느끼는데
자꾸만 문열어 달라 보채고 또 보챈다
- 이영지 봄밤비
 
하아얀 라일락이
보라의 라일락이 대문을 활짝열자 보일락 말락하던
머언데 산이 코를
들이대 향기 담느라 향기비가
내린다
- 이영지 라일락 비
 
비가 내리는 방향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수직성이다. 이 수직성은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한국 존댓말에는 계심이 있다. 히브리어의 ם󰚆󰕃(게쇰/, 7: 12)이다. 비는 하나님 계심의 뜻이다. 매우매우 ד󰔠󰗱 ד󰔠󰗱(메오드 메오드/아주 많이, 7: 19) 많이 내리는 양의 비는 하나님의 뜻이 계십니다이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표현을 한국인들은 하늘이 노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시인은 늘 혼자 있지 않다. 시가 옆에 있으면서 시인과 함께 같이 있어 주시는 계신자의 신분을 노출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그분의 입김으로 여기며 비가 오면 그분이 계심을 느끼며 천둥이 치면 순간적으로 그 분을 향한 마음에 무엇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의 죄가 생각난다.
 
2. 바라봄으로 인한 의태어시 탄생
 
1). 눈으로 바라봄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시인의 눈은 거울이다. 작품 백조의 무희에서 주인공은 공작의 깃털 하나를 뽑아 하늘을 바라본다. 작가의 눈은 깃털에 머무른다. 이 표현을 바슐라르는 꼽힌 ’(l"oeil)은 거울(miroir)이라 하였다. 곧 대상과 대상을 바라봄에 집중할 때의 시각이다. 크로이체는 원초의 공작(le paon primitif)은 백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사랑스런 빠보!
사랑스런 빠보!
넌 무얼 보고 있니?
넌 무얼 듣고 있니?
어떤 사람이 올 건가?
누가 올 건가?
사랑스런 왕자님인가?
그 사람은 아름답고 멋진가?
넌 너의 른 눈으로 그 사람을 볼수가 있겠지?
(그녀는 공작의 깃털 하나를 공중에 치켜들고 깃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바라보여지는 대상과 곧 시와 시인의 일치는 먼저 시를 쓰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과 상상에 의해 그 일체일 때 가능하다.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시는 아름답지 않다.
때문의 시인은 늘 자기의 소리를 낸다. 옛날 시들을 보면 자연을 읊은 시가 많다. 맑고 푸른 산에 올라가 소나무의 솔잎 내음새를 맡으면서 자연히 시인도 그 솔잎의 내음새처럼 맑고 푸르고 향긋한 솔잎 내음새가 나게 시를 썼다. 맑은 하늘을 보며 그 깨끗하고 푸른 하늘의 높은 기상을 닮아 높고 맑고 푸른 시를 썼다. 온 들판이 꽃이 피어날 때면 꽃 따라 마음을 활짝 열고 꽃이 피는 그 사이로 날아드는 나비의 꿈을 읽곤 했다. 한국 사람들은 옷에도 풀잎과 꽃물을 들여 꽃 색과 풀잎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 때문에 아토피가 없는 시를 쓸 수 있었다. 벼이삭이 누릇누릇 들판을 황금색으로 펼쳐지면 그 사이사이에 넒나드는 메뚜기도 같이 바라보며 시를 썼다. 온통 널려 있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살 것들의 나무들을 가져다가 시로 덧 입고 살았다. 이 때문에 한국의 시인들은 대대로 정제된 시조의 절제성 속에 삶을 집어넣어 시조를 짓고 산, 정서의 민족이 되었다.
 
2) 시어 물의 의태어 종류
물에도 종류가 있다. 온통 물로 된 눈이나 비 · 시냇물 · 바다 · 개울 등 다양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의 시집 50권이 조사된 바로 조운 시조는 물을 시어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의 물이 되나 금강의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 진주 담과 만폭동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 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 천척절애에 한 번 굴러 보느냐
- 조운 구룡폭포
 
물에도 종류가 있다. 온통 물로 된 조운 시조 구룡폭포바다 옥류 진주 담 구름 서리 새벽안개 이슬 구슬구슬 팔담 구룡연으로 14회 변화한다. 물의 의태어는 1차적 의미에서 2차적 의미로 이동하는 은유로 한다. 물의 의태어가 지닌 하이퍼성은 이동 혹은 초월과 변화의미이다,
옥수수 참외참외 여름이 익는 밤이
참외 익혀가며 한낮을 걸어오자 내 산은 지금마악 한차앙 익어들고 마음은 한창 익어가 불러들인 강물에 강물에 한강물이 하안창 불어나며 가슴에 들이밀며 발목에 감아들며 커다란 부피로 들며 들이치는 한여름 하늘물 웃음속이 훠언히 들어나는 옥수수 촘촘히로 참외씨 촘촘히로 쾅쾅쾅 여름소나기 들이밀어 붙이는
- 이영지 옥수수와 참외의 여름
 
이영지의 시의 하이퍼성은 얼핏 보기에는 시의 외연이 여름 옥수수로 단순한 먹을거리 옥수수 같지만 이러한 외연과는 달리 옥수수 곧 한문화권으로 이야기 할 때 옥수(玉水) 곧 맑은 물이다. 옥수수(玉水水)는 아주 맑은 물이다. 이 시의 하이퍼성은 엄청난 시의 내포 옥수수이다. 한창 여름에 그 맑은 물이 더욱 맑아지는, 다시 말하면 물의 의태어에 대한 절대의 물의 가치이다. 참외는 참으로 익어가는의 의태어가 된다. 따라서 여름은 참된 진리가 익어가는 계절이 된다. 단순한 물의 의태어에서 벗어나 물이 그 양을 많이하면서 새벽기도가 주는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익어가는 이영지 삶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시에서의 외연과 내포의 긴장성이 있을수록 시의 하이퍼성이 된다.
중국의 한산자 시에서도 당시에 유행했던 남종선과 북종선을 함께 수용한 시에서 물가를 묘사, 곧 의태어가 가지는 아름다움이 시의 외연과는 전연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登陟寒山道(등척한산도) 길따라 한산으로 오르려 하려는데
寒山路不窮(한산로불궁) 한산을 가는길이 그 끝이 안보인다
谿長石磊磊(계장석뢰뢰) 계곡엔 돌무더기가 쌓이고 또 쌓였다
澗闊草濛濛(간활초몽몽) 드넓은 시냇가엔 풀들만 무성하다
苔滑非關雨(태골비관우) 비 오지 않았는데 이끼로 미끄럽고
松鳴不假風(송명불가풍) 바람이 불지않는데 소나무가 우누나
誰能超世累(수능초세루) 그대가 이 속세의 티끌을 벗어나서
共坐白雲中(공좌백운중) 흰구름 한가운데 나랑같이 앉을까
- 한산자, 역 이영지
 
오언율시의 한산자의 시는 寒山(한산)의 아래에서 계곡을 따라 수풀을 지나 흰구름 가운데의 절경을 혼자 보기 보다는 그대와 같이 보고 싶음이 있게 묘사한 의태어의 시다. 그런데 이영지는 이를 번역하기를 시조의 틀로 하여 양국간의 시의 전연다른 장르의 구별을 잇기 위한 노력을 번역시로 하였다. 이름이미지와 관련한 한산은 이미 한국에서 그대로 한산하다이미지이다. 이처럼 한자어든 한국어든 한국인들은 삶의 지혜로 언어의 의미를 여유롭고 한가함의 철학을 내세운다. 그것은 생활이 한산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서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보이지 않는 물의 의태어가 내포되어 있다. 공간적인 진행과정에 따라 제3연에서 한산도는 비가 내리지 않아도 이끼 미끄럽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소나무 절로 소리내어 운다고 표현되어 물이 이 나무들을 살리고 있음을 내포한다. 물이 은유되어 있다. 소나무나 풀은 물이 있음으로서 푸르름이 있을수 있다.
한국인들은 푸르게라는 말을 사용한다. 삶을 푸르게, 산을 푸르게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강은 푸르게 ג󰗞󰘵(페레그, 65: 10)이다. 성경은 땅에 물이 있을 수 있는 강이 있어서 주위가 푸르게 되는 의미를 전하려 한다. 한국말로 푸르게이다. 푸르게라는 한산자의 시에서와 같은 의태어의 의미를 은유하고 있다. 개울가에 심겨진 풀이나 심은 나무들은 물이 있음으로써 자라고 또 푸르름을 유지한다.
시냇물과 일반강 모두 물을 가진다. 이러한 물의 의태어는 한산자의 시에서와 같이 이영지 시조에서도 그 정중동의 의태어로 하고 있다.
 
가만히
등을 안아
하늘을 잠재우는
시냇가
물안개가 하얗게 올라간다
물에서 피는 꽃이라
수은등을 달았다
가만히 하늘 안아
바람을 잠재우는
바다의 물안개가 하얗고 더 하얗다
순수에 피는 꽃이라
하얀 문을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하늘을 달래기까지 하는 마음의 여유가 들어나는 정중동의 의태어는 하얀 안개의 진행과정을 묘사한다. 안개는 물이 있음으로써 발생되는 현상이다. 이 물의 의태어는 이른 아침 수면을 감도는 하얀 안개와 그 안개가 물 위로 오르면서 움직이지 않는 수은등을 동일시하면서 기독교적 의미의 하이퍼성을 내세운다.
바람을 잠재우는 물안개의 내력이 동적이 되면서 단순한 물안개의 내력이 아니라 절대자에 대한 능력이 숨어 있다. 이 시의 내포는 깨끗함을 가진 하얀 안개가 하늘로 오르는 현상으로 하여 그 의미비중이 하이퍼성이 된다. 하이퍼성이란 초현실적 절대세계에 대한 의미를 아름다운 시를 통해 드러낸다로 이 시에서 한정하였다. 한산자와 비교하여 시냇가의 정경은 단순한 의미를 벗어난 종교적 색채를 가미한다. 하얀 물안개의 동적기능과 움직이지 않는 수은등의 세계가 정중동이 되어 물의 의태어가 흰 색에 대한 순결과 거짓없는 자, 즉 종교적 의미로서는 신앙차원까지 그 깊이를 가미를 은유하고 있다.
물을 논할 경우 문학에서의 하이퍼성은 선시와 기독교 시의 구분이 있게 된다. 하위개념으로 선시가 """로 구분되듯이 기독교 시 또한 시와 기독교로 구분된다. 이에 대하여 중국의 두송백(杜松柏)도 시와 선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한다 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나약성으로 인한 마음의 정서는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정서표출을 희망한다. 이 때 발생하는 하이퍼성의 시는 물을 통한 의태어를 통하여 선시는 깨달음을, 기독교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점으로 구분된다. 그 비중은 자의적인 점과 타의적인 그 비중이 달라짐이다. 문학은 사람 곧 시인이 그의 마음의 세계로 하여 기독교인가, 아닌가가 확실하게 구분된다. 이러할 때 물을 통한 하이퍼성은 하늘로 오르는 관계를 기독교시는 가지게 되고 선시는 물의 순환성을 강조한다.
불교신앙시의 일례로 한화덕 시인의 시를 예를 들 수 있다. 내면에서의 깨달음이 전제되면서 특히 허무와 공으로 한다. 성불(成佛)하는 깨달음의 묘사는 다음 ()을 하는 나무에서 구체화한 의태어를 물든 마음의 추상어로 하고 있다.
 
산등성에 홀로 서서
지는 구름바다를 바라보다
붉은 석양 물 폭포수에
몸 담그고 속까지 물든 마음
세월의 용광로는 빛으로 부서져 내리고
어둠이 빛을 잘게 부수어
눈을 뜰 때까지
나는 하얗게 앉아 기다린다
- 한화덕 ()을 하는 나무
 
동적이라기보다는 불교시의 의태어 좌불형태의 존재, 곧 산등성에 홀로 서서 지는 구름바다를 바라보며 붉은 석양 물 폭포수에 몸 담그고 속까지 물든 마음으로 용광로가 되어 있다. 이때의 움직임은 없다. 어둠이 눈을 뜰 때까지 나는 하얗게 앉아 기다린다는 것이다. 하얗게 앉아 기다린다의 하얗게는 물든 마음의 결과를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그 결과 정화수로 빚어진 자신이 된다.
 
빛의 선율이 하얀 파도를 타고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 넘실나는 은빛 잔 물결위에
여여(如如)한 빛이고 싶다
밤새 내려찍은
가지의 정화수로 빚은
백설기 버무리
참 푸짐도 하여라
- 한화덕 춘설(春雪)에서
 
시인은 스스로 그 앎의 깨달음이 정화수와 백설기와 은빛 잔물결에서 하얀색의 이미지로 하여 바슐라르의 역동적 상상력의 3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바슐라르의 3단계는 하얀색의 성스러움까지 그 순수를 절대화한다.
이와는 달리 기독교시인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관계를 절대화한다. 왜냐하면 구원으로 연결되는 마음의 감사를 시로서 전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 나오는 의태어는 겉으로 표현화된 종교적 색체가 아니라 은유의 묘사를 통한 객관적 사물어를 통하여 전하여 진다.
선시가 깨달음에서 오는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이라면 기독교시는 시인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두 공통점은 기쁨과 즐거움과 감동이다. 이영지가 믿는 종교와 문학을 함께 하는 정서 속에서 펼쳐지는 행복감은 이 시집 사랑비비행복에서 보이는 사물의 경지를 바라보는 의태어에서 그 차이를 분명히 한다. 곧 기독교적 기쁨은 구원받았다는 타의적 은혜의 기쁨이다. 반면 불교적 감동은 자아에 치중하고 곧 성불의 개념이다. 똑 같은 물이나 비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어지는 연속성의 차이가 뚜렷해진다.
선시와 기독교시의 공통점은 모두 상징과 비유를 사용한다. 기독교시는 기독교정신인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전제되는 근본 원동력이 하나님에 의해서이고 그의 아들 예수를 거쳐서 의롭다고 여김을 인정받는 기쁨이 순종의 관계에서 성립된다.
 
달 먼저 떠 오르면
해는 달, 따라나와
달 밑에 서서 있는
그 차례 하얀 차례
해는 달
함께 웃으면
하얀 웃음
보조개
 
해 먼저 볼 붉히면
달은 해, 따라나와
해 밑에 활 활 화알
속 차례 분홍 차례
달은 해
함께 웃으면
분홍 웃음
보조개
- 이영지 행복의 순위
 
이영지 시조의 이미지나 상징적 기표들의 공통된 구조가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홍문표교수의 해설은 행복의 순위시에서 달과 해의 관계과 대등한 순환이 아니라 서열적 질서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영지의 고향이 경북인데다 그곳의 남녀차별에서오는 삶의 영향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생활습관이 오히려 한 가정의 평화는 물론 하나님의 뜻 곧 아담을 하나님의 영향을 만들어 한 가정의 주인이 되게 하고 그로하여 아내가 남편을 잘 받들어 섬기는 일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창세기에서 제시하는 일이다.
달과 해가 맞서는 관계가 아니라, 해 밑에 달이 서는 따라감의 관계로 이차적 기표가 제시하는 이차적 기의는 주종의 관계, 순종의 관계다. 해와 달을 시적 화자와 그 대상, 또는 시인과 시인의 신앙적 대상의 관계라고 한다면 신에 대한 순종, 신앙적 삶의 겸허라는 평은 시의 제목인 행복의 순위가 지닌 절대자와 나, 당신과 나의 관계가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를 말한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연가같지만 사실은 신에 대한 절절한 존경과 경외심에서이다.
이병용 또한 李英芝의 시조에는 또는 어둠의 상관적 관계가 두드러지므로, 연작시조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차이를 다소 보이고 있는 이들 심상의 변화에 주목하여 그 내용의 본질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 전자의 시편들은 친밀함에 의한 수평의 관계를 보여주므로 연애시의 범주를 따르지만, 후자에 점차 다가갈수록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로 인한 종교시의 전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에서 중요한 은유에 대한 묘사를 놓친 해석이기도 하지만 현상적 그림자를 관찰하면서 절대자의 존재를 확신하며 내면의 부정적 측면들을 치유해가는 결과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하는 아름다운 관상의 시작(詩作)이라고 이병용은 평한다.
시는 깨달음의 문학이 아니다. 선시가 밝히는 깨달음의 희열을 읊은 개오시(開悟詩)와 산 생활의 서정을 노래한 산거시(山居詩)가 있는데 현실과 떨어진 산사에서의 생활시이다. 기독교시는 이와는 달리 세속 속으로 내려와 삶 문제에 대한 그때 그때에 절대자로 하여 은혜 받았다는 기쁨이 전제된다. 때문에 감사와 은혜와 찬송으로서 하지만 가능하면 주제가 숨고 시의 외연이 시적 하이퍼성, 곧 주제를 숨긴 물의 의태어를 중심하여 전개된다. 직설적인 표현과 은유적인 시의 차이이다. 시적 가치는 시에서 의태어롤 통할 때에 그 긴장성으로 더욱 은유되어져 하이퍼시가 되며 그 시의 가치가 높게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불교의 선시는 선적인 분위기의 선취시(禪趣詩)와 산사의 풍경을 읊은 선적시(禪迹詩)가 있다. 기독교 시는 일차적으로 성경에서 다수의 성경원문이 운문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 시인들은 구원의 문제와 감사 등을 읊는다.
시를 쓰기 위해 집중하는 시인 시선집중의 눈을 아르고스는 대상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이라 하였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눈을 집중시키면서 시각의지에 결합시키면서 시가 탄생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눈은 아름다움을 그저 바라보는 일과 그 눈을 통하여 시인의 의지가 되어버린 일을 빅토르 위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이름의 장대한 공작이 꼬리를 펼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생각되는 장소를 가운데 하나였다.
 
이처럼 보는 주체에서 보이는 객체로의관계를 마르띤느(Lamartine)그라지엘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방 백 위 불길의 눈 깜박임처럼 빛이 나의 덧문의 틈새기를 통해서 쉴 사이 없이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주어진 대상 곧 비치는 빛을 바라보는 의태어의 시는 빛과 긴밀하다. 시인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른 물체에 대한 두 시각이 있게 된다. 절망과 기쁨이다. 설사 절망의 상황이 일어날지라도 기독교 시인은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다. 이 애절하고도 슬픈 현실이라도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한나님의 사람은 바라보면서 시를 짓는다. 시는 쓰지 않으면, 의태어가 탄생하지 않으면, 시가 되지 않는다. 마음을 바로하고 그 깊이를 집중시키면서 생각을 끌어낸다. 물일 경우 물의 의태어가 되고 그 뜻이 보다 일상을 벗어난 시적 하이퍼성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시로 탈바꿈한다.
시가 가지는 절대력은 세익스피어 한 사람으로 하여 다른 무엇보다 영국을 빛냈다.
 
3). 눈과 물의 합침 눈물
이영지 시조에서는 눈물이 자주 등장한다.
 
하늘로 올라올라 눈물을 다 뿌리고 내려와 쓰러질듯 마음에 몰래몰래 안으로 들어오자 곧 녹아버린
그리움
- 이영지 첫눈의 사랑사람에서
 
가만히 비가 되는
넌 나의 하얀 운명
정말로 눈물눈썹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진주 꽃으로
하얀 기둥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장 미 비 밤을 샌 다
 
장 미 비
꽃잎바다
아 예 예 그 리 움 을 눈물로 달아버린
 
입술의 꽃물로
서서
베실베실 웃는다
 
웃음의
소리
장미
두 손을
모 아 들 여 그 리 움 뜨 는 법을
· 이영지 장미비에서
가만히 비가 되는
넌 나의 하얀 운명
정말로 눈물눈썹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진주 꽃으로
하얀 기둥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위 시조 첫눈의 사랑사람에서 눈물 묘사의태어는 하늘로 올라올라 눈물을 다 뿌리고이다. 하늘에 올라 올라라는 의태어를 통해 하늘 중간쯤이 아니라 하늘 끝이라는 의미를 하늘하늘의태어에 숨기고 있다. 때문에 이 2회리듬은 결정적인 2회가 아니라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리듬의 축약이다. 따라서 이 시조적 화자는 절대자일 수 있다. 그것은 새벽기도 · 1573이라는 증명이 붙어 작가의 이력에 의한 기독교적 절대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적 화자는 다시 땅으로 내려옴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목적이 수반되면서 뜻이 은유되어 있다. 더구나 쓰러질듯 마음에 몰래몰래 안으로 들어오자 곧 녹아버린이다. 따라서 그 의미의 사랑의 행동에 대한 눈물의 행위이다.
그것은 문학특유어의인 그리움이라는 형용사 안에 갇힌다. 그리움은 사랑이 전제될 때 솟아나는 마음의 감동이다. 이영지의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비는 일반 비에서 마음으로 닥아 오는 운명적인 물이 된다. 곧 말씀이 된다.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기쁨이 되는 결과로 하여 시적 화자는 마음의 진주 꽃으로 눈물눈썹을 만들고 있다. 때문에 하늘이 그립다. 아 마음의 세계는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얀 기둥을 달았다.
이영지의 장미비는 눈과 눈물과 그리움의 관계이다. 모두 물과 깊은 관계에 있다. 이 물=눈물의 등가등식은 동시에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와 등가형식이다. 따라서 이 3자의 동일시는 시가 갖는 은유에 다중의미로서 눈물의 의태어를 외연으로 하면서 사랑이라는 시의 내포를 가지는 대표적인 형식적 비평방법에서 얻어 지는 결과이다. 가장 눈에 띄는 시가 가지는 장점의 색체는 바슐라르가 주장한 학설 역동적 상상력의 삼단계에 색체에 의해 의태어의 기본의미를 전해준다.
더구나 밤을 새는 이유가 대상을 위하여서이다. 이 사랑의 바다는 막연한 의미의 시의 애매성을 풀기 위하여 꽃잎바다로 하고 있다. 때문에 이 사랑이 단순한 사람들의 그리움 대상이 아니라 입술이 되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자가 된다. 대상을 위하는 꽃잎바다의 사랑크기는 입술의 꽃물로 서서있다.
 
입술의 꽃물로
서서
베실베실 웃는다
 
웃음의
소리
장미
두 손을
모 아 들 여 그 리 움 뜨 는 법을
· 이영지 장미비에서
이때의 입술은 말하는 입술이다. 그러므로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된다. 따라서 이 시적 화자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절대자의 입술이 밝혀진다. 그 웃음은 눈물을 가진 자이되 겉으로는 말씀을 전하면서 시적 특유의 여성화자, 곧 시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하는 표현기법을 쓰고 있다.
실제 사람 몸에 있는 샘의 종류인 땀샘, 피지샘과 눈에 있는 눈물샘에 대한 접근으로 알아 볼 수 있다. 눈물샘은 눈의 바깥 위쪽에 위치하며 눈꺼풀 안에 살짝 숨겨져 있다. 수백 수천 개가 뭉쳐있는 눈물샘은 눈물샘신경이 신경 신호를 보내면 세포들이 그 신호를 받고 눈물을 만들기 시작한다. 뇌신경 중 하나인 눈물 샘신경이 이어지며 눈물을 만들어야할 때 신호를 낸다.
사실 눈물은 눈을 촉촉하게 적시기 위해서 항상 나는 일이다. 눈물주머니의 껍질 역시 세포로 되어 있다. 주머니들이 눈물을 만들어 모이고 모이며 근처에 있는 관으로 들어가 관을 타고 흘러나와 눈을 뒤덮게 된다.
 
 
*그림 중 왼쪽 하단에 "compound tubuloacinar" 눈물샘의 주머니와 관이다. 눈을 덮고 있는 눈물은 물 성분 뿐만 아니라 약간의 기름도 섞여있다. 이 기름은 눈물샘이 아니라 "눈꺼풀판샘"이라고 하는, 눈꺼풀을 뒤집으면 있는 샘들에서 나온다. 눈물샘에서 나온 물과 눈꺼풀판샘에서 나온 기름이 섞여서 눈물을 만든다. 만들어지는 과정은 눈물샘과 똑같다.
눈물에는 물이 아닌 기름이 수반되어 있다.
격한 감정 때문에 눈물샘이 자극을 받아 눈물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면, 눈물이 넘친다. 마치 홍수가 났을 때 배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는 것처럼 눈물이 눈꺼풀 너머 밖으로 흘러, 얼굴을 타고 내려간다. , 막 울다 보면 콧물이 같이 나오는 것은 눈물이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코눈 물관으로 가는 물도 많아져서 콧물은 눈물과 섞여진다. 만들어진 눈물은 일단 눈 위를 얇게 뒤덮고 있기에 눈은 항상 젖어있다. 사람은 특별한 일, 특히 시인에 눈에 비치는 일에 감동함으로써 감동을 받은 일을 시에 묘사하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이미지는 직접적인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고 마음의 감사와 슬픔이 시에서 나타난다.
 
 
 
 
 
 
해설
 
이영지 기독교시학
- 이영지 시인의 시집 사랑비비행복에 부쳐 -
 
 
이 영 지
(문학박사출학박사 시인 시조시인)
1. 이영지 기독교 시
기독교시인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의 십자가사건으로 하여 구원으로 연결되는 마음의 감사를 시로서 전하려 한다. 이때에 따라 나오는 의태어는 겉으로 표현화 된 종교적 색체가 아니라 은유의 묘사를 통한 객관적 사물어를 통하여 전하여 진다. 물의 의태어가 지닌 하이퍼성은 이동 혹은 초월과 변화의미이다.
 
가만히 비가 되는
넌 나의 하얀 운명
정말로 눈물눈썹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진주 꽃으로
하얀 기둥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비는 히브리어로 계심이라 발음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하나님이 계심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기독교시인 이영지에게 있어서는 주어진 대상 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조명한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바램처럼 보인다. 그렇더라도 해석하고 연구하는 자에 따라 달리 비치는 이 중심주제는 하늘의 빛이다. 마음의 빛을 가진 자에게 다가오는 감사함으로 인한 생활의 실제는 빛을 마음에 품은 마음이다. 이 마음은 시인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른 물체에 대한 두 시각이 있게 된다. 그저 바라보면서 의태어를 느낄지라도 시를 쓰지 않으면 의태어가 탄생하지 않으며 보는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생각을 끌어내는 일은 시인이 되는 일로 의태어가 탄생한다.
빗물은 시인의 마음에 늘 스며든다. 동시에 마음도 언제나 상대방에게 늘 스며든다. 그 곳에선 서로 마음이 교감되는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아름다운 마음을 나누는 일은 행복이 샘솟게 한다. 좋은 물을 먹으면 아름다운 글이 태어난다. 물 곧 말씀을 가진 생명의 원동력은 새로운 삶이 생겨지고 그에 주어진 대상을 아름답게 조명한다. 시를 통해서 드러나는 물은 물위로 걷거나 물속에 가라앉거나 물을 매개로 한 하늘로 올라가는 등의 상상력이 총 동원되면서 기쁘고 즐거웁고 감사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이 행복의 구심원은 물이다. 곧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물은 절대적으로 마음과 관련된다. 이퇴계는 인간본성을 찾는 성인(成人)진리 찾기를 상대방을 향한 경()철학에 둔다. 이 철학은 비록 그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없었다 할지리도 이미 경 사상 자체가 사람을 하나님 섬기듯한 삶의 근본이 기독교의 근본 사랑과 접맥된다. 신앙철학과 문학과의 접맥은 물의 경우 그리움의 정서이다. 그리움이란 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 내는 맑은 심성으로 남을 높이는 데서 발생한다. 사랑은 그리움에서이며 이 그리움은 미움이 아니다. 문학에서의 자유는 그리움이나 사랑이나 이별에 대한 맑은 심성이다. 이 밑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절절한 존경과 그를 향한 경사상이 있다. 물이 마음과 긴밀성을 가진다는 것은 2차적 이해이다.
2차적 뜻은 마방진과의 관련된다. 황하의 지류 락수강에서 올라온 거북이 등에 그려진 그림과도 관련된다. 숙종 때의 최석정(1646-1715)은 구수략(九數略)에서 물은 도()에서 생긴다 하였다.
 
옥수수 참외참외 여름이 익는 밤이 참 참외 익혀가며 한낮을 걸어오자 내 산은 지금마악 한차앙 익어들고 마음은 한창 익어가 불러들인 강물에 강물에 한강물이 하안창 불어나며 가슴에 들이밀며 발목에 감아들며 커다란 부피로 들며 들이치는 한여름 하늘물 웃음속이 훠언히 들어나는 옥수수 촘촘히로 참외씨 촘촘히로 쾅쾅쾅 여름소나기 들이밀어 붙이는
- 이영지 옥수수와 참외의 여름
 
이영지의 시의 하이퍼성은 얼핏 보기에는 시의 외연이 여름 옥수수로 단순한 먹을거리 옥수수 같지만 이러한 외연과는 달리 옥수수 곧 한문화권으로 이야기 할 때 옥수(玉水) 곧 맑은 물이다. 옥수수(玉水水)는 아주 맑은 물이다. 이 시의 하이퍼성은 엄청난 시의 내포 옥수수이다. 한창 여름에 그 맑은 물이 더욱 맑아지는, 다시 말하면 물의 의태어에 대한 절대의 물의 가치이다. 참외는 참으로 익어가는의 의태어가 된다. 따라서 참된 진리가 익어가는 계절이 된다. 단순한 물의 의태어에서 벗어나 물이 그 양을 많이 하면서 새벽기도가 주는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익어가는 이영지 삶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시에서의 외연과 내포의 긴장성이 있을수록 시의 하이퍼성이 된다.
물은 생명을 주는 원천수이기에 시에서, ‘푸르게로 표시된다. 동시에 생명이 살아있음 또한 푸르르게로 표시된다. 시어의 의태어는 성경언어 히브리어로는 강이 페레그이다. 한국말의 푸르게라는 말이다. 히브리어와 한국어가 같은, 이 푸르게 되는 현상은 물이 있는 강이어서 푸르게 된다. ‘프르게라는 중국 한산자의 시에서 보이는 의태어에도 있지만 물이 주위의 풀이나 심은 나무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생명의 언어이다.
이영지의 시조에서는 푸르게가 더 짙은 짙푸르름으로 물이 절대화의 의태어가 되어 있다.
 
물로만
둘러리 선
궁전에
집을 짓고
 
처음은
짙푸르게
바다의
푸른 벽을
 
백합에
엮기만 했지
물기둥의
박이
- 이영지 백합조개 에서
 
가만히
등을 안아
하늘을 잠재우는
시냇가
물안개가 하얗게 올라간다
물에서 피는 꽃이라
수은등을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하늘을 달래기까지 하는 물의 의태어는 푸르름에서 하얀 꽃으로 의태화까지 온 하이퍼성이다. 물 위로 오르면서 움직이지 않는 수은등을 하나 달아 놓은 기독교시의 하이퍼성이다. 바람을 잠재우는 푸르름이 물의 의미를 넘어서서 마음의 의태어가 된다. 시인의 깨끗한 마음과 의미비중의 하이퍼성은 종교적인 시인의 마음이다.
 
 
2. 이영지의 존재성 -황진이 시조와 이영지 시조
 
이영지의 족보와 관련되는 이 퇴계 시기에 황진이(1520?-1560?)도 있었다. 황진이 시조는 6수가 있다. 그 중에서 겨우 2수를 예시하려하는데 절제된 형식 속에 의미의 다양성, 즉 시가 지닐 수 있는 하이퍼성을 폭넓게 해석하게 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시조가 되고 있다. 이처럼 운문, 특히 한국의 시조의 우수성은 우선 청산리에서이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진본 청구영언286, 황진이
 
다음은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의 님 안(in) 이미지
-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그림: 이영지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시조는 청산 속에 있는 폭포수를 의인법으로 하여 실제적인 벽계수와의 사랑이야기를 달로 전해준다. 생명을 잉태하는 물의 향기의미는 달 속에 있다. 그녀의 달 속에 들어가 상대방이 쉬어가기를 원하는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달 향기이미지로 하였다. 시의 외연은 황진이 시조를 통하여 그 의미가 물의 정서에 대한 그리움을 물의 의태어로 하고 있다.
이 물오름은 물의 생명력, 생명의 물오름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한국시인들 특히 황진이 시조에서의 아름다운 시적 기법의 하이퍼성은 그야말로 시대를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기호학적 이론에서도 손색이 없는 의미의 기호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의 의태어를 통해서 드러나는 생명력은 살아있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물의 의태어는 물의 외연이 아닌 시의 내포성으로 하여, 시의 내포가 가지는 의미의 숨음은 물이 표면화되지 않더라도 사랑의 힘으로 문학작품에서 승화된다.
한국에서의 달은 여인으로 상징되며 수많은 시인들에 의해 그 정서를 의태어로 표현하였다. 황진이 시조에서의 달은 달과 날과의 상응성에서 오는 정서를 님으로 하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 진본 청구영언287,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밤 한허리 베어내어
↕ ↕ ↕ ↕ 어른님 오시어든날밤 굽이굽이펴리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문학작품에서 은 절대적 존재로 항상 그 자리를 유지한다. 이 님은 시를 지탱하는 힘이다. 힘은 그 위력을 발휘하는 특징을 가지는데 히브리어에서는 이 힘이 엘로힘의 힘이디. 곧 하나님의 힘이다. 동시에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어 사람의 자손들을 낳아 퍼지게 하는 사랑의 힘으로 작용된다.
이영지가 믿는 기독교에서의 사랑이야기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관계에서 적용된다. 에덴동산 한 가운데 있는 과일을 따 먹고 그로하여 자신들의 모습이 벗은 모양으로 알몸부부의 사랑이 시작된다. 이러한 힘은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며 그 힘으로 전 생애를 통해 아내사랑, 혹은 남편사랑을 실천한다.
3. 이영지 시조의 물 의태어 하이퍼성
 
한밤중 날 부르듯 한 길이 수를 놓아
당신이 훈풍 되듯 명월로 걸어놓아
여인의 햇빛으로 서
바람, 청명
수놓아
- 이영지
 
낭자의 꽃신으로
모란의 웃은죄로
남자의 혼불이 눈뜨고 누워있네
진이의 초례마당에 꽃신으로 타다가
 
꽃혼에 꽃불로다
여인의 치맛자락
새색시 다홍치마 다홍상여 너무붉어
진이의 꽃신 데리고 꽃혼타고 나는 날
 
꽃송이
마디마다
꽃덤불
푸느라고
둥둥둥
못보다니
진이의 다홍상여
꽃무덤 치마폭 한수 꽃상여가 나는 날
- 이영지 꽃상여
 
황진이 시조와 이영지 시조와의 관계를 이병용은 진이의 초례마당에 꽃신으로 타다가”, “진이의 꽃신 데리고 꽃혼타고 나는 날”, “진이의 다홍상여 / 꽃무덤 치마폭 한 수 꽃상여가 나는 날과 같은 운명적 진술을 통하여 시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두 몸이 한 혼으로 만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의 시적 묘사가 17세기 영국의 종교적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수사적 장점을 많이 따르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거니와 시대를 달리하는 두 여인의 시적 상상력의 근간이 되는 여성적 삶의 절제된 긴장이 주는 전통미가 또한 흡사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문학, 특히 시조에서 사랑의 의미는 늘 숨어 있는 속뜻 곧 내포이다. 이 때 사랑은 물의 의미로 대변되는데 곧 살아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 물의 하이퍼성은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사랑의 힘조차 물이 없으면 그 의미가 무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신이 부여한 힘이며 문학, 특히 시조의 절제성 속에서 하이퍼성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은 사랑으로 목숨을 걸고 사랑으로 결혼을 하고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 사랑으로 전 생의 삶을 보람으로 느낀다. 이 원동력은 늘 시 속에서 살아 숨어 있으면서 시의 내포가 된다. 그리고 늘 그 모습을 감추면서 물의 의태어로 살짝 옷을 입는다.
 
4. 이황 이퇴계와 이영지의 시조 가계잇기
 
1) 물에 대한 의태어 시 66봉과 물
청량산에 있는 66봉과 물 관계는 산에서 물 찾기의 과제이다. 이황은 그의 고향 마을의 산인 청량산을 늘 오르내리었다. 느슨함이 전혀 없는 S자 형태의 가파른 청량산을 시조로 지었다.
다음은 이황 퇴계의 시조이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 이황 퇴계 청량산가
 
청량산 12봉을 아는이 나와 갈메기
갈매기 떠들건가 못 믿을 건 복숭아꽃
복사꽃 너 떠들지마라 어부알가 두렵다.
- 이황 퇴계 청량산가이영지 역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봉화의 청량산은 암벽이 불쑥불쑥 솟은 바위산이다. 웅장하지도 높지도 않지만 연이어 솟은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잘 어울려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청량산의 청량사를 중심으로 청량산 육육봉(12개의 큰 봉우리, 작은 봉을 합하면 36개의 봉우리)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66봉이란 이름은 주세붕이 붙인 이름이다.
 
봉우리들은 꽃잎이 돼 청량산을 꽃술 삼아 한데 감싸 안은 꽃 형상으로 된 절경의 산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산에 지극한 관심과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가까이 한 흔적이다. 이황은 이 청량산가에서 육육봉을 꽃, 복숭아 꽃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자연인 산을 꽃으로 의태화하고 이 모양이 물에 비추이면서 떨어지며 물 위에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는 묘사를 통한 이 의태어는 물과 산과의 조화를 아주 높은 하늘에서 보아야 보이는 절경의 하이퍼성을 보였다. 물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도화와 흰 갈매기가 있음을 보아 물이 있음을 은유하면서 삶의 깨끗함이 곧 맑은 물의 깨끗함과 오버렙되는 하이퍼성을 가진다.
66봉봉우리가 복숭아 모양이 되어 있는 차원높은 하이퍼성 시작은 겉으로, 곧 시의 외연은 물에 떨어진 복숭아 꽃이 사실은 물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상상력의 시로서 그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력의 하이퍼성시다. 곧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시적 특수성으로서의 가상현실이다. 직설적 해석으로 할 때 아름다움의 깊이를 심화한 이 시는 정말 청량산 모습이 아름답기에 혹여 물에 떨어지면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이 아름다운 산을 속세의 뭇 사람들이 알고 어지러히 드나들까 두려워 백구의 비상과 도화의 낙화의 아름다움을 떠들 어부를 염려하는 고도의 은유적 의태어의 극치이다.
현대인 지금 한국에서는 시조가 문학장르로 존재한다. 특히 이영지의 경우 이황의 가계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논문에서 문제제기한 바 그 해답의 일환으로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인 지금까지 이어짐을 밝히는 작업이다.
다음은 이 가계잇기가 증명되는 예이다.
 
부석사 의상대사 지금도 살아있는
봉황산 대나무 숲 탑두리 두르면서
선비화 지팡이 짚고 숲실 잇는 한밤실
 
우수골 지나면서 당고개 이르르면
박 열린 초가집이 소백산 보다 낮아
비기실 한걸음 물러 매암정이 보인다
 
용두골 용트림을 들으며 자라나서
과수원 꽃잎하나 입에 문 딸이 되어
방골도 밤고을로 꽃 줍듯이 사는()
 
하암할베 우리 할베 퇴계어른 후손이라
소백산 사그리에 그 폭포 넘어오면
낙하암 바위하나가 부석사로 남았네
- 이영지 부석사(浮石寺)
 
당신이 펴 놓으신 우물물 한 모금을
마시고 왔습니다 더러는 가랑잎이
덮혀서 있었지만은 햇빛이 든 물 먹고
 
빛만을 잉태해서 돌아와 낳자마자
해동인 땅에 앉아 솔잎이 되어서도
맨살로 빛을 가슴에 안아들기 시작해
나날이 갈수록에 잎들이 둘러서며
하늘안 보일정도 가슴에 빛소리가
새어나 울려퍼져서 나갑니다 당신이
숲으로 덮여있는 해동이 찾아들어
되돌아 다시오는 강줄기 바라보며
의자에 하루종일을 앉아서들 있으면
빛바람 사이사이 울리어 부자인데
낮은데 물러앚아 해동이 하늘바람
이름을 "당신께서"라 지어놓고 기뻐서
맨살의 덩어리로 빛되어 개울가에
흐르며 물덩이로 해동이 해 덩어리
가슴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떠 먹는
- 이영지 도산서원 1
 
한걸음 물러서는 님으로 하여서도
그곳의 물자리는 그리움 차차익고
흐르는 따사로움이 구름구름 몰려와
 
몇며칠 몸져누워 생각에 생각 더 해
이제는 당신에게 달려갈 일 뿐이라
서른채 지붕위에는 하늘바람 몰려와
 
한석봉 새겼다는 당신의 구름기둥
그 원은 무엇인가 그 산은 어디에서
얼만큼 높으냐하며 도산 쓰는 손 떨림
- 이영지 도산서원 2
본을 같이 하고 있는 이영지의 가계는 이퇴계의 형 온계의 23대 손이다. 이황 퇴계는 형을 만나기 위해 죽령경계선을 중심으로 만났다. 그 때 만나 지은 시가 전해진다. 이황 퇴계는 죽령 옛길에 한시로 촉령대소혼교를 세워놓았다.
 
영영한 물소리 정 넘쳐 흘러나네
우뚝 선 봉우리는 이별한 쌓은듯이
소혼교 안영협 골짜기 우리둘이 나눈 정
이황 소혼교이영지 역
 
형님을 염려하여 부디 근무 잘 하시라
촉대를 만들어서 우리형님 충청감사
행차에 대 만들어서 보내노라 형에게
- 이황 촉령대(矗玲臺)이영지 역
 
온계와 퇴계 형제는 소혼교 다리 자리 곧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갈라서며 온계는 충청도로, 퇴계는 풍기군수로 공무를 보기 위해 서로 헤어지고, 또 만났음이 현재까지 한 시로 소혼교와 촉령대에서 전해진다.
그분들의 후예인 이영창은 이 길을 넘으며 다시 이 비 앞에 서 있다면서 수필을 남긴다.
 
이퇴계는 형 온계가 있었는데 그 때 당시 충청감사이었다. 이 퇴계도 풍기 군수이었을 때여서 두 형제는 죽령경계선을 중심으로 서로 만나 형제애를 돈독히 하였다. 퇴계는 그 기념으로 시를 지어 놓았고 현재까지 전해진다.
퇴계어른은 죽령 옛길에 촉령대와 소혼교를 세워놓았다. 온계와 퇴계 형제는 소혼교 다리 자리 곧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갈라서며 온계는 충청도로, 퇴계는 풍기군수로 공무를 보기 위해 서로 헤어지고, 또 만났다.
 
소혼교」 「촉령대
 
이러한 형제간의 우애는 형을 염려하여 부디 근무를 잘 하라고 촉대를 만들어서 우리형님 충청감사행지 때에 만들어서 보내노라는 촉령대(矗玲臺)가 현재까지 전해진다.
이 두 시 모두 이황 이퇴계가 그의 형 온계와 서로 만나서 헤어지는 장소에 지금도 세워져 있다. 그분들의 후예인 나도 오늘도 이 길을 넘으며 다시 이 비 앞에 서 있다.
형제간에 만나면서 그 기념으로 시를 지어 놓았던 일을 보면서 나의 옛 어른이라 더욱 감회가 깊다. 나도 다소 삶이 권태로울 때 찾아와서 옛 어른들을 만나는 마음으로 잠시 차에서 내려 기념비 앞에 잘 앉는다.
이 길은 죽령 옛 길에 있다. 7길 죽령 옛길로 정해져 있다. 내 고향 부석에서 풍기를 지나 서울로 나들이하는 3대 관문중의 하나인 죽령은 문경세제보다 47m 녹다. 추풍령보다는 454m더 높다. 죽령이라는 이름은 아달라왕 5(158)에 죽죽이란 사람이 길을 열고 지쳐서 순사(殉死) 했다고 한다. 고개 마루에 죽죽을 제사 드리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죽령 옛길에 세워진 촉령대 소혼교는 고향 예안을 오가는 충청도관찰사 온계를 풍기군수 되계가 만나 형제간에 회포를 풀던 주변은 온달 장군의 전사지가 있다. 그리고 농암 이현보와 신재 주세봉의 사연도 있는 곳이다. 곧 풍기 소수서원과 관련된다. 이 죽령에는 죽지랑가에 얽힌 죽지의 애타는 사랑도 있다. 지금도 이러한 이야기 전설 등을 찾아 묻혀버렸던 길을 개척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죽령에는 주막도 있다. 죽령 주막은 죽령이 높고 험하여서 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자고 가거나 타고 가던 말을 갈아타던 마방이 있다. 나도 이 길에서 맑은 하늘을 보며 구름한 점을 같이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술맛 좋기로 소문난 곳에서 술 한 잔을 먹고 고개 아래 첫 마을을 들면 샛고을이 있다. 깊은 골짜기에 없을 듯 걸려 있는 그림 같은 산촌을 지나 용부원리 옛 도로를 따라 마을 쪽으로 내려가서 만나는 보국사지는 신라가 고구려를 침공하고 영토를 확장한 다음 마을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지어졌다.
나의 고향에는 제 2길 죽계구곡길도 있다. 순흥 죽계구곡은 영조 때 순흥부사 신필하가 죽계천에 붙인 이름이다. 초암사에서 제1곡이 시작되어 개울물을 따라 삼괴정까지 제9곡에 이른다. 이퇴계 어른은 소수서원 앞을 제1곡으로 국망봉 등산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를 제 9곡으로 지정하시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백운동, 취한대, 금단반석, 백우담, 이화동, 목욕담, 청련동애, 용추비폭, 금당반석, 중봉합류라고 하셨다.
초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 초막을 말한다. 이 길을 제3길 달발 길이라 한다. 퇴계 어른은 동쪽 옥녀봉과 서편 완적봉을 청룡백호로 싸인 초암사에서부터 오솔길이 나타나는데 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퇴계 이황이 걸었다는 숲은 숲길이 있다. 이 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개울과 길이 하나가 되는 깊은 협곡이 계속되는데 숲속에 감추어 흐르는 개울은 여름에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추위를 느끼는 곳이 바로 이 달밭계곡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길은 금방 목욕탕을 나오는 아가씨의 깨끗한 몸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깊이 쌓인 낙엽, 울창한 숲, 외나무다리, 돌다리를 따라 나도 이 길에서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시간을 좋은 시간을 보낸다. 신라 문무왕 29(680) 의상조사가 영전사에 거주하면서 문도라는 제자와 함께 창건하였다. 굽이굽이 서려 있는 길에서 나는 지금도 이 길을 오가며 사는 행복을 누려서 감사하다.
- 이영창 수필 온계와 퇴계의 형제우애.
 
이영창은 지금도 이영창의 조상인 온계 후손이 살았던 경북 영풍군 부석면 소천리 202에 지금 살고 있다. 이처럼 증명되어지는 이황 퇴계의 가계인 이영지는 이영창의 누나로 시와 시조로 모두 등단의 이력을 거치면서 주로 시조작품을 택한다. 이 또한 이황 퇴계가 즐겨 작품을 하였던 시조의 문학장르와 동일하다. 그리고 현재 기독교 시인이다.
시조는 이미 신라시대부터 3대목과 연결지어지는 한국 고유의 문학장르이다. 따라서 그 전통성이 이영지에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며 특히 조선시대의 살았던 이황의 가계 잇기에서 발견되어지는 귀중한 자료가 이영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조의 전통성은 물의 의태어의 하이퍼성으로 발견되어지는 삶의 끈질긴 맥이 살아 숨쉬는 현장이다.
주세붕이 이름한 청량산 66봉을 시조로 지은 청량산의 봉우리는 12봉우리보다 더 많다. 그러나 시에서 이 66봉은 실제 12봉우리를 시적 리듬화한 하이퍼성이다. 실제 청량산은 12봉우리보다 더 많지만 12봉우리로 한정하고 또 이를 리듬화하여 66봉우리라 하여 신화소로 한 것이다. 함축된 66봉의 실제 12봉우리의 이 12는 신화소로서 하이퍼성을 지닌다. 봉우리가 더 있는데도 굳이 12봉우리라 한 것은 12에 대한 하이퍼시의 현실성이다. 이영지는 물의 신학과 문학논문에서 신화소의 12 숫자는 예수님의 제자를 비롯하여 일 년 열두 달 · 물건 12개 묶음 · 김지향시 · 홍문표시 · 그리고 이상시에서에서의 시어의 의태성으로 연구하였다. 12 수는 신성수로서 전 세계적인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이퍼성이다. 성경에서도 12제자와 이 열두 제자 중 가롯유다가 배반하자 그를 제명하고 한 사람을 더 세워 12제자로 삼는다. 12수를 채운 것이다. 시조의 특징은 3612절의 특징을 가진다. 이 특징을 이영지는 시조로 창작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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