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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4회
2010-05-06 21:24:56
38hwakook

조회:1470
추천:116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4회|시와 소설 / 이화국  

   

 

20. 세 사람의 밤도둑

  

 

   김은태는 다시 서울로 떠났다.

    가을 관광 시즌을 위하여 몇 개의 단체를 유치해야만 하는게 그의 담당 몫이었다. 판촉 일은 그가,

안의 일은 선희가 하는 것으로 무언 중에 약속이 되어있었다.

 

    선희는 서울에 가면 병원에 다시 가보라고 일렀다. 김은태는 형편없이 체중이 줄어들고 있는 중이

었다. 근심이 피를 마르게 하는 것인 줄은 알지만 그 변모가 너무나 두드러질 정도였기 때문에 가는

김에 약도 처방을 받아오라고 덧붙였다.

 

    정이란 먼지처럼 소리 없이 쌓이는 것… 부부는 뜨거운 사랑보다 그렇게 정으로 사는 것이라서

선희도 남편을 염려하는 마음이 컸다.

하면서도 엉뚱하게 달려나가는 마음의 고삐를 잡기는 어려웠다.

 마음의 고삐

    사람의 내부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려 하는 두 마리의 말을 키울 수 있는지 의문인

채 선희는 꿈꾸고 있었다. 김은태가 없는 사이 민호를 데리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호수로 나비처

럼 날아다니고 싶다고 말이다.

 

    청초호를 지나서 영랑호로 갈까. 병풍 바위로 둘러쳐진 오련 폭포를 지나 양폭 산장에 이르러 피곤

한 다리를 쉬면서 산새들 노래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달래려고

선희는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듣는 것은 새소리 바람소리, 보는 것은 그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 뿐이면 되지. 박자 맞춰 사랑

노래를 흥얼거려 보면 어떨까. 낙산 비치 커피숖에서 같이 바다를 내려다보면 좋겠지. 서로 마주봄이

사랑이 아니고 둘이서 한 곳을 바라봄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둘이 한 곳, 그래 희망의 푯대를 세워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니라면 그냥 바다나 내려다 보러 가자구.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게 싫으면 네가 좋아하는 고고를 추러 가줄까.

 

    어떻게 해야 민호가 행복해 할지를 안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다고 선희는 꿈꾸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선택한 일은 방문을 잠그고 삼일 간을 엎드려 있기로 작정한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하늘만

쳐다보기로 했다.

 

    진정 신이 살아 계시다면 선희의 유치하며 창백하고, 연약하기 한량 없어 회개하는 심령에, 사랑

앓는 영혼에 약손을 얹어 주실 것이었다. 남편의 병고와 사업 문제도 풀어주시리라.

선희는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라기 보다는 자기 학대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비로 날아오르기 위하여 고치집 속에 누워있는

번데기처럼 선희는 자기 방안에 몸을 가두고 엎드려 있었다.

3일간의 금식은 힘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금식기도 

   선희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 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니’

라는 성서 구절에 매달렸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서 선희는 애타게 많이 많이

부르짖었다.

 

    기도 중에도 금식 기도는 하느님 앞에 죽이시던지 살리시던지 뜻대로 하시라는 전폭적인 의뢰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제일 먼저 귀를 기울이신다는 설교를 기억했던 것이다.

그 설교는 ‘신앙의 신비여’ 라는 막연함에서 행동할 수 있는 지침이 되고 있었다.

 

    하느님 앞에서 죽기를 각오했지만 선희는 죽지 않았다. 결국 3일을 넘기고 4일 째 되는 날 방문을

열었다. 이제 밥을 먹을 것이고 움푹 들어간 두 눈도 원상 회복될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일상이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몸 담기 좋은 그릇이었다.

 

    세면장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헹굴 때 민호가 언제 왔는지 타월을 들고 곁에 서 있었다.

민호의 시선이 전율이었고 그 미소가 다시금 아픔이었다.

  “걱정 되었어요.” 

 

  “난 가끔 씩 그러는 걸. 몰랐나 보군.” 

    선희는 짐짓 심드렁한 척 대답하였다. 무심한 듯 표정 없이 눈 맞추지 않으려고 어깨 넘어 먼 산이

나 보면서 던지는 한 마디가 심장 깊은 곳을 돌아 나온 피묻은 말임을 민호는 모를 것이었다.

 

    성벽이 무너지는 듯한 떨림 속에 사랑한단 뜻을 감추고 있었음도 물론 알 턱이 없었으리라.

사랑이 최상의 가치라 여기면서도 소녀처럼 수줍고 부끄러워 설레는 마음일랑 누르고 어깨 넘어 먼

산이나 보면서 밥 먹었냐? 어디 가냐? 던지던 일상의 말을 민호는 모를 터였다.

다 그럴 것이었다. 변죽이나 울리다 마는…

     변죽

    선희는 자기의 삶도 그 속에 있는 사랑도 연애도 모두 그렇게 변죽이나 울리다 말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삶 한복판에 사랑인들 그렇게 비켜가지 않을 것이냐고 선희는 자기의 못남을 인정했다.

 

    선희는 무대 위에서 조명 한 번 받지 못하고 떠나갈 자기 인생처럼 사랑도 그렇다고 이미 시인했

지만 민호 입에서 나온 그 걱정했다는 한 마디가 뇌리를 파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즈막에 선희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랑이란 관심하는 사람에 대한 염려요, 잘 되길 바라는 그저 평이하고 소박한 마음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희는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외둘러 받은 셈이었다.

그렇게 해석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 때 주방장이 가까이 다가왔다.

 

  “사모님, 국에다 고기 좀 넣으려구 보니께 하나두 읎네유. 돼지고기만 먹은 줄 알았더니 쇠고기두

하나두 읎네유. 정군이 이군하구 술 마시더니만.” 

    선희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어린애들 같이 훔쳐 먹은 것이로구나.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방으로 들어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야 민호냐? 나다. 너의 사모님께서 어때? 일어나셨니?” 

  “응.” 

 

  “우리가 고기를 다 먹어버렸으니 어떻게 할까? 너희 사모님 몸보신 좀 해야잖어. 휴우 삼일을 단식

이라니. 나는 한 끼도 못 굶는데.” 

  “글쎄.” 

  “고긴 내가 살게. 술은 니가 준비해.” 

  “술이야 집에 한 박스도 더 있지만.” 

몸보신  

  “있지만 뭐야?” 

  “니네도 관광객 없냐? 바캉스 지나면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거니? 빗자루로 쓸었어.” 

  “그래서 술 좀 마시기 미안하다 이거야? 관광객 몰려오면 바빠서 못 마시고, 관광객 없으면 미안해

못 마시고. 그럼 언제 마시냐 새꺄.” 

 

    끝에 가서 새꺄 소리는 악을 쓰듯 질러댔다. 선희는 엿듣고 있던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고 방문

밖으로 나가 현관을 서성이다가 말했다.

  “어째 오늘 날이 음산한 게 비라도 한 줄금 퍼부을 것 같군. 이런 날은 기분도 우울하고 속이 출출

해져서 술 한 잔 생각 나지. 안 그런가?” 

 

    민호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모님도 그런 기분 느끼시나요?” 

  “헛 참, 나를 목석이 아니면 별종 인간으로 아나 본데? 어쩜 내가 한 수 위일 수 있지.” 

 

    선희는 쿡하고 웃었다. 놀랠 일이었다.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끼고 교회를 열심히 나가는 데다

3일씩 금식 기도까지 하면서 술 생각이 난다니 놀랠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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