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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너를 말한다.
2018-01-15 12:59:10
galcheon44

■ 이규석 수필가
△경기 용인 출생
△서울 문리실과대(명지대 전신) 졸업
△《한국작가》수필 등단
△한국작가 동인회장
△한국문인협회, 성남문인협회, 한국작가, 반달문학회 회원
조회:560
추천:28

 

 

내가 아닌

       너를 말한다.

 

                                                                              석송(石松)이 규 석

나를 먼저 생각하며 마음의 깊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너를 알아야한다.

너의 모든 것을 알았을 때 “나“ 라는 존재가 내 눈에 더 정확하게 각인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이원적 원리를 깊이 살펴보더라도 언제나 “나가 있으면 ”너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등식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라고 말하는 표현에서 분출되는 사고력(思考力)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화의 상대를 어떤 부류에서 선택하느냐가 크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정답에 가깝도록 풀어가는 것이다. 언제나 상대성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하나의 힘으로 둘에 기능을 동시에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에 중심에서 만약 상대자와 말이 통(通)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쪽에서나 그 반대자가 서슴없이 행동을 중지해야한다. 그리고 다음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시키려 한다든지 그의 생각을 다른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고집한다면 해결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봐야한다. 심리적(心理的)인 학설에서 한번 틀어지면 정신적으로 받아드리는 상태에서 이미 그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을 쉽게 바꾸기에는 너무나 힘든 위치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은 모두가 일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뜻이 맞는 동조자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서로 이견의 차이는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할 때 이해력에서 같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면 의견에 따라 견해(見解)차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서로가 보는 관점이 각자의 정답이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 라는 존재적 생각보다는 너를 보는 눈의 잣대에서 삶의 터전! 그 무엇을 찾아내기 바란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 “너라는 사람에게 어떤 대화의 핵심으로 주지시키기보다는 ”네 머리에 “나의 생각을 심어 놓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에 동반자는 일생에 구원(救援)자라 할 것이고 생각에 동반자는 인생에 동조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깊게 알고 있다는 한 가정에 구성원을 살펴보더라도 자녀들이 성장하는 시기에 어떤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자녀들과 어떤 대화를 했느냐가 중요하듯이 얼마 만큼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자녀들과 진솔하게 대화에 임했느냐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과목이 된다.

    만약 자녀들의 성장기에 부모가 바른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 적절치 않은 행동을 보여 주었다면 말이다.  아니! 예를 들어 부부의 다툼이나 술의 힘을 빌려 폭력적으로 욕지거리를 서슴없이 보여주었다면 말이다. 자녀들에게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저건 이렇게 하면 무엇이 잘못이다. 라고 묻는다면 그들의 생각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당장 고칠 수 있다고 보겠는가 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실제 상황을 표현하는 생각에 한계점이 어디에서 방황을 멈추기 바란다고 보겠는가! 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에서는 자녀들이나 부부라도 행(行)하여야 할 언어나 행동에 모범적인 생활 덕목을 선정하여야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식들은 그 모습을 그대로 배운다는 것이다.

    어느 때든지 작든 크든 베푸는 마음과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취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목적이 뚜렷하다했을 때 마음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설혹 그렇게 하려고해도 환경(環境)적 지배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기에 “나“보다는 ”너”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언제나 나를 생각하기 이전에 너에 대한 존재를 우월(優越)성 있게 보는 관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우습게보거나 깔보거나 한수 아래로 처다 본다거나 무시하는 언사에 상대방의 존심(存心)은 재생불능으로 망가져 버리는 것이다.

   상대의 가슴에 받아드리는 마음에 병(病)이다.

   그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에 삶 자체가 언제나 대화의 상대자는 “나 보다는 ”너 라는 것이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에 기본인 것이다.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산 사람은 가뭄에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현실을 이기는 막강한 힘을 가졌을 것이고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산 사람은 삶에 아름다운 인정(人情)을 잊어내지 못하고 살아남는 법(法)을 은연중에 배우는 것이다. 좌절을 가슴에 안고 산 사람은 너그러움으로 온정을 베풀 줄 모른다.

   우리가 가정에서 생활하는데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개개인의 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라는 관점에서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마음을 살려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너는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들어줘야한다. 따라야한다. 라는 정신적 강박관념(强迫觀念)을 심어준다면 그것은 이제 떨쳐버려야 할 당연한 행위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야! 너에게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려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말해 그가 알아듣게 이해를 시켜야 한다.

   고집스럽게 이어졌던 가부장(家父長)적인 모습에서 이제는 서슴없이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세상이 변(變)하고 생활에 투시(透視)적인 개념이 바뀌어졌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나“라는 존재에서 ”너”와 우리라는 공동적 헤게모니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건 가정이건 개인과 함께 서로 뿌리가 왕성하게 돋아나고 살아있다는 생활환경에 활력소를 공급하는 것이 된다면 함께 이끌어 간다는 마음이 최후에 목표지점이라는 사실도 알려줘야 한다. 때론 ”너 라는 생각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그런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한다.

   그 현상을 상호 공동생활의 집단적 모습에서 헤집어낸다는 것은 거시적인 안목(眼目)에서 볼 때 더불어 행하는 어원에서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이끌어낸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성장기에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성장하면서 어떻게 꼭 좋은 것만 보일 수 있겠는가! 봐서는 안 되는 것이라든지 들어서 도움이 없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장르를 겪으며 도전적(挑戰的)휴머니즘에 서서히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적당히 걸러낼 것은 걸러내 버려야 한다.

   세월의 터전위에서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위해 지주(地主)대를 세우고 달콤한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생각! 그 정도로 내일을 근사하게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 인간세계에서 제일의 덕목(德目)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마음은 아파진 만큼 성숙한다* 했다. 고통과 좌절의 마음이 어떻게 쓰임새에 따라 얼 만큼 됨됨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도의적인 생활규범 속에서 편안하게 무엇이든 습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마음먹는다면 배우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하나를 보고 둘에 수(數)를 시작하듯이 우리는 살아가는 기본적 이념이 진실로 필요한 것이다. 허송세월에 덧 가는 세상이라 체념한다면 그게 누구이던 지금에 모습에서 망가져 버릴 뿐이지 더 성장하기를 바랄 수 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하고 더 좋은 것을 꿈꾸고자하는 희망(希望)이 있기를 바란다면 “내 가 아닌 ”너 의 진실을 보며 거듭 태어나게 될 것이라 희망을 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나를 알면 당신이 보입니다. 석송 이 규석 수필가의 수필집)에서 지적한데로 온 누리에 성장은 그것을 모델로 꾸준한 자기개발을 넓히며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삶에 터전을 멋있게 한 단계 발전시키려고 한다면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 대화해야 한다. 그러면 “나 보다 ”너 라는 존재가 더욱 가시적으로 투시(透視)망에 잡혀 정확하게 잘 보일 것이다.

   하면 성장(成長)에 속도는 한결 빠른 물결을 타고 끝없는 발전에 도전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메모
ID : galcheon44    
2018-10-13    
08:03:59    
젊은 이들이여! 읽어라 책을 읽어야 그대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사실말이다.
어렴프시 상상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지말고 진실앞에 기도문을 읽어봐라! 허면 보일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가 현실이며 어디가 가식인가 그것을 느끼며 감동으로 받아내면 진솔한 사랑이 보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찾고자하는 대답이 그곳에 들어있다. 석송(石松)이규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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