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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일기
2012-07-08 12:09:02
hyunsilpen

조회:1800
추천:148

                                       신부일기 (2)

 

 

 

 

  엄청난 불볕더위네요. 후끈후끈 달구어진 지열로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발갛게 상기되었어요. 종로에 있는 서점으로 가기 위해 전동차를 탔어요. 문이 열리자마자 용케도 빈 좌석 하나가 눈에 들어오네요. 쾌적한 냉방에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어요. 노곤한 식곤증까지 겹쳐 스르르 잠이 쏟아졌답니다. 자꾸만 주억거리는 고개를 추스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커다란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음미에~~~~~”

  깜짝 놀라 두리번대며 소리의 방향을 쫓았어요. 도심의 한복판, 수 십m 지하를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 소 울음소리라니!

  마치 어미가 새끼를 찾는 듯 “음미에~~~”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어요. 승객 중에는 목을 젖히고 입가에 빙긋 웃음을 베어 물고 있는 사람도 있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부인이 짐짓 아는 체를 하네요.

  “요새는 휴대전화기의 멋 울림까지 소 울음소리로 서비스를 해주네요. 그래도 소 울음소리는 이상하게 거슬리지 않네요.”

  정말 그랬어요. 소 울음소리는 도회지의 정형화된 콘크리트 숲에서 잊고 있었던 아득한 향수를 불러오는 그리움과 같았어요.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전원생활을 소재로 한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어요. 소를 앞장세운 주인이 코뚜레 낀 줄을 잡고 논두렁을 걸어가고 있었답니다. 목매기송아지가 어슬렁대며 제 어미를 따라갔어요. 남편은 꿈을 꾸듯 소년 같은 얼굴로 말했어요.

  “소처럼 영리한 짐승이 없어. 가끔 산이나 들로 소에게 풀을 먹이러 다니곤 했지. 소고삐를 자유롭게 풀어주면 제 맘대로 다니면서 배부르게 실컷 풀을 뜯어 먹지. 해가 뉘엿뉘엿 할 무렵 산에서 내려오면 소가 앞장서고 나는 뒤따라 내려오는데 용케도 우리 집 대문을 소가 먼저 알고 찾아 들어간다니까.”

  남편의 이야기 속에 오래전 기억 하나가 수줍게 떠올랐어요.

  농촌의 일 년 중 제일 바쁘다는 농번기였어요. 결혼한 지 채 한 달밖에 안된 새색시인 내게 시어머님은 손 하나가 그리운데 잠시 내려와 세참이라도 해주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어요.

  고추잠자리가 마당에서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한가로이 날고 있는 가을이었어요. 앞마당 텃밭에서 풀벌레가 찌륵 찌르륵 울었어요. 가을 햇살에 보송보송하게 말려진 빨래를 바지랑대 위에서 막 거둬내어 돌아서는 참이었어요.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비실대며 내 곁을 스쳐 갔어요. 본능에 따라 고개를 휙 돌렸어요. 순간 나는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어요. 가슴에 한 아름 안고 있던 옷가지들은 땅바닥에 저만치 내동댕이쳐 진체······

  불과 며칠 전에 태어난 어린 송아지가 슬며시 외양간을 빠져나온 것이었어요. 송아지는 말 안 듣는 아이처럼 좁은 제집을 뛰쳐나와 뒤뚱거리며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리 소가 순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짐승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와락 겁이 났어요. 송아지를 피해 대청마루 위로 단숨에 뛰어 올라갔어요. 항상 어른들이 안 계실 때는 호위병처럼 함께 있던 6살배기 조카를 숨넘어가듯이 불렀어요.

  ‘혁아. 혁아. 얼른 저 송아지 외양간에 좀 집어넣어라. 도망가면 큰일 난다’

  “소는 도망 갈 줄 몰라예”

  조카는 마치 내게 약을 올리듯 빙긋이 웃으며 송아지에게 다가갔어요. 자신보다 엄청나게 덩치가 큰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마치 손아래 동생을 타이르듯 나지막하게 말했답니다.

  “너그 집에 들어가그레이. 너그 엄마가 자꾸 안부르나”

  조카의 말처럼 정말 외양간의 어미 소는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듯이 음미에~ 음미에~ 느리고 부드러운 소리로 제 새끼를 부르고 있었어요. 조카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들고 소를 얼렀어요.

  “이랴···이랴···”

  정말 신기하게도 송아지는 마치 조카가 길라잡이인 듯 천천히 외양간으로 돌아갔어요.

  소가 제 주인을 알아본다는 건 사실이었어요. 그 당시 시가의 뒷간은 소 외양간의 한 쪽에 있었답니다. 뒷간을 가려면 응당 소 외양간을 거쳐서 가야 했지요. 찝찝하고 콤콤한 냄새에 코를 싸매었어요. 수북한 짚 위에 웅크리고 있던 소가 내가 지나갈 때면 그 큰 덩치를 일으켜 눈을 껌벅껌벅 거리며 나를 경계하듯 어슬렁거렸어요. 새 식구인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아서인지 소는 나를 온전한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었어요.

  아예 문고리조차 없었던 뒷간은 좁은 널빤지 두 개를 발판 위에 달랑 올려놓은 구조였답니다. 동굴처럼 휑한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도 아득하고 무서웠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보드라운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지요. 초등학교 교사였었던 아주버님이 학교에서 사용하고 난 이면지나 신문지를 잘라서 녹슨 못에 끼어놓으면 한 장씩 툭 떼어서 사용하곤 했지요. 내가 뒷간에서 볼일을 볼 때면 으레 조카는 문 앞에서 보초를 섰죠. 새댁 숙모는 체면 불고하고 어린 조카를 몇 번이나 불러서 확인하곤 했죠.

  “혁아, 거기 있제? 가지마레이”

  하얗고 긴 속눈썹에 쌍꺼풀진 두 눈을 껌벅 껌벅이던 소. 커다란 두 눈망울에 빨간 고추잠자리의 긴 그림자가 잠시 앉아 쉬었다가는 순하고 맑은 어미 소.

  때로 농가의 소들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자녀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우골탑 牛骨塔이 되어 팔려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소가 팔려갈 때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글썽인다고 하네요.

  하얀 코고무신을 끌며 댓돌 위를 내려서시던 시어머니 모습이 오늘따라 가슴 속에 애련하게 떠오릅니다. 명아주 수북한 붓도랑 가에서 풀을 뜯는 어미 소가 간간이 고개를 들고 긴 울음소리를 내고 있네요. 음미에~~~~~

  나는 잠시 전동차에 앉아 소 울음소리를 따라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기억 하나를 광주리에서 꺼내고 있다. 간들간들한 몸매에 유난히 마음이 여렸던 스물네 살의 새댁은 지금 한 갑자의 7부 능선을 숨 가쁘게 올라가고 있다.
  전동차는 쉴 새 없이 닫혔다 열리며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우리들 삶의 긴 노정 路程처럼.



   메모
ID : 산해경    
2012-07-09    
16:54:39    
하얗고 긴 속눈썹에 쌍꺼풀진 두 눈을 껌벅 껌벅이던 소...
순박한 소의 고요한 눈을 들여다보면 세상 시름은 잠시 잊혀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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