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有感
뻐꾸기 소리에 잠이 깼다. 신록리 진한 색을 발산하는 여름날 이른 아침.
뻐꾹...뻐꾹... 뻑뻑꾹...
단조롭게 들리다가 또 이어서 겹으로 중복된 울음소리는 더욱 강렬하게 나의 청각을
자극하였다. 잠결에 듣던 뻐꾸기 소리를 깨어서 다시 듣는 느낌은 또 달랐다. 직선거리로
백 미터도 채 안 되는 중앙공원 숲속에서 울려오는 소리는 그야말로 지척에서 들리는 듯
생생하였다. 해맑고, 싱싱 푸르렀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서 한동안
듣고 있었다. 그놈은 이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뻑뻑꾹, 뻑뻑꾹... 따불로 울면서 나의
아침을 흥분시켰다.
지난 가을에는 묏비둘기 우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건드리곤 하였다. 꾸꾸 쿠루루, 꾸꾸 쿠루루... 묏비둘기 우는 소리를 여러 곳에서 들었다.
대구에서, 광주에서, 춘천에서, 객지의
관사방에서 들었다. 그런데 그 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새인지를 몰랐다. 낮은 탁음(濁音)으로
음산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꿈결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지경으로 익숙하였지만 그 실물의
자태가 궁금하였다. 공원을 걷다가 머리 위에서 그 새를 보았다. 바로 묏비둘기였다.
아하...바로 저놈이었구나.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그놈과 함께 나도 자리를 떴다. 그 뒤로
묏비둘기 소리만 들리면 그 모양새를 떠올리면서 흥미롭게 들어보곤 한다.
30년 전의 옛 친구를 만난 듯, 하던 일도, 걷던 걸음도 멈추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듣는 일이 자자졌다.
이른 아침 뻐꾸기 소리는 더 없이 산뜻 하였지만 궁금한 점이 있었다. 소리로야 얼마든지
뻐꾸기인지를 알지만 그놈의 꼴태를 본적이 없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알 수가 없다.
묏비둘기 같을까. 부엉이 같을까. 어치 같을까, 여간 답답하질 않았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산길은 적막하였고, 태양이 내려 쬐는 한여름은 무료하였는데 저쪽 골짜기에서
뻐꾹 뻐꾹...이쪽 능선에서 뻐꾹, 뻐꾹... 울어대던 아련한 소리, 60년이 훨씬 지난 그때의
뻐꾸기 소리는 내 성장체험의 강렬한 청각적 각인체가 되었다. 보릿고개 시절의 그
배고팠던 어릴 적, 찐득거린 송진을 묻혀가며 송기(松肌)를 벗겨먹던 유소년 시절,
막막하게 흘러, 흐르던 오뉴월의 뜬구름만 쳐다보며 허청거린 어린 놈의 귀를 울리던
그 뻐꾸기 소리... 들리다가 끊길 듯 다시 돌아오는 멀고도 아득한 소리. 산 넘어 저쪽,
고개 넘어 더 먼 능선에서, 꽁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곳, 잘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느 마을에서 날아온 새, 이승과 저승의 빛깔을 함께 지닌 그런 새의 모양새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검푸른 숲을 내다보았다. 소리는 여전한데 새의
모양은 볼 수가 없었다. 11층 아파트에서 눈높이로 마주 대하는 숲속길마을의 중앙공원은
울창한 녹음으로 뒤덮여 있고 바람도 없는 이른 아침의 신록은 더없이 청아했다. 잘 가꾸고
멋나게 꾸며진 공원은 풍요로웠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막막, 아득하게 들리던 그 산길은
아니었다. 현대식 건물로 산뜻하게 지어진 교하도서관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고급
자재로 지어진 멋진 전원주택들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검게 햇빛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도, 호미자루 거머쥔 투박한 어머니의 손길은 안보이고 가슴 속 저 깊이에서
영상 (影像)으로 생생하다.
뻐꾸기는 곽공(郭公)이라고도 하며, 민속적으로는 배은망덕한 새라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속설이 있고, 한 인간이 원한을 품고 죽어 그 넋이 새가되어 날아다니면서 슬피
운다는 설화도 있다. 봄날의 정서를 표현하는 소리로도 많은 소설이나 시문에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뻐꾸기의 탁란 과정을 다큐먼터리로 소개한 티브이 화면을 본 일이 있다. 영리하고,
교활하고,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새라는 것을 자세히 보았다. 화면에서 본 그 뻐꾸기의
실물을 보고 싶었다. 5월 하순에서 8월 상순에 걸쳐 우리나라 야산에서 들을 수 있는
뻐꾸기는 이 시기에 같은 종류의 두견이나 벙어리뻐꾸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종류의 새둥지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주로 탁란(托卵)하는 곳은 개개비,
때까치, 지빠귀, 할미새 등의 둥지라고 한다. 암컷은 각기 일정한 범위의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그러한 새들의 번식 상황을 돌아본다고 한다. 알을 품어 줄 임시 어버이새가 산란을 시작하면
그 둥지에서 한 개의 알을 빼내고 자기의 알을 한 개 낳는다. 뻐꾸기
새끼는 2∼3일 빨리 부화하여 다른 새의 알을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 후 둥지를 독점하여
임시 어버이새의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뻐꾸기는 12∼15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는데
다른 새집에는 1개씩만 낳아서 탁란 한다. 머리 꼭대기에 흰 반점이 1∼2개 있는 특징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도 전역에 걸쳐 번식한다.
겨울철에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 월동한다는 이 철새는 그런 저런 내력에 상관없이
그 소리 하나로 나를 더욱 애잔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깊이 서러운 소리로만
울려오는 것이다. 뻐꾸기의 실물을 보다 가까운 데서 보고 싶어서 소리 나는 숲 쪽을
눈독 드려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모습은 끝내 나타나질 않고 오래 전에 쓰여 진 나의
시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늘만 빌고 살아 온 생애 / 지극하여 더욱 멀어진 공허(空虛) / 칠십 고령의 해소 천식에
/ 번데기처럼 오그라들던 / 우리 아버지의 손등에 / 피어나던 꽃버섯 // 뙤약볕 가뭄으로
불타고 있는 죽은 혼령이 / 너울너울 무당춤을 추면서 / 마당에서 주문을 외운다.
// 기다리다 잠이 든 / 허기진 들녘에 / 이승의 개똥밭 설움이 / 막막하게 흐르고... //
아버지의 해골을 쪼아대며 / 저승길 험한 고개를 넘지 못하는 / 헐떡헐떡 숨찬 소리로 //
목메여, 메여 / 뻐꾸기 운다. (졸작 “뻐꾸기” 전문)
이른 아침 잠결에 듣는 뻐꾸기 소리는 새삼스럽고 아득하여 소름 끼치도록 심오한 맛을
더해 주기도 한다. 철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긴 세월이 한 점으로 집중되어 확성기
소리로 고막을 찢는 듯하다. 오뉴월 긴긴해에 하얀 찔레꽃을 따먹으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막막한 하늘을 쳐다 볼 때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던 그 소리...뻐꾹∼, 뻐꾹∼.
아직 5월이 멀었는데 병든 남편은 뻐꾸기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뒷산에
올라가 뻐꾸기 소리를 낸다. 남편은 그 소리를 듣고 운명 한다. 피천득 수필집 “인연”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내가 독립가옥을 짓고, 30평 남짓 텃밭도 가꾸고, 아담한 정원에 활엽수를 빽빽이 심어
놓고 뻐꾸기가 날아들기를 기다리고 싶다. 잘 다듬어진 나의 정원에 찾아든 뻐꾸기가 바로
머리 위에서 슬프게, 심각하게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싶다. 끝내 그 새가 찾아들지 않는다면
아담한 조롱(鳥籠)을 사다가 걸어놓고 그 새를 키워보리라. 아쉽고, 어둡고, 잔인했던 많은
날들을 주문(呪文)처럼 풀어주는 뻐꾸기 소리를 새장 안에서 듣고 싶다. 그도 저도 할 수
없다면 내 가슴 속에라도 한 마리 뻐꾸기를 길러서 절망의 내일을 울어볼까 한다.
뻐꾹-.뻐꾹-, 뻑뻑꾹-.
지금도 자꾸만 귓전을 맴도는 멀고도 아득한 소리. 5월 말, 교화동 숲속길마을 나의
아파트 거실에 찾아든 뻐꾸기-. 온 몸 구석구석을 휘젓고 용솟음치는 영혼의 소리,
그 오싹한 전율의 떨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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