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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네팔 여행기(1부)
2018-07-21 11:06:13
mjh022

■문재학 시인
△경남 합천 출생
△건국대 졸업
△《한맥문학》시,《동방문학》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서정문인협회 회원
△시집『삶의 풍경』
△공무원으로 정년퇴임
△녹조근정훈장 수훈
조회:575
추천:8

인도. 네팔 여행기 (1 )

(2018.7.4.~7.15 = 12)

소산/문 재학


201874() 맑음

태풍 7(쁘리빠룬)이 올라오고 있어 각급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취임식을 취소하고 대비할 정도로 긴장하였으나 다행히 일본 규수 쪽으로 방향을 틀어 편안한 마음으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17시에 일행들과 만나 1910분 탑승 출발하는 시간이 기내식 준비 지연으로 2시간이나 늦은 2110분 탑승 수속, 2150분 아시아나(oz 767)에 탑승 뉴델리 공항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9시간 10분 예정이다.


한국시간 1250분 중국의 중앙에 위치한 리칭 부근을 지날 때 여객기 창밖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디맑은 하늘 끝으로 기우는 반달이 미소를 짓고 있고, 지상에는 이름 모를 작은 마을들이 곳곳에 어둠을 밝히는 빛을 뿌리고 있었다.


한국시간 새벽 222분경 뉴델리 외곽 지대에 들어섰다. 다소 어두워 시가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뉴델리 공항주변은 넓은 면적에 보석을 뿌려 놓은 것 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뉴델리 국제공항은 상당히 넓고 많은 여객기들이 밤이슬을 맞으면서 게류하고 있었다.

75일 현지시간 145(한국시간 515. 시차 3시간 30) 도착했다.

입국신고 하러가는 도중 청사 내 상당히 넓은 면적 전부 알록달록한 카펫을 깔아 놓은 것이 이색적으로 보여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입국심사는 지문체취 등 절차가 까다로워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행과 함께 공항 밖을 나오니 후끈한 인도의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주변을 둘러보니 상당히 지저분하고 정리정돈이 되어있지 않았다.


곳곳에 노숙자들인지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고 개들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325(앞으로는 현지시간으로 명기) 대형관광버스(운전석 오른쪽) 올라 호텔로 향했다.

현지가이드의 서툰 한국말이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시내 거리는 다소 어둡고 심야 시간인데도 차가 많이 다녔다.

15분 정도 후 부터는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시골길 같은 곳을 잠시 달려 345CLARK INN SUITE 호텔 314호 실에 투숙했다.


201875() 맑음

8네팔 카트만두로 가기위해 호텔을 나왔다.

호텔앞 도로는 쓰레기가 뒹굴고 낡은 차들이 신호등 없는 거리를 클랙슨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길을 내어 달리고 있었다.


호텔이 공항에 인접해 있었다. 국제공항으로 가는 우회하는 6차선 길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량이 많았다.

6차선 도로 중앙분리대에는 다양한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주위의 가로수의 샛노란 꽃송이들이 아침 햇살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도로변에 있는 2~3층 건물들은 상당히 낡아 보였고 지저분했다.

공항 진입로 왕복 8차선 중앙분리대 야자수 아래 다양한 형상의 식물들로 조경을 해두어 관광객들의 시선을 즐겁게 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네팔행 탑승구 게이트로 가는 길에 면세점들은 화려한 조명아래 풍성한 상품을 진열해 두고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곳곳에 우리나라 전자제품을 선전하고 있어 우리민족에 대한 뿌듯한 자긍심을 느꼈다.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114분 인도여객기(Indigo 6E031)편으로 카트만두로 향했다. 2시간 소요예정이다. 여객기가 작긴 하지만 승객이 만원이다.


뉴델리 공항주변은 1~2층의 주택들이 광활한 면적에 펼쳐져 있었다.

1340분 녹음이 짙은 산들에 둘러싸인 갈색지붕의 거대한 도시 카트만두가 나타났다.

이곳에서도 입국수속이 상당히 지체 되었는데, 세삼 우리나라 인천공항의 신속한 처리가 생각났다.


우리일행은 몇 대의 자동기계가 있는 곳에서 여권을 갖다 대고 필요정보를 입력하니 카메라를 통한 사진 촬영을 한 후 결과물의 티켓을 들고 VISA 관리 하는 곳에서 비자대금 25불과 함께 제출하고 영수증을 받아 입국심사대에 제출했다. 별도 한 장씩 따로 준비한 사진은 필요치 않았다.


1457분 입국수속을 끝내고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공항 앞 넓은 주차장에는 차량이 만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을 지나 버스에 올랐다.


현지 가이드 파담을 만났다. 한국을 12번이나 다녀왔다는데 한국말을 잘 하였다.

네팔(Nepāl)은 면적 141.181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천만 명 그중 종족은 인도와 같은 아리안족80, 티베트 몽고족17이며, 언어는 네팔어가 공용어이다


종교는 힌두교가 80%, 불교가 10% 정도란다.

그리고 네팔은 해발 20 ~ 300 m까지는 열대지방,

                           300 ~ 3000m까지는 아열대,

                           3000 ~ 8848m는 고산 지대로 분류 했다.


80%가 산지인 네팔은 해발 8848m의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이 있다.

북부 산악지대는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10대 산 중 8개가 분포해있다.


이곳 수도인 카트만두(Kathmandu)는 해발 1400m에 위치한 천년고도로서 면적은 49.45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600만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카트만두 시내의 더르바르 광장, 스엠부 나트 사원, 부다 나트 사원, 파슈파티 나트 사원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7개나 있다.


이곳도 차량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왕복 6차선이 있는 간선 도로변에 있는 건물 5층에서 비 내리는 카트만두와 시내와 맞은 편 네팔의 국회의사당을 내려다보면서 때늦은(1525)점심을 중화요리로 했다.

 

네팔 국회의사당


점심을 하고 나오니 다행히 비가 수그러들고 있었다.

6차선 도로 중앙분리대에는 고무나무 등 열대식물로 조경을 해 두었는데 모두 물기를 머금어 반들거렸다.


네팔에는 10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 그중 7개가 이곳 카트만두에 있다.

거리에는 차량도 많이 다니지만 오토바이도 많았다.

4~5층 건물들이 전선에 엉키어 있고 건물들이 깨끗하지 못했다.


도로 포장률이 95%라 하는데 중요도로를 제외하고는 도로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이드말로는 소화제가 필요 없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네팔은 한국의 TV. 냉장고. 휴대폰 등 전자제품의 인기가 많다고 했다.


1620분 버스는 작은 산 경사 길로 오르기 시작했다.

원숭이 사원이라 불리는 스엠부 나트 사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곳은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계단 등을 올라가는데 길 주변으로 작은 원숭이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철기 종류의 각종 액세서리 등을 파는 상점들 사이로 정상에 오르니 수많은 부도 같은 돌탑 주위로 오래된 건물들이 있었다.


이곳을 지나자 스엠부 나트 사원의 하얀색 돔처럼 생긴 상단에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네팔식 불탑이 있고, 바로 옆에는 독특한 양식의 힌두교 사원이 규모는 작지만 나란히 있었다.



수많은 검은 비둘기들과 원숭이들이 관광객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스엠부 나트 사원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원으로 카트만두 서쪽 작은 언덕에 있다.


이 사원은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열었다고 하는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야생원숭이들이 많아 일명 원숭이사원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카트만두 시가지를 한눈에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시내 중심지에는 일부 고층 건물들도 보였다.

 

카투만두 시내


1710분 관광을 끝내고 시내 중심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는 왕궁광장이라는 뜻)으로 향했다.

1722분 버스에서 내려 10여분을 좁은 골목길을 올라갔다.


2015년도 7.9 강진으로 허물어진 사원의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사방으로 고색 찬란한 빛을 뿌리는 더르바르 광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곳으로 중세시대 중요 건축물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더르바르 광장은 지난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 지역을 통치했던 3개의 힌두교 왕국의 역사가 모두 녹아있다.

더르바르 광장은 고대 네팔 왕궁이 이곳에 있어 허누만 도카 궁전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허누만은 원숭이 신을 의미하는데 궁전의 중앙 입구 오른편에 붉은 칠을 한 원숭이 석상이 보수공사 중인 가운데에 있었다.

원숭이 신은 더르바르 광장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하누만은 힌두교의 원숭이 신으로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한 네팔인 들이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신이라고 한다.

지금도 80%나 되는 많은 힌두교인이 찾고 있다.

 

더르바르 광장은 옛 왕궁 외에도 살아있는 신이라고 불리는 쿠마리(힌두교의 살아있는 여신)가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발된 쿠마리는 첫 월경이 있으면 쿠마리로부터 벗어난다.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쿠마리였던 여자와 결혼하면 남편이 죽는다는 말이 있어 결혼하기 쉽지 않았다

1991년부터는 결혼 등 일반인과 같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제일먼저 쿠마리 사원으로 들어갔다.

쿠마리 사원더르바르 광장의 남쪽에 있는 정사각형 3층 건물로 정교한 검은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진 창틀의 기술이 매우 뛰어난 사원이다.



쿠마리는 일 년에 13번을 밖 앗 세상에 잠시 나올 수 있단다.

그리고 하루에 오후 16시와 18시에 살아있는 쿠마리3층 창문 밖으로 잠시 모습을 내미는 것을 우리일행은 18시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어린애가 3층에서 잠시 얼굴을 내밀 때 모두 기립하여 두 손을 모아 나마떼(인사 말)”로 인사를 했다.

촬영이 금지 돼 있어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지 못했다.

나름대로 소원을 비는 사람은 뜰에 있는 헌금함에 돈을 넣기도 했다.


곳곳에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지진에 허물어져 볼쌍 사나운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9층짜리 대형 왕궁이 있은 곳으로 갔다. 거대한 왕궁을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오래된 집들이 둘러싸고 있었었다.


네팔은 인구보다 신이 많고 집집마다 신전이 있다고 했다.

이어 허누만 도카(원숭이 신)를 지나 맞은편에 있는 자간나트 사원(Jagannath Temple =3)이다.


자간나트 사원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로

1563마헨드라 말라(Mahendra Malla)때 만들어진 목조 2층이 3단의 월대(月臺) 위에 세워졌다


. 이 사원에는 지붕을 바치고 있는 垂直48개의 버팀목 중간에 성행위 등 에로틱한 형상을 양각해 두었는데 이는 신을 상징 한다고 했다.

힌두교 사원으로서 인도의 카마수트라에 영향을 받은 것 이란다


이 사원 맞은편에 구왕궁 입구에 있는 하누만 입상의 얼굴이 붉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이유가 총각신인 하누만이 맞은편의 자간나트 사원의 에로틱한 조각들을 부끄러워해서라고 한다.


다시 발길을 돌려 가까이에 있는 거대한 보리수나무를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화려하고도 요란한 힌두교 신을 모시는 신전에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있었다.

 

 

 


서둘러서 관광을 마치고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버스에 올랐다.

민속공연을 하면서 저녁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네팔에는 125개의 소수민족에 125개의 언어가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복잡한 시내를 지나는데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내는 약간 어둡고 사람과 오토바이 차량이 뒤엉켜 상당히 복잡했다.

인도도 차선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 거리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중앙분리대에 있는 가로등에 아름다운조명이 밝게 들어와 있는 넓은 도로를 지났다.

가로등 중간에 밝은 빛이 들어오는 간판에 현대자동차의 홍보물이 자주 보였다.

부근의 상점들도 화려한 조명으로 시선을 끌고 있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옛 왕궁 앞에서 하차하여 골목길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고 정면 무대에서는 요란한 음악소리 따라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미리 예약된 좌석에 앉아 반주를 곁들리면서 장시간 민속춤을 관람했다.

2120분 버스에 올라 호텔로 향했다. CHANGRI 호텔 203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876() 맑음

아침 530분 호텔 인근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탑 보디나트(Bodhnath) 사원보려 걸어서 갔다.


보드나트사원보드(Bodh)깨달음의 뜻이고 나트(nath)사원이라는 뜻이니 깨달음의 사원이라는 의미한다.


5세기경에 축조된 탑의 높이는 38m이고 기단의 높이만도 36m나 된다.

이곳이 네팔을 상징하는 곳이 된 것은 이 사원의 스투파() 때문이다

네팔에서 가장 높은 사리탑으로 불교신자들의 숭배지이다.


출입구에 경찰이 지키는 곳을 지나 들어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수천 명이나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탑 주위를 빙 둘러 앉아 있거나 사원 주위를 집단으로 돌고 있었다.

사원 주위의 3층 건물의 주택들은 다른 곳 건물들과는 달리 깨끗했다.



사원을 빙 둘러서 수백 개의 작은 마니차(摩尼車는 주로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되는 불교 도구이다. 전부 원통형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다양하다. 표면에 불교 경전이 조각되어 있다. 이 원통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불교 경전을 한번 읽는 효과를 낸다고 여긴다.)들을 신도들이 돌리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 후 720포카라로 향했다.

200km를 달려가야 했다.

카트만두 시내는 흙먼지가 심하고 교통질서도 지극히 무질서했다.


최근 5년 사이에 차량이 급증 하였다는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교통체증이 심했다.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는 왕복 10차선 정도 부지를 확보해 두고 주택허가를 내주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중앙에 2차선만 포장하여 활용하고 있지만 앞을 내다보는 행정으로 보였다.


지금 네팔은 국왕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모두 여자라는데 놀랐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 최소 1/3은 여자가 참여토록 규정되어 있단다.

810분부터는 일부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했다.


도로변 주택들은 먼지투성이였다.

일부 지역에는 고층 아파트도 짖고 있었다.

기복이 심한 지형 따라 3~5층 주택들이 밀집해 들어서 있는데 600백만 카트만두시의 규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840분 아직도 카트만두를 벗어나지 못했다.

외곽지대에는 간혹 비닐하우스 재배단지가 보였다.

858분 한참 꼬부랑길을 올라간 산 능선 고개가 카트만두 시 경계라 했다.


버스는 급경사 2차선 꼬부랑길을 곡예운전으로 계속해서 내려가는데 대형 터럭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도로가 카트만두로 가는 유일한 고속도로(?)포카리룸비니 쪽의 차량이 집중하기 때문이다. 통행 차량의 80~90%가 대형터럭이다.


카트만두 시내가 해발이 높다는 것을 느끼면서 까마득한 산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도로주변의 급경사 험산 곳곳에 개간을 하여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었다.

또 도로변에 조금이라도 빈터가 있으면 농작물을 파는 간이 판매점들이 곳곳에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도중에 간이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20km 거리를 오는데 2시간이나 걸렸단다.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교통체증이 아니라 거의 교통마비 수준이다.


계단식 논에는 모내기를 했고 경사진 곳은 옥수수를 심었다.

951분경 꼬부랑 산길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았다.

가끔 수확직전의 노랗게 익는 벼가 있거나 벼를 낫으로 수확하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물소 두 마리가 이끄는 쟁기질로 논을 정지 작업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손모내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열대지방이라 2기작이 가능한 것이다.


험한 산악지대 높은 곳까지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울창한 숲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계곡을 끼고 아래로 계속 내려가고 있고 암반 계곡에는 안나푸르나 산에서 흘러내린 빙설물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곳이 인도 갠지스강의 상류라 했다.


네팔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또 한국에 간 사람들은 95% 이상 성공했다고 했다.


1010분 경 부터는 하폭이 상당히 넓은 곳이 나왔다.

도로변 간이매점에서 산 야생 바나나를 맛보면서 V자형 협곡을 계속 내려가는데 곳곳에 출렁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1120분 에어컨이 없는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중식을 하는데 숲속 나무 그늘이긴 하지만 더웠다.

1215분 버스는 다시 급경사 협곡을 내려가고 있었다. 높은 산봉우리 위로는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 안가 카트만두에서 110km 지점인 룸비니와 포카라의 갈림길에 있는 뭉링(Mugling)시장을 지나 포카라로 가는 다리를 지났다.


이곳은 카트만두 쪽에서 오는 안나푸르나산의 빙하수와 마니산의 빙하수가 합하여 룸비니로 흐른다. 어디를 가나 V자형 대협곡이었다.

1245분부터는 약간의 평지가 나오고 손모내기를 하는 논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 도로변에 주택들이 늘어나고 붉고 노란색의 칸나 꽃과 바나나 등이 수없이 보였다.

155포카라(Pokhara) 외곽지대에 들어섰다.

포카라는 해발 900M에 위치하며 인구는 150만 명으로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8,000 m가 넘는 고봉이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인근에 있는 사랑코트 전망대는 고산준봉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했다. .


제일먼저 티벳 시장을 찾았다. 전부 문을 닫아 버려서 아쉬움을 안고 가까이에 있는 데이비드 폭포를 찾았다.

차에서 내리니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름답게 조성한 정원을 지나 폭포로 가니 요란한 물소리와 하늘에 치솟는 비말이 더위를 식혀 주었다.

평지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그 많은 량의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이 지점에서 지하로 떨어진 그 많은 물이 흘러가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흘러가는 깊은 구멍이 있는 곳 등 위험한대는 철책 울타리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신기한 장면들을 동영상을 담고 10분 거리에 있는 페와(Phewa Tal) 수로 갔다.


숲이 욱어진 주차장에는 비수기인데도 이미 많은 차들이 와 있고 선착장에는 예쁜 보트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페와 호포카라 남쪽에 위치한 호수로 면적은 약 4.4km²이다.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녹아 형성된 것이라 한다.

41조로 배에 올라 호반의 울창한 숲을 옆에 끼고 호수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호반의 경사진 울창한 숲에는 작은 원숭이 들이 재롱을 떨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호수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호수 가운데에 있는 마라이 힌두사원이 있는 작은 섬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멀리 산 능선위로 대규모의 하얀색 부다 사원의 꼭지가 오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선상 유람을 끝내고 1722분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포카라 비행장 옆을 지나 달려 20여분 만에 PARK VILLAGE 호텔 201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877() . 흐림

안나푸르나 산의 일출을 보기위해 430분 호텔을 나와 지프차로 전망대인 사랑코트로 향했다. 해발 1600m 전망대에서 히말라야 산 마차푸차레안나푸르나를 가까이서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


510분의 일출을 보기위해 비가 내리는 속에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좁은 길 곡예운전이다.

전망대 중간쯤 올라갔을 때 다행히 비가 수그러들고 있었다.


해발 1560m까지 경작농가들이 급경사 곳곳에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식수문제가 궁금하지만 풍광이 좋은 자연의 품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것 같았다.

어둠을 뚫고 전망대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와 있었다.


기대했던 안나푸르나( 8,091m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전망대 부근의 아름다운 산들과 포카라 시내 전경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위안을 삼았다.


흰 구름떼가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풍광이 신비롭기만 했다.

이곳저곳 사방에서 닭울음소리가 전망대를 울리고 있었다.

전망대 부근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토산품 매장들이 이른 아침인데도 문을 열고 있었다.


전망대 바로 옆 건물옥상은 전망대보다 약간 높게 해놓고 한 사람당 1불씩 입장료를 받으면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필자도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549분 흰 구름 사이로 사각형 창문 모양의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침햇살에 빤짝이는 삼각형 안나푸르나 정상의 신비로운 자태가 아득한 구름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구름사이로 삼각형 안나푸르나 정상이 보인다


관광객들의 탄성과 함께 영상으로 담느라고 바빴다. 그러나 이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610분 하산 길에 얄미운 비가 또 차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현대 자동차와 쌍용자동차 매장이 반갑게 눈에 띄었다.

710룸비니로 향했다.


280km 거리이나 소요시간은 예측 할 수 없단다.

뭉링에서 룸비니로 가는 도중에 있는 험산 급경사에 산사태 때문이란다.

몽링까지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거리가 90km 산길이다.


이곳 포카라 에서는 커피나 사탕수수 등 열대작물도 재배한다고 했다.

산재된 2~3층의 농가주택 주위로 모내기와 옥수수 재배지가 많이 보였다.

도로는 포장은 되어 있으나 요철이 심해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820분부터는 산악지대로 길이다.

손바닥만 한 다락 논에 탐스런 벼가 노랗게 익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내는 곳도 있었다.

경작 가능한 곳은 최대한 작물들을 재배하고 농가 주택들이 그림처럼 들어서 있었다.


산골짜기 마다 흘러내리는 시원한 계곡물은 바라만 보아도 더위를 잊게 했다.

10시경에는 경사 80~90도 급경사 산들 사이로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소나무나 상수리 등은 눈을 닦고 보아도 없었다.

몽링 마을에서 잠시 쉬면서 망고 맛을 보고 1030룸비니 쪽 절벽 길을 통과 하는데 산사태 복구공사(사실은 복구공사가 거의 불가능한 지형임)로 차량이 엄청나게 밀리고 있었다.


V자형 계곡에 흐르는 강물 건너편에는 바나나와 옥수수를 일부 재배하는데 작황도 좋지 않았고 사람이 어디로 다니는지 궁금했다.

용케도 우리버스는 1119분에 사고 구역을 벗어 날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평야지로 들어섰고 강물도 河幅 가득히 불어나고 있었다.

도로 보수를 하는 곳은 승차감이 좋았다.


때로는 2차선 직선도로 양측으로 울창한 숲이 수벽을 이루어 도록 약간 어두울 정도였다.

특이한 장면이라 동영상으로 담았다.


12시에 네팔 서쪽에 있는 인구 50만 명의 나라이 나트 라는 도시에서 중식을 하고 1255분 강폭이 넓은 나라이 강”(겐지스 강 상류)을 건넜다.


아직 룸비니까지 156km 남았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평야지대를 달릴 것이라 했다.

도로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사람도. 자전거도 트랙터 우마차도 마음대로 다니는 시골길에 통행료 징수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지인데도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논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60~70년대처럼 손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1330분부터는 평야지의 울창한 숲을 지나는데 이곳을 개간하여 급경사 험산에 농사 짖는 사람들을 이주 시키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440분 갈림길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인도와 네팔의 관광버스는 운전석과 승객사이에 투명유리문으로 차단해 놓고 영상 40도가 가까운 뜨거운 열기 속에 졸음을 쫓기 위해서 에어컨 없이 장시간 운전하고 있는데 운전수와 조수를 너무 학대하는 것 같았다.


지금 지나는 이 평야는 우리나라 김제. 호남평야를 합한 것 보다 몇 배나 넓어 보이고 가도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네팔의 곡창지대 같았다.

국토의 83%가 산이고 나머지 17% 들판은 이곳을 말하는 것 같았다.


경지정리는 안되어 있지만 간혹 트랙터가 작업을 하고 있어 앞으로는 영농 기계화가 될 것 같았다.

1510분 넓은 도로 십자로 갈림길에서 우측 룸비니로 향하는 왕복 4차선에 들어섰다. 좌측으로 계속 가면 인도 국경지대라 했다.


앞으로 목적지까지 10분 남았다.

석가모니 탄생지 룸비니(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로 들어가는 도로는 4차선 확장공사를 하고 았었다.

우측으로는 정원이라 불리는 자연 방치상태의 넓은 숲을 지났다.


1540분 반원형 아취 정문 앞에 도착 버스에서 내렸다.

40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땀으로 흘러내렸다.


10여분을 걸어서 들어갔다. 양측으로 이름 모를 수고 3~4m 나무들이 다양한 꽃을 피우고 있어 그나마 걷는데 위안이 되었다.

4인용 전통차가 수시로 관광객에게 호객 행위를 하며 지나다니고 있었다.


한참을 가서 탄생지 정문 앞 가까운 곳에서 모두 신발을 벗고 입장을 해야 했다.

포장도로 위는 발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열기가 심했다. 모두 땀을 흘렸다.


입장권과 소지품 등 검문검색을 받은 후 들어가는데 정원은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지만 큰 나무가 없어 뜨거운 태양아래 걸어야 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는 석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이었고 석가모니 어머니인 마야(Maya) 왕비가 고향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사라수 아래에서 쉬다가 기원전 642년에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했다

.

탄생지인 백색의 큰 4각형 마야 사당의 단층건물에 들어서니 곳곳에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 만 담아야 했다.


40~50평은 되어 보이는 방책선 내부는 붉은 벽돌 같은 것이 무질서하게 있고 방책선을 돌아 정중앙의 유리판 아래에 큰 발자국모양의 흔적이 있는 작은 돌이 있었다.

여기서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고 했다.


실내도 그늘만 있을 뿐 뜨거운 열기는 변함이 없었다.

뒷문으로 밖을 나오니 마야왕비석가모니를 낳기 전 목욕을 하고 또 석가모니를 목욕시켰다는 직사각형의 구룡 못이 있었다.

 


구룡 못 건너편에는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보리수나무가 있는 곳에서 구룡 못과 마야 데비 사당과 그 옆 왼편에 기원전 249년에 인도 마우라 왕조아소카왕이 석가모니를 찬미하며 세운 대형 석주를 한꺼번에 영상으로 담았다.



이곳이 삼장법사와 우리나라 왕오천축국전을 쓴 해초스님이 다녀간 곳이라 했다. 관광을 끝내고 1650분 호텔로 향했다.


넓은 평야지대를 한참을 달려 들판 가운데에 있는 MEADOWS호텔 2007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1830분 저녁식사 때 기다리고 있던 인도 현지 가이드 노니 씨를 만났다.


201878() 맑음

아침 610분 대기하고 있는 인도 행 관광버스에 올랐다.

네팔 국경까지는 20분 정도 소요 예정이다.

현재 인도는 장마기간이라 수시로 비가 내린다고 했다.


630네팔 국경에 도착했다. 신속한 통과를 위해 1인당 2불씩 가이드에게 여권과 함께 맡겼다.

네팔 국경지대에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659분 네팔 공무원 2인이 버스에 올라와 간단한 확인을 한 후 통과 했다.


도로 양측에 건물들이 계속해 늘어서 있어서 어디가 국경지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네팔 방면으로 끝없이 늘어서서 입국을 기다리는 대형 터럭들 때문에 거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화물차는 심야 시간을 이용하고 오전 9시까지 왕래하기 때문에 대기하는 것이라 했다.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인도 입국심사는 가이드 혼자 가서 입국 절차를 마치고 돌아왔다.

2개 나라의 출국과 입국까지 1시간 15분 정도 소요되었다.


745인도 바라나시로 향했다. 거리는 440km이나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11시간 버스를 타야한단다.(우리나라 고속도로라면 5시간이면 될 것을)

네팔 쪽으로의 도로변에는 국경을 넘으려는 터럭이 계속해서 늘어서 있었다.


국경지대라 그러한지 주거형태나 영농방법이 2개국이 같아 보였다.

인도에서도 산이 없는 광활 평야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인도는 면적 3,287,000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32천만 명의 거대한 나라이다.


인도의 명칭은 영국지배 하에 있을 때 영어로 India라 불렀고 한국과 중국이 이것을 인도라 부르게 되었다.


왕복 2차선 평야를 달리는데 들판에는 대형 나무들이 곳곳에 많이 있어 농민들이 휴식 장소로 이용할 것 같았다.

이곳도 역시 경지정리는 하지 않았고 마무리 하는 모내기는 손으로 하고 있었다.


들판에 집단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820분 시골마을 안길을 통과 하는데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았고 버스가 시종 덜컹거릴 정도로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모두들 어렵게 사는 것 같았고 왜소한 체구에 피부가 검어 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조금 지나자 포장이 잘된 2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이곳도 네팔과 마찬가지로 가로수는 없고 자생하는 나무들만 간혹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고 그중에 유카리스나무도 자주 보였다.


830분 큰 마을이 있는 곳은 중앙분리대가 있는 4차선 도로가 나왔다.

인도는 도로확장 부지를 확보해 두지 않았다.

대체로 도로에는 차량 보다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녔다.


주로 벼농사 이지만 포도 등 과일나무도 자주 보였다.

벼농사가 끝나 그루터기만 남은 곳이 많이 보였는데 앞으로 무슨 작물을 재배 할 것인지 궁금했다.


대체적으로 도로변 전구간이 간이천막 형 매점이랑 방치된 쓰레기랑 등 불결하기 그지없어 난민촌 같은 분위기였다.

도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계속 경적을 울리고 있어 무더운 날씨에 짜증스러웠다.


마을 내를 지날 때는 차선도 없는 2차선 도로가 시장처럼 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뒤섞여 통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마을을 벗어나도 난폭 운전하는 오토바이와 무단 횡단하는 주민들 때문에 교통사고의 우려가 크게 염려되었다.


네팔 호텔에서 4시간 반 걸려 도착한 140km 지점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중식을 버스 내에서 했다. (주변에 변변한 식당도 없거니와 너무 더워서 화장실 가는 것도 꺼릴 정도로 酷暑였다.)

1230분 남은 300km를 달렸다.


곳곳에 4차선 확장공사를 하고 있어 비포장도로를 가는 기분이었다.

주로 시멘트 포장을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산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달리는데 주위의 농경지 90%정도는 모내기를 하지 않았다.


필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미국의 텍사스 주 평야지대를 제외 하고는 이렇게 넓은 평야는 처음 보았다.

버스는 중앙선 없는 도로를 각종차량과 오토바이를 잘도 피해 가면서 달리는데 가끔 이름 모를 부락의 골목길 같은 좁은 길도 수차례 통과 했다.


1430분부터는 왕복 4차선 도로의 편도에 시멘트 포장을 많이 해둔 곳을 지났다.

1525분 아직도 산이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

멀리 높이 30m( ?) 되어 보이는 고깔모양의 연통은 벽돌 공장이라 했다. 벽돌 수요가 많은지 자주 보였다.


1710분에 바라나시 시에 도착하여 MEADOWS 호텔 4008호실에 투숙했다.

오늘은 거의 1 시간을 인도의 농촌 생활상을 보면서 버스만 탄 하루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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