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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네팔 여행기(2부)
2018-07-25 10:17:04
mjh022

■문재학 시인
△경남 합천 출생
△건국대 졸업
△《한맥문학》시,《동방문학》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서정문인협회 회원
△시집『삶의 풍경』
△공무원으로 정년퇴임
△녹조근정훈장 수훈
조회:551
추천:11

인도. 네팔 여행기 (2 )

(2018.7.4.~7.15 = 12)

소산/문 재학


201879() 맑음

아침 430겐지스 강의 일출을 보려 호텔을 나왔다.

시원한 새벽바람이 상쾌했다.

바라나시(Varanasi)는 면적 81.1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400만 명이다.


성지순례도시로 집집마다 사원이 있다고 했다.

호텔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겐지스 강변 부근에 도착하여 걷는데, 밝은 가로 등 아래 벌써 목욕하고 돌아오는 사람과 다양한 장사치들의 호객소리. 어슬렁거리는 소 등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아직 일출전이지만 강변에는 노숙한 사람인지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돌계단을 한참 내려가서 유람선 타기 전 겐지스 강변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았다.


유람선을 타자 물건을 파는 상인의 배도 동행을 했다.

강 저 멀리 떠오르는 눈부신 아침햇살에 역사의 향기 가득한 옛 건물들이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


구름에 약간 걸친 붉은 태양이 높이 떠오를수록 겐지스강의 수면은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한 빛으로 일렁이었다.

강변에는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하류로 한 바퀴 돌면서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상류에 있는 고정 화장터로 갔다.

그리고 화장터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시신을 운반하거니 곳곳에 태우고 있었다. 화장은 24시간 진행된다고 했다.


號哭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임자 없는 소 몇 마리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세상 마지막 흔적을 없애는 절차는 시신을 운반 성스러운 강물에 먼저 씻고 그리고 화장을 한 후 그 흔적을 강물에 흘려보내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전문 장의사들이 한다고 했다.


굴뚝이 5개나 있는 화장장 등은 비가 올 때 사용한다고 했다.

화장장 부근으로는 상당히 미려한 건물들이 있는데 새까맣게 그을려 그간의 화장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기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아래 강변의 전경을 영상으로 담고 6시에 하선하여 좁은 미로 골목을 돌아 나왔다.

무더위로 땀을 많이 흘려야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상인들과 구걸하는 사람. .차량 등이 가득한 혼잡한 거리에 쓰레기와 각 짐승들 배설물이 길바닥에 많이 있어 피해 다녀야 할 정도로 불쾌했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서 호텔로 돌아와 사워를 했다.

9시에 호텔을 나와 사르나트 녹야원으로 향했다.


녹야원(鹿野園, 사슴 동산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리는 사르나트는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Lumbini, 네팔),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 Gaya, 인도). 그리고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Kushinagar, 인도)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이다


복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더위를 식혀주는 욱어진 가로수 거리를 통과하여 920사르나트(사르=사슴, 나트=주인의 뜻임.) 정문에 도착했다.


입구에 치약의 원료로 사용한다는 거대한 님나무”(축복받은 나무, 만병통치약으로 사용 = 인도에서는 성수라 불리움)을 동영상으로 담고 붉은 벽돌이 산재된 거대한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래는 섬세한 문양이 양각된 사암을 쌓고 위쪽은 붉은 벽돌로 쌓은 높이 42m 원통형 다메크탑 있는 곳은 석가모니가 설교한 자리로 기원전 3세기(2300년전)아쇼카 왕사르나트에 칙령을 새긴 기둥과 사리탑, 수도원 등을 세웠다. 640년 이곳을 현장법사도 방문 했단다



이 녹야원 유적지는 1870년 영국의 한 고고학자가 발굴을 시작하였단다.

이어 가까이에 있는 사르나트 박물관으로 도보로 갔다.

휴대폰 카메라. 메모지 볼펜 등 모두 버스에 놓아두고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다.


불교유물과 힌두교 유물을 구분 진열해 놓은 것을 눈으로 담으면서 관람했다.

박물관 내가 시원하여 밖에 나오기가 싫을 정도로 날씨가 무더웠다.


1130분 버스에 올라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여유시간을 보내고 16시에 인도요가를 체험하기 위해 Wellbing 센터로 갔다.


먼저 Silk제품 매장을 들려 질이 낮은 비단제품을 돌아보고 인접한 요가센터에서 다양한 자세의 요가를 1시간 정도 땀을 흘리며 피로를 풀었다.


18시 정각 자전거 인력거(릭샤) 1대에 두 사람씩 타고 겐지스 강에서 매일 행해지는 힌두교 의식인 아르띠 뿌자 로 갔다.


겐지스 강변의 돌계단을 가트(Ghat)라 하는데, 아르띠 뿌자 행사는 이 가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다샤스와메드에서 매일 밤 열린다.

인도의 문화를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단다.


30여분 만에 도착하니 겐지스 강가로 가는 도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경적소리랑 북적이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1850분 선상에서 일몰을 감상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서 195분 화장터로 먼저 뱃머리를 돌렸다어두운데도 여러 곳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강바람을 타고 멀리서도 역겨운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이어 200m 떨어진 곳으로 돌아오니 다샤스와메드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힌두교 신도들의 아르띠 뿌자 의식이 확성기 소리에 의거 진행되고 있었다.

강위에는 수많은 유람선 위에 관광객들이 행사를 관람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장시간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화장을, 가까운 곳에서는 종교의식을 치루는 묘한 장면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삶이 무엇인지 자꾸만 되새겨 보았다.



의식행사 도중에 서둘러 관람을 끝내고 다시 릭샤(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복잡한 곳을 벗어나 2030분에 호텔에 도착했다.


2018. 710() 맑음

아침 5시에 카주라호로 향했다. 거리는 400km이지만 또 11시간 소요예정이다.

615분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 외곽으로 나오니 고층아파트 들이 있고 도로부지도 8차선 정도를 확보해 두고 있었다.


버스는 계속해 평야지대를 달리는데 도로변에는 대경목 망고나무가 숲을 이루고 망고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640분부터는 8차선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평원인데 경지정리를 하여 현대화된 농기계를 이용하면 아주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인데 40도를 오르내리는 이 무더위에 농민들이 비지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730분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 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이 자주 보였다.

825분부터는 4차선이 시원하게 뚫려 기분 좋게 달렸다.

중앙분리대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노랗고 하얀 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이 지방은 물이 부족하여 옥수수를 많이 재배한다고 했다.

큰 나무들이 대평원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사이로 손모내기 하는 모습들은 우리나라 50~60년대 농촌을 연상케 했다.


도로에는 가드 레일이 있는데도 여전히 자전거 오토바이 등이 마음대로 다녔다.

920겐지스 강 상류를 통과 하는데 날씨가 가문 탓인지 넓은 강바닥이 물보다 백사장이 넓어 보였다.


뜨거운 열기에 잘 견디고 있는 도로변 나무들은 한국에는 없는 수종이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옥수수. 감자. 바나나 등 재배지도 가끔 보이는 넓은 들이 경작지가 절대로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부럽기까지 했다.


940분부터는 차선이 없는 2차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내 WIFI가 되어 한국 소식을 찾아보는 등 카톡을 할 수 있어 여행길이 더욱 즐거웠다.


얼마를 달렸을까 1240野山3일 만에 처음으로 만나니 반가웠다.

이어 멀리 산봉우리 몇 개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름에는 여행객이 거의 없다고 했다.


외기온도가 현재 40도를 오려내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나가는 대중교통 일반버스가 에어컨이 없는지 이무더위에 창문을 열어놓고 먼지까지 둘러쓰면서 가는데 그 옛날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름드리 가로수가 늘어선 도로를 달리는 주변 들판은 반사막지대였다.

그래도 도로변 인가들이 있는 곳에는 예의 그 허름한 간이매점에서 농산물 등을 팔고 있었다.

예외 없이 이곳에도 주인 없는 소들이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1410분 멀리 반가운 산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변 주변에는 경작을 할 수 없는 모래땅이 주를 이루고 나무조차 적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

산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나라 봄을 연상케 하는 연초록 잎새들이 봄의 정취에 잠기도록 하는 풍경이 반가웠다. 그리고 이색적이라 영상으로 담아 두었었다.


1427분 버스는 산길 꼬부랑길에 들어섰다.

대형버스와 터럭들이 커버길에서는 몇 번을 전후로 움직이며 어렵게 비키면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작은 고개를 넘으니 주위의 야산들은 늦은 봄 같은 기운을 띄고, 이곳저곳에 농가들이 산재되어 있는 사이로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아늑한 들판이 나타났다.


1445분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인도는 지금 장마철이라 비가 잦다고 하더니 실감 할 수 있었다.


1510분 땅을 판 흔적이 많이 보였는데, 이곳이 다이아몬드 광산이라 했다.

다이아몬드로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했다.


7월 한여름에 연초록 수목의 향기를 음미하며 가고 있었다.

갑자기 꼬리를 감추기에 바쁜 야생 공작새를 처음 보았다.

귀한 장면이라 흥분된 기분으로 여행의 참맛을 보는 것 같았다.


자나가는 소나기인지 비는 그쳤다.

인가가 없는 곳이라 버스에서 내려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완만한 경사 길을 내려가니 하폭이 넓은 강 주변으로 인가들이 많았다.


1625카주라호(Khajuraho)의 미려한 국내선 청사를 지나기에 이색적인 디자인의 건물을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인구 27천명의 도시 카주라호에는 국내선 비행장이 있고 특급호텔이 15(인구 400만의 바라나시에는 2개뿐임.)가 있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힌두교 사원(일명 에로틱사원) 입구에는 유카리스 나무가 늘어선 대형 연꽃 연못을 따라 200m 걸어서 들어가니 힌두교 사원 매표소가 나왔다.


1986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카주라호는 가장 오래된 차우사트 요기니 사원은 9세기 말 화강암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그 외 대부분 사원 들은 10세기 후반~12세기 전반에 찬델라 왕조(950~1050)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서 중세 인도의 훌륭한 예술의 보고로 평가 받고 있다.


당초 85개 사원이 현재 22개의 사원이 남았는데 정글 속에 있었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고 지금은 순례지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의 사원은 붉은 사암(砂岩)으로 된 벽면에는 중세 인도의 많은 상(), 병사들 여인상, 성행위 등 심지어는 동물과 인간과의 성행위 등 에로틱한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남성과 여성들이 성행위 형상의 미투나(mituna) 조각상들이 많은 사원들은 힌두교의 라크슈마나, 칸다리야 마하데바, 둘라데오, 데비 자가담비, 파르수바나트 사원이 유명하다.


이시기에 이곳 교인들은 계속 남으로 피신하어 800년 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까지 지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했다.


신발을 벗고 Lakshmana 사원내로 들어가니 바닥의 돌은 윤기가 흘러내릴 정도로 반들거렸으나 내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원 밖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사원 벽에 정교하게 새겨진 미투나(남녀 성행위)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조각상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사원마다 돌아가면서 설명을 듣고 현장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놀랄 정도로 섬세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Kandariya Mahadeva 사원(시바신 사원 = 남성의 상징과) 나란히 옆에 붙어 있는 부인의 사원(여자의 상징)을 돌아보았다.


1835분 관람을 끝내고 가까이에 있는 자이나교(Jainism) 사원으로 갔다.

자이나교(Jainism) 사원인 대표적 건물인 아디나타 사원1466년부터 50년 이상 걸쳐 완성하였는데 아름다운 조각(에로틱 한 것은 없음)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는 마하비라(본명은 바르다르마나)이란다.

이곳의 스님들(남자)는 나체 생활을 하면서 수도생활을 한다고 했다.

사원입구의 벽에 붙어있는 스님들의 대형 사진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하루에 아침 한 끼로 하루 기도를 시작하는데 그것조차 땅속에서 생산되는 것(감자. 고구마 땅콩 등) 은 먹지 않고 지상의 열매만 먹는다고 했다.

물론 고기. 생선. 심지어는 계란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참으로 힘든 수도생활을 하는 특이한 종교였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서둘러 버스에 올라 가까이에 있는 GOLDEN TULIP 호텔로 돌아와 식사 후 101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8711() 흐림

8시에 호텔을 나와 카주라호 역으로 향했다.

카주라호 주변은 산이 없었고 멀리 희미한 야산이 대평원 끝에 보일락 말락 있을 뿐이었다.


무더위 속에 역 대합실에 기다렸다가 920분 정시에 출발하는 특급열차 16(1량당 70인석) B1 열차 칸에 올랐다

덜컹거리며 대평원을 다리는데 냉방이 잘되어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차창 밖으로 연초록 물결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간혹 야산 봉우리가 보이긴 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대평원은 나그네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경작지는 아직 붉은 속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雨期가 지나면 밭작물 옥수수 등을 파종 할 것이라 했다.

가끔 풀이 있는 곳은 가축 들(. 염소)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사탕수수 재배지도 자주 보였다. 점심은 준비된 도시락으로 즐겁게 먹었다.

1320분 얕은 야산들이 자주 나타났는데 어떤 때는 아름다운 바위산들이 아름다운 풍광의 고운 자태를 흘리고 있었다.


인구 300만 명의 잔시 인도북부의 교통 요충지를 지났는데, 이곳에서 인도의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했다.


談笑 속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예정 시간 보다 40여분 연착된 19시에 아그라 역에 도착했다. 총소요시간은 9시간 40분이였다.


아그라(Agra)는 인도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다.

아그라 시 면적은 87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80만 명으로 1526년부터 1658년까지 무굴 제국의 수도였다.


아그라 시내는 쓰레기가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상점들의 네온불도 화려하고 주민들 표정도 밝아 보였다.


승용차들도 많이 다니는 등 시내가 활기차 보였다.

2020GOLDEN IMPERIAL 호텔 111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8712() 맑음

아침 630분에 호텔을 나와 타지마할(Taj Mahal)로 향했다.

소요 시간은 30분 정도이다.


시가지에 고층건물을 짓는 것이 자주 보이고 4거리마다 대형 홍보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거리는 아름드리 가로수가 짙은 그늘을 만들아 열기를 식혀 주고 있었다.

전원도시 같이 아름다워 기분이 좋았다.


지난밤 간선도로와는 달리 뒷골목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쓰레기 천지였다.

7시 정각에 타지마할(Taj Mahal)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는 전동미니버스로 3~4분 들어갔다.

표를 구입하면서 타지마할 내부 입장 시에 필요한 덧신과 시원한 물병도 하나씩 받았다.


검문검색이 철저했다. 필기구와 노트. 심지어는 사탕도 압수당했다.

그럴수록 타지마할에 대한 궁금증은 높았다.


입구에서부터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갔다.

타지(Taj)는 왕관, 마할(Mahal)은 궁전이란 뜻이라 했다.


1983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입문에 들어서자 눈부신 타지마할의 황홀한 자태가 긴 수로 끝에 나타났다.



건축미의 불가사의라 일컬어지는 타지마할악바르(Akbar) 대제의 손자 무굴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帝位기간1628 ~1658) 왕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흰 대리석 조각예술의 극치이다.


타지마할 건설을 위해 전 세계에서 건축도안을 제출받아 터키 출신 우스타드이사아환디(Ustad Isa Afandi)의 작품으로 채택 시작했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정문을 통해 들어가니 타지마할 건물이 중앙의 300m나 되는 대리석 수로를 중심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좌우로 사이프러스 나무 등으로 아름다운 조경을 해두었다.


무더위 속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다.

타지마할 본 건물로 다가가면서 수로의 중앙에 타지마할의 중앙 돔이 비치는 영상 등 부지런히 신비의 건물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야무나 강(Yamuna River)의 우편 기슭에 위치하는 타지마할(Taj Mahal)1632년 시작하여 22년이나 걸렸다.


투여된 총 공사비만 약 3,200만 루피가 들어갔고 타지마할 건설을 위해 건축가 기술자와 인부 등 매일 2만 명의 인원을 22년간 동원했다.

또 대리석 운반을 위해 1000마리의 코끼리도 동원했다고 한다.


덧신을 신고 펜스를 따라 긴 거리를 돌아 타지마할 본 건물 내로 들어갔다.

높이가 78미터나 되는 타지마할의 내부 1층 중심의 돔 아래 중앙에 있는 8각형 방책 안에 조명이 없어도 잘 보이는 아름다운 장식을 한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 있고 그리고 그 우측 약간 높은 곳에 샤 자한의 무덤이 나란히 남북으로 놓여 있다.


진짜 무덤은 지하층에 똑같은 위치에 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다고 했다.

내부 벽면은 대리석 바탕에 연꽃 등 여러 가지 꽃문양에다 진주, 산호 사파이어. 수정. 옥과 루비 등의 온갖 보석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이라 한다.


관광 안내 길을 따라 묘궁의 뒤로 나오니 은빛을 뿌리는 야무나 강(Yamuna River)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타지마할을 지을 때 인의 적으로 물길을 바꾸었다고 했다.


타지미할 동서남북 방향에 세워진 4개의 50m미나레트 탑이 사방에서 중심의 묘궁을 받치는 느낌 때문에 타지마할이 더욱 웅장하게 보이는 것이라 했다.


멀리서 자세히 보면 이 탑 4개가 피사의 사탑처럼 바깥쪽으로 조금씩 휘어져 있단다.

지진으로 높은 미나레트 탑이 무너져도 중심의 묘궁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일부러 밖으로 기울어지도록 제작했다 한다.


섬세한 각종보석의 장식과 미려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무덤 타지마할을 무더위 속에 둘러보고 출입구로 나와 920아그라(Agra)으로 향했다.


15여분 지나 도착한 아그라 성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이 시선을 압도했다. 일명 붉은 성으로 불리고 있다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마할과 마주 보고 있는 이 아그라성은 악바르(Akbar帝位기간1556~1605)대제의 통치기간에 요새를 구축함으로서 가장 강대하고 부유한 왕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샤 자한(Shah Jahan) 왕 때 재건축되었다



철저한 검문검색을 거쳐 들어가니 100m나 되어 보이는 직선 통로는 외부인이 들어올 때 소리로 알리는 공명의 기능이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의 지혜가 놀라웠다.

박수를 쳐보니 크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신기했다.


아그라 성의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아그라 포트는 높이 20m, 길이 3km의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인데 90년이나 걸려 준공했단다.


성벽 사이에 해자가 설치되어 있는 아그라 성은 지금도 전체의 60%가 군인 경찰이 사용하고 있지만. 40%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이라 했다

.

견고한 외부와 달리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정원과 분수대가 어우러진 아그라 포트의 내부는 아름답고 화려했다.

돌을 나무처럼 섬세한 조각으로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한 건물들이 정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곳도 이거대한 건물전체가 나무 조각 하나 없이 전부 순수한 붉은 돌로서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뜰 중앙에 꽃모양의 멋진 분수의 지하 조형물. 부엌시설, 손님대기실 등 순서대로 둘러보고 사자한 왕이 자신의 친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반란에 의거 유폐되어 있던 곳으로 갔다.


1637년에 흰 대리석으로 건설 하였는데 2개의 접견실은 강을 바라보고 있다.

기둥과 아치에는 색깔 있는 꽃무늬로 장식 하였고 일부 지붕은 금색으로 장식했다.


이곳 아그라 포트 (Agra Port)무사만 버즈(Musamman Burj) 8각형 탑에서 보면 야무나 강(Yamuna River) 건너편 2km 떨어진 곳에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멀리보이는 타지마할에 있는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샤 자한(Shah Jahan)8년을 유폐생활을 끝으로 그의 사라하는 딸 자한 아라(Jahan Ara)의 무릎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건물의 기둥 벽면 등 곳곳의 화려한 장식등을 보면서 인생의 짧은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아그라 성을 나왔다.


1010분 가까이에 있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둘러보고 115자이푸르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6시간 30분이다.


아그라 시가지는 동남아처럼 오토바이들이 많았다.

시가지를 벗어나 가로수가 욱어진 2차선을 시원하게 달렸다.

들판은 밀 재배가 끝나고 아직은 기장과 옥수수 재배를 위해 그대로 있었다.


1145바랏들이라는 지역을 지날 때는 4차선 고속도로인데도 한 차선은 오토바이가 집중적으로 달리고 있어 이색적이었다.


12시에 시원한 야자수 그늘 속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면서 더위를 식혔다.

13시 경 4차선 고속도로변은 감자. 사탕수수 등이 파랗게 들판을 뒤덮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수시로 수고가 높은 유카리스 나무가 수벽을 이루고 중앙분리대에는 유도화와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시선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어떤 곳은 붉은 벽돌이 쌓여있는 벽돌공장 굴뚝이 20여개가 집중으로 밀집한 곳을 지나기도 했다.


1420분 야산이 처음으로 보일 무렵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기가 내려 더위를 식혀 주었다.

그리고 비는 그치고 버스는 다시 대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1640분경 도로변은 모든 경작지가 풍성한 녹색물결을 이루고 있어 한결 기분이 좋았다.


또 도로변에는 분홍색 석재()로 다양한 형태의 석물을 집단적으로 만드는 곳을 지나는데, 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이라 부지런히 동영상으로 담아냈다.

작품들이 대형이고 아름다워 어떻게 운반 할지 궁금했다.


153라지스탄아바네리라는 지방에 있는 계단식 우물 관광지에 도착했다.

주차장 부근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많은 상점들이 있었다.


먼저 석축의 바탕위에 둥근 돔으로 이루어진 사원을 영상으로 담고 골목길을 지나 계단식 우물인 찬드 바오리(Chand Baori Abaneri) 안내 간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우선 우물의 큰 규모 그 웅장함에 절로 탄성이 터졌다.


9세기 경 물이 부족하여 니쿰바(Nikumbha)왕조의 찬다(Chand)왕이 공동우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 규모는 사방 50m 정사각형에 깊이 20m, 물깊이 10m(바닥까지 30m) 이고 계단이 미로처럼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깔 데기 모양의 19층에 3500개의 정교한 계단이 기막히게 만들어 두었다.



어떻게 이렇게 대규모의 아름다운 우물 계단을 1200년 전에 만들었을까.

아무리 보아도 정말 멋진 우물이었다.


이슬람 인들이 들어와 파괴한 것을 19세기에 발굴 복원할 때 묻혀있던 정교하게 양각으로 조각한 유물의 조각들을 우물을 중심으로 빙 둘러있는 긴 회랑에 전시해 두어 감탄 속에 둘러보았다.



관광을 끝내고 1530자이푸르로 향했다.

1650분 멀리 도로를 가로막는 야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가 무리지어 다니는 고속도로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야산에 약 300m나 되어 보이는 조명이 다소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을 지나자 옛날 라자스탄 수도였던 해발 400m에 위치한 자이푸르 도시가 나왔다.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이 정비된 상공업 중심지로 18세기에 건설된 계획도시이다.

중심지에는 거리 전체가 분홍색이라분홍 도시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1728년에 암베르의 통치자인 자이 싱 2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면적 484.6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00만 명의 큰 도시가 되었다.

낙타 코끼리 등이 많단다.


농사가 잘 안되어 카펫 공장과 대리석 등 석재가공품과 미술공예. 보석 등으로 유명하고 그밖에 관광 사업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인데도 시내버스는 에어컨이 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승객이 만원이었다.

시장에는 이 무더위에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린 이슬람 여인들이 많이 다니는데 참 신기해 보였다.


1740분 일몰을 보기 위해 나하가르 성(Naharga Fort) 전망대로 가는 지프차로 갈아탔다.

사라자이싱 2에 지어지고 1880년대에 보수한 나하가르 성호랑이의 거처'라는 뜻이란다.


암베르 성자이가르 성과 같이 자이푸르를 방어하는 요새로 이용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전망대로 오르는 지프차는 상당히 낡았지만 스마트폰으로 선곡을 하여 경쾌한 현지음악을 들려주는데 기분이 좋았다.


꼬부랑 산길을 20여분 올라 암반위에 조성된 방어성벽이 있는 정상에 185분에 도착했다.

좁은 길에 많은 차들이 다녔지만 정상에도 승용차들이 많았다.


전망대에서 아쉽게도 구름이 많아 일몰은 보지 못하고 인도 전통주 람주(40도 고량주 )를 마시면서

산 능선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아기자기한 나하가르 성자이푸르 시내 전경을 영상으로 담았다.

곳곳에 고층건물이 있는 자이푸르 시내는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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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할 무렵 비가 내렸다.

빗물로 얼룩진 네온불이 흘러내리는 거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저녁식사 후 RED FOH 호텔 430호에 투숙했다.


2018SUS 713() 맑음

아침 730분 호텔을 나와 조경이 잘되어 아름다운 왕복 6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다자스탄 대학 앞을 지나기도 했다.


얼마 후 1728사와이 자이 싱 2(Sawai Jai Singh II)가 계획 조성한 사각형 모양의 도시로 4차선 도로 좌우로 3~4층의 건물들이 온통 분홍색인 핑크시티에 도착했다.


핑크 시티 중앙에 위치한 1799년에 지어진 바람의 궁전으로 불리 우는 하와마할(Hawa Mahal) 자이푸르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이푸르의 지배자였던 사와이 프라타프 싱(Sawai Pratap Singh)케트리마할(Khetri Mahal)로부터 영감을 받아 건설했단다.


와마할(Hawa Mahal) 9명의 애인을 위해 만든 5층 높이에 건물이다.

벌집 모양의 작은 창문이 953개나 되고 60개의 방을 만들었는데. 이는 당시 봉건사회에서 외부 출입을 엄격히 통제받는 왕가 여인들이 서민들의 생활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했고 창문이 워낙 많아 내부로 통풍이 매우 잘 된다 하여 일명 '바람의 궁전'이라고도 불렀다.



아쉽게도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바람의 궁전자이푸르의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건물 외관만 영상으로 담고 820분 자리푸르에서 11km 떨어진 암베르 성(Amber Fort)으로 향했다.


8502차선 꼬부랑길을 지프차로 올라갔다.

주위의 이름 모를 수목들의 부드러운 연초록 잎새들이 마음을 한결 푸근하게 했다.

주위의 산 능선 따라 30km 성벽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좁은 주차장에는 이미 차량들이 많이 와 있었다.

집요한 잡상인들과 함께 성 입구부터 상당히 복잡했다.


우리 일행은 성의 서쪽으로 들어가는 문은 달의 문(Chand Pole)’이라 하여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으로 제 1광장에 도착했다.


반대편 성의 동쪽에 코끼리를 타고 들어오는 문은 태양의 문(Suraj Pole)’은 옛날 왕이 출입하는 문이라 했다. 관광객을 태우는 코끼리가 120마리나 된다고 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지프차로 올라온 것이다.


하늘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암베르 성(Amber Fort)은 바위산 기슭에 세워진 1037년부터 1726년까지 700년 동안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옛 수도였다.


일명 자이푸르의 만리장성이라 할 정도로 산 능선마다 늘어서 있는 성벽은 1592라자만 싱1(Rair man Singh) 가 시작하여 1727년 때 그 후손 스와이자이 싱 1(Sawai jai Singh) 완공했단다.

201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이드와 함께 하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주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넓은 광장에는 화려한 치장을 한 코끼리 여러 마리가 광장을 돌고 있었다.


광장 주위의 건물과 산 능선으로 뻗어있는 성벽들을 영상으로 담고 성의 두 번째 광장으로 올라갔다.


광장 가운데에 위치한 흰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왕의 공식 접견 장 디와니암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맞은 편 가네쉬 폴( Ganesh pol) 코끼리 문을 지나면 왕의 개인 공간이 나온다.



출입문 좌우 벽면과 천정에 있는 순금과 보석으로 만든 아름다운 문양 등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있는 검고 육중한 철문을 닫을 때 내는 코끼리 울음소리가 참으로 신기 했다.


그리고 문을 들어서면 무굴식 정원승리의 홀이 나왔다.

승리의 홀 안에 있는 쉬시 마할(Sheesh mahal) 거울궁전으로 갔다.


왕과 왕비의 침실로 이용한 곳으로 벽과 천정에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와 다양한 보석으로 만든 벽화 수많은 유리조각 등으로 눈부시게 장식을 해두었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찬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벽에 있는 액자 같은 거울에 역으로 비친 얼굴을 촬영을 했는데 마치 벽의 액자를 통해 밖을 내다보는 것 같은 영상을 모두들 기념으로 한 장씩 남겼다.

가이드가 촬영한 거울속 사진. 마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것 같음


3층 전망대로 올라가 한 장의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든 섬세하고 정교한 격자창문을 통하여 아래로 내려다보니 멀리는 마오다(Moatha) 호수와 그 가운데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 옛날 궁전의 화려한 생활상을 이곳저곳 미로 같은 통로를 다니면서 둘러보았다.

미끄럼 방지를 한 3층을 계단 없이 오르내리는 곳을 지나왔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암베르 성 관광을 끝내고 1020분 버스에 올랐다.

1035분 넓은 만 사가르(Man sagar)호수 중앙에 덩그러니 떠있는 물의 궁전18세기에 왕의 여름 별장으로 지은 5층 구조인데, 현재 보이는 것은 4~5층뿐이다.



잠시 차에서 내려 영상으로 담고, 시내에 있는 잔다르 만타르 (Jantar Mantar)천문대로 향했다.

도중에 헤니 문신을 하는 곳에서 희망자에 한해 자기 취향에 맞는 문신들을 했다.


11318세기에 조성한 잔다르 만타르 (Jantar Mantar)천문대에 도착했다.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는 유명한 관측기구 가운데 대표적인 석조 건축물이다.


눈으로 天體를 관찰할 수 있게 설계한 잔타르 만타르대형 해시계와 원형으로 판 구덩이에 만든 별자리 시계 등 시설물들을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았다.

그 예날 인류의 천문에 관한 지식을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았다.



이어 가까이에 있는 인도 보석상의 제조과정과 생산품 판매장을 둘러보고 지난 밤 투숙했던 호텔로 가서 중식을 하고 14 뉴델리로 향했다.


자이푸르 부근에 있는 야산은 곳곳에 산림훼손이 많이 되어 있어도 복구치 않고 흉물스럽게 방치하고 있었다.

뉴델리 까지는 260km, 6시간 소요예정이다.


15시 현재 4차선 도로변에는 정원이 잘 조성된 미려한 호텔들이 자주 보였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산에는 수목이 빈약하여 다소 황량한 느낌도 들었다.

대형 야립 간판들이 자주 보였는데 호텔 선전 간판이 많았다.


뉴델리로 가는 차량 80~90%가 대형 터럭인데 산업 물동량이 많은 것 같았다.

그르나 인도 어디를 가나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쓰레기가 늘려 있었다.

16시 현재 왕복 6차선을 달리고 있다.


푸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평야지를 지나는데 멀리 희끄무레한 산들이 우리와 동행을 하고 있었다.

경작지에는 작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풍성한 기분이 들었다.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헬멧도 쓰지 않았거나 심지어는 3사람이 타고 달리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도 자주 보였다.


또 도로변 차선 하나는 대형터럭들이 곳곳에 정차를 하는 등 교통사고 유발 요인이 많아 필자가 탄 버스는 곡예운전을 하고 있었다.


1650분 먹구름이 밀려 오드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속으로 달리는 것이 사고가 날까 바 상당히 염려스러웠다.


19시에는 비가 그치고 석양의 저녁노을이 지평선으로 기울며 아름다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1930분부터는 어둠이 내려앉는 고속도로 주변의 긴 능선을 이루는 산들은 수목이 울창해서 보기 좋았다.


간혹 큰 건물들도 보이고 작물을 재배하는 경작지도 있었다.

1940 뉴델리 시내에 들어섰다. 주변에 15~20층의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보였다.

갑자기 터럭은 어디로 가고 승용차들이 늘어나면서 교통체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옅어지는 저녁노을이 역광으로 비치는 고층 건물들이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고 있었다.

시가지가 어둠에 잠기면서부터 왕복 16차선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운동장 같은 넓은 도로가 차량으로 꽉 차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필자가 탄 버스는 다행히 도중에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21시에 식당에 도착 식사 후 가까운 호텔에는 22시가 지나서 도착했다.

ASHOK COUNTRY RESORT 호텔 215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8714() 흐림

아침 9시에 호텔을 나와 간디(Gandhi =1869.10.2. ~ 1948.1.30)의 화장터로 향했다.

고가도로를 지나는데 처음으로 청소차를 대기시켜놓고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


좌측으로는 숲속에 높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고 우측으로는 주택 밀집 지역의 뉴델리시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승용차들이 많이 다녔다.


930분 수 백년이나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는 4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살짝 온 뒤라 싱그러운 나무 잎들이 맑은 물기를 머금고 있어 한결 시원해 보였다.


버스는 도로변 전 구간을 정원수로 조경을 잘해둔 숲속 길을 계속 달리고 있었다.

인구 2200만 명, 자동차 900만대의 뉴델리(New Delhi) 시내에 이런 조용한 곳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955분 복잡한 4거리를 지나갈 때 좌측 대형 건물에 간디(Gandhi)의 초상화가 보였다.

옛 왕조 터를 지나 10시에 간디의 화장터 입구 라지가트(Raj Ghat)에 도착했다.


검문검색을 거처 들어가니 유카리스 등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간디의 추모공원이 나왔다.

다시 한참을 걸어 잔디 조성이 잘된 언덕(?)을 이루는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화장터를 가기 위해서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야 했다.


정사각형 높은 벽을 쌓아 조성한 화장터 내부도 상당히 넓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맨발의 촉감이 좋았다. 잔디밭 정 가운데에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대형 烏石 위에는 5개의 화환이 있었고 그 뒤로 꺼지지 않는 영원의 가스불이 타고 있었다.



워싱턴 시 포토맥 강 건너 버지니아주 쪽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케네디 묘의 검은 돌에 가스불이 활활 타는 것과는 비교해 조금은 초라해 보였다.

화장터 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사방으로 출입문이 있었다.


194813079세의 나이로 암살을 당한 간디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암살 다음날인 131야무나 강남 쪽인 이곳 라지가트에서 화장되어 갠지스 강에 뿌려졌다.


간디는 인도의 국부(國父)로서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로서 영적, 정신적 지도자이며 비폭력 주의자이다.

인도에서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5루피부터 2000루피까지 이르는 인도의 모든 지폐에는 전부 간디의 초상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1054분 나눔을 실천 한다는 사원 시크교(Sikhism) 사원으로 갔다.

시크교(Sikhism)는 이슬람과 힌두교가 섞인 종교로 15세기에 창립되었단다. 둥그렇게 칭칭 두른 터번은 바로 시크교도의 상징이란다.


1889년에 설립된 거대한 대리석 출입문 위에는 작은 돔 5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리고 대리석은 섬세하고도 정교한 색상의 아름다운 꽃으로 문양을 새겨 두었다.


가이드를 따라 휴게실에 가서 신과 양말을 벗고 비치된 수건처럼 머리카락을 감싸고 출입을 해야 했다.

무더위에도 신도들과 관광객들로 무척 붐비고 있었다.

돌계단을 올라가서 사원 입구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아름다운 사원외관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사원 내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현란한 대형 상들리애와 기둥과 벽 천정을 순금으로 장식한 사원 내부는 눈요기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많은 신도들이 부복자세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풀장이 나타났는데 대형 풀장주위로도 사람들이 많았다.

발길 닿는 곳은 전부 대리석으로 포장이 되어 있어 더운 날씨이지만 맨발에 닿는 촉감이 좋아 잉어들이 유영하는 풀장 주위 긴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풀장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처럼 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나오면서 나누어주는 갈색의 떡 같은 것을 두 손으로 받아 달콤한 맛을 보기도 했다.


1210분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 주변으로 있는 대통령궁. 정부청사. 원형의 큰 건물인 국회의사당 등을 차장으로 둘러보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위령탑 인디아게이트(India Gate 일명 인도의 문)로 갔다.



1931년 인도 군인 약 85천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높이 42m의 아치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인도 병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도 방문객들과 상인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인도의문을 영상으로 담고 1310분 백화점 내 있는 무굴전통식당으로 향했다.

도중에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천을 씌운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택시라는 택시들이 많이 보였다.

교통정체가 심했다. 대형버스는 통제를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뉴델리에서 가장 큰 백화점 앞에서 내려 긴 회랑을 따라 백화점 출입구를 찾아 갔다.

백화점을 들어가는데도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무한 리필로 제공되는 무굴전통식으로 포식을 하고 냉방이 잘되어있는 백화점 내를 둘러보았다.

따가운 햇살 무더위를 피해 모두 백화점으로 들어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었다.


17시 까지 머물다가 10여분 거리에 있는 199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승전탑 꾸뜹미나르(Qutab Minar) 로 갔다.


12세기 델리를 정복한 꾸뜹 옷 딘 에이백 ( Qutab Ud din aibak) 이 세운 높이 72.5m , 지름은 1층은 15m 이고, 5층은 2.4m의 승전 기념탑이다.


1193년 건설 당시에는 4층이었는데 그 후 보강하여 현재는 5층이다.

우리나라의 거대한 굴뚝을 연상케 하는 형상에 다양한 모양으로 미려하게 쌓아 올렸다.



1층 외벽에는 정교한 코란 구절이 다양한 문양과 함께 알록달록한 석제에 새겼는데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꾸뜹미나르”(Qutab Minar) 가 있는 유적지 광장에는 넓은 면적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기둥과 벽만 남은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었다.


다리가 아프도록 둘러보고 19시에 저녁식사를 위해 시내로 향했다.

인도는 산이 25%이고 평야지가 75%라 하는데, 지금은 비록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로 보였다.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녁노을이 지는 뉴델리 시가지 풍경을 보면서 네온이 쏟아지는 화려한 건물들이 있는 곳에서 내려 교민이 경영하는 서울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한 후 뉴델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 715150분 아시아나 768편으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7시간 15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야경의 뉴델리는 상당히 넓어 보였다.

20187159) 맑음

7151230분 여객기는 서해안 내륙을 따라 인천공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산들과 반듯하게 경지정리 된 논에 짙푸른 녹색으로 자라는 벼들이 정겹게 우리들을 반겨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연착되었지만 1310분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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