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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바다
2019-07-31 04:41:54
KGI8561

■ 김근이 시인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1941)
△《문학공간》 시(2006) 《문학미디어》 수필(2008)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시인연대 회원
△시집 『찔레꽃 피는 날과 바람 부는 날』, 『동행』, 『허수아비』
조회:99
추천:1

             달빛 바다

내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내 마음은 온통 불안과, 이유 없는 분노로 뭉쳐져 있었다. 도대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른 시절 나는 밤이면 바다에 내려 깔리는 달빛 풍경에 마음을 의지 하면서 보냈다. 그때, 달빛 비치는 바다는 내게는 한 소녀의 사랑만큼이나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고 나의 마음을 안정 시켜 주었다.

나는 달이 뜨는 밤이면 바닷가로 내려와 하염없이 바다를 내다보며 비관에 찬 마음을 달랬다.

호수처럼 잠드는 봄 바다에 내리는 달빛이 열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위로 해안을 따라 눈썹처럼 자리 잡은 초가지붕들의 은은한 그림자와 어우러지면서 수면위로 둥둥 떠가는 그 풍광은 글로서는 그려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뜻한 바닷물 온도와 아직은 차가운 바람에 낮은 공기와 만나면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달빛에 어리면서 빚어내는 은은한 빛깔로 그려내는 묘한 풍경은 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자연의 선물이라 하겠다.

그기에 다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골자기 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바닷가에 까지 내려 올 때면, 그 황홀함이야 말로 지금도 선 하게 귓가에 맴돌아 가슴속 깊이 젖어 세월 속에 묻어 버린 그때의 고향 풍경을 한없이 그립게 한다.

그 뿐이랴! 어쩌다 들려오는 물새들의 밤 울음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애틋하게도 내 마음을 서럽게 해주었다.

나는 이러한 풍경 속에서 갈 바 없이 해매이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사 주던 소녀의 정성어린 사랑을, 조금 식 열려가는 내 마음에 시혼(詩魂)으로 받아 드린 듯싶다.

안개처럼 내려 덮이면서

즐겁게 또 슬프게

언제나 먼 곳까지

어스름히 넘겨다보여라

숨이 차 허덕이면서도

가슴은 시원 하다고

먼 곳 가차 운 곳 없이

모두 쓰다듬어 만주어라

밤새도 울지언정

() 깊어 하려니

무엇이든 가져만 오라고

무엇이든 가져만 가라고.

달밤전문(1시집 찔레꽃 피는 날과 바람 부는 날)수록

이 시는 내가 십 칠세 때 쓴 시다.

내가 이 시를 쓸 무렵 나는 한 소녀에게 내 외로운 마음을 의지하고 있었다.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해어나지 못하고 허우 적 그리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무엇이던 가져만 오라고/ 무엇이던 가져만 가라며> 가슴을 열어놓고 나를 안아주던 한소녀의 마음을 달빛에 비유하여 쓴 시다.

짧은 세월에 소녀가 주고 간 깊은 사랑은 오랜 세월동안 내 마음을 다독 이면서 나에게 많은 영감(靈感)을 주었다.

소녀가 떠나간 마음속에 소녀와 함께 바라보던 달빛바다의 풍경을 묻어놓고, 나는 오랜 세월 바다에 내리는 달빛과 소녀가 남겨준 그리움이란 화초를 가슴에 심어놓고 시혼(詩魂)으로 가꾸어왔다.

사늘한 봄밤에 물안개 피어나는 해안가에 내리는 달빛을 밟으며, 나는 수만은 대화를 달빛내리는 바다와 주고받았다. 그 시절 전기가 없든 마을에 달이 뜨면서 암흑 속 같은 어둠으로부터 간신히 달빛 속으로 그 모습을 덜어내는 마을은, 어쩌면 바다 속에서 떠오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그 풍경이야 말로 자연 속에 깊이 감추어진 귀하고 갑 진 한 폭의 그림 이었고, 지금도 소녀의 영혼과 함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되어 나로 하여금 순간순간 영원히 갈수 없는, 먼 곳에 두고 온 고향의 향수처럼, 마음이 울적 할 때마다 가슴을 헤집고 한 가닥 빛처럼 나를 깨워주는 가장 보배로운 내 옛 고향의 향수로 내 가슴속에 묻혀 있다.

바닷가에 홀로 안자 달빛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가슴속에 잠겨있던 외로움이 목 구명으로 꾸역꾸역 울음처럼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달빛 비치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외로움에 울기도 많이 했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달빛 바다에 나 자신을 송두리 체 던져 놓았고, 달빛 바다는 그러한 나를 포근하게 감사 안고 키워 주었든 것 같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이면 바람을 타고 파란 은광을 일으키며 해안 모래밭위에 길게 밀려드는 은빛 파도는, 은은한 은광을 모래위에 곱게 밀어 올리면서 한적한 어촌마을의 밤을 수놓았다. 파도가 뿌려 놓은 은빛 가루를 밟으며 파도의 작은 음률에 귀를 주면서 길게 누운 해안을 따라 거닐든 낭만도, 언제 부터인가 전기 불에 밀려나면서 하얀 이빨을 내 밀며 밀려드는 파도가 해안의 적막한 밤을 채워갔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낭만의 풍경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에 방범등이 들어서면서, 달빛은 전깃불에 밀려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때 풍경은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한 옛날이야기로 점점 내마음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보배로운 추억으로만 남았다.

내가 어부가 되어 바다로 나가기 시작 하면서 부터는 가냘픈 새벽달과 인연을 매졌다. 새벽달빛아래 깨어나는 바다는 신비롭고 가슴 벅차게,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의 마음에 신앙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달빛 바다는 나의 사춘기 시절부터 깊이 있게 내마음속에 파고 들었고, 그로 인해 내 시()속에 큰 비중으로 자리 잡아왔다.

변해가는 시대의 변천 속에 밀려온 백발의 인생은, 까마득하게 지나간 그때 그 아름답고 슬프든 풍광이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세월이 유수 같다 했든가! 그 유수 같은 세월에 실려 오면서 마음속에 지니고 살았든 달빛 바다의 그 풍경!

우리 인간의 삶이 자연이 주는 정감에서 안타깝게도 날로 멀어져 가고 있음이 아쉬워, 나는 소녀와 함께 바라보던 밤안개 퍼져가든 달빛 바다를, 숨이 차 허덕이며 해매이던 수많은 밤들을 보석처럼 가슴에 품고 달빛이란 시속에 그 혼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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