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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선물-7[박찬현]
2009-01-18 17: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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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현 시인
△《문예사조》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한국본부, 서대문·은평문인협회 회원
△대전 백지동인. 청다한민족협회 간사
△시집『먼나라』, 『종이강』
△지방문화재 노씨문중 의병 영정, 천주섭리수녀원 성화 제작. 불우이웃돕기 갤러리 30점 기증. 와우갤러리 작품 등재
조회:1503
추천:96

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희뿌연 새벽 공기를 입고 층계를 걸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왠지 갑갑했다. 아직 석유 냄새가 휘발 되지 않은 조간신문과 우유가 놓여 진 것들을 들고서 현관문 안에 들어섰다. 숨 막히듯 적막함이 우르르 몰려나와 수진에게 엉겨 붙었다. 열쇠를 신발장 위로 던져 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 냉수를 꺼내서 그냥 병 채로 들이켰다. 빈 병을 식탁 위에 내려 두고 외투를 짐 벗듯이 벗어서 소파위에 흘려둔 채 침대위로 널브러져 얼굴을 베개에 묻고 가만히 정적을 만진다.

고요하다.

부드럽다. 유년의 등이 불거진 소녀가 머리 올을 쓸어 넘길 때 격자문 창호지 그림자가 햇볕에 드리우듯 그녀의 손가락 에 걸쳐진 빛, 그것은 아름다운 햇살 반지였다. 그 하얀 손을 만질 때 느낀 부드러움, 바로 그 감촉 이였다.

수진은 평온함을 느꼈다. 알 수 없는 포근한 품안 같은 것......,

그리고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가능하면 기억 해내지 않으려던 그 낡은 기억이 성큼 성큼 수진의 뇌 속을 흔들어 깨웠다.

 

여고시절 이웃 남자고등학교에 다니던 수진의 첫 연인 ‘신 정우’-, 그는 집안 사정이 불우한 관계로 국립인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했고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수진은 미술학과를 지원해 자신이 추구하던 그림을 그려왔고, 그리고 아무런 일들 없이 방학이 되면 만나고 했었다. 처음 시작은 아주 미미한 것 들이였으나 세월이 누적됨으로써 상호간 특별한 약조는 없어도 그냥 그렇게 먼 날 까지 함께 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정우는 공군사관생도 졸업식에서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군 복무를 임하면서도 그는 곧장 경제학 석사학위까지 이수했으며 급기야 MIT대학을 국비로 입학하여 유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그는 장관급 집안의 여식과 혼인을 했었다. 정우에겐 그야말로 고삐를 놓지 않고 달려 간 결과였었다.

그에 비해 수진은 특별한 욕망도 없었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또 조용히 살면서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전임강사로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수진은 또한 그것이 그녀로서는 무난한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수진은 정우가 달구어진 야망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는 것을 특별하게 제지 할 의사도 없었고 그저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그 결론을 서로 축복하며 맞이 하리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결론을 함께 축복하고 기쁨을 나누기에는 서로 너무 다른 각도의 길에 서 있었음이다. 수진은 그 아픔이 그 옛날 마님이 겪던 아픔에는 비길 바가 못 되지만 배신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겪는 깊은 상처였었다.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도 않았고 했기에 머리를 싸 메고 드러누울 만큼의 소용돌이는 없었다. 수진은 그저 가슴 한구석이 못내 아프긴 했어도 한편으로는 담담했었다. 가끔씩 그저 혼자서 살아갈 생각을 해 오던 차였기에 커다란 충격의 타격은 없었다. 단지 말을 자꾸만 잊어가고 입을 굳게 다물게 되는 일상이 주가 되어가고 있을 뿐 이였다. 수진은 그것을 감내 할 여력이 충분히 있었다. 자라 온 성장과정이 그녀를 웃지 않게 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님’과 ‘어머니’그리고‘수빈’그들이 수진의 마음속에 삶이란 것에 관하여 단단한 초석으로 다져진 것이다. 늘 지나간 세월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마도 그녀의 일과 중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어머니가 남기고 간 그 *‘판도라의 상자’, 그것은 눈길을 주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은연중에 사뭇 떠 올리게 하는 물건 이였다.

정우는 자신의 날개를 적절히 펼쳐서 목표지를 비행해 날아갔을 뿐이라는 생각이였다. 그리고 수진은 남녀 간의 사랑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않게 되었으며 그저 유년과 현실사이를 오가며 삶을 연장하고 있을 뿐 이였다.

남여의 사랑이란 그저 카테고리 일 뿐, 또 그 판도라의 상자를 의식하면 결코 사랑은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카오스일 뿐 이였다. 더러는 정의로운 사랑도 모순 속 은닉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아가페적인 사랑도 산부인과에서 탯줄 째 버려지는 낙태라는 행위가 아이러니다.

안채와 아래채 사이 갈등의 담을 쌓던 그것은 동판을 부식시키는 염산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더욱이 사랑은 유희의 조작이며 인간을 썩히는 유해물질과 같은 맥락으로 간주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더러 수진은 전시회를 하곤 했었다. 아마도 수진에게 있어서 전시회 준비는 설레임의 시간들이다. 그 전시회가 막을 내리면 한동안 우울증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같은 학교 건축학과교수인 민혁과 술잔을 나누길 자주했고 또 그는 수진의 작품 속에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허울 좋은 지식이라며 미학을 화두거리로 명분 삼아 만남의 시간들이 종종 이어 갔다. 수진은 외로움을 달래려던 한방편이 사랑이란 묘약처럼 그에게로 중독되었고 죄라는 양심의 문은 이미 주마간산으로 흐릿하게 지나쳐 버린지 오래이다. 서로 편하다는 이유로 닮은 형상이 되어 아주 쉽게 서로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유리 컵 위에 실수로 떨어뜨린 종이냅킨이 컵 속의 액체에 젖어 삼투압 현상이 되어서 유리 컵 밖으로 냅킨을 따라 이동하는 액체, 그것이 굳이 누구였던 간에 아무튼 그렇게 한 번의 실수로 컵 속의 물질이 이동을 한 것이다. 이미 컵 안과 밖은 동일하게 젖어서 어쩔 수 없는 그 둘 사이는 누구를 지목해 잘 잘못을 가릴 상황이 되질 않았다. 액체와 냅킨은 결국 버려지는 것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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