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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이후)


09 신춘문예 당선 시 읽기(2)-기청
2009-04-19 10:44:27
sosickr

조회:2675
추천:131

 

/2009 신춘문예 당선 시 읽기/

우울한 시대의 초상(肖像)(2)

-우리시 흐름의 관점에서

    氣   淸

 

  (앞에서 계속)

 4 랩 형식의 독백과 자조

  요즘 유행하는 랩 형식은 젊은이들의 새로운 화법(話法)처럼 보인다. 빠르고 장황한 사설의 리듬, 독백과 자조, 노래인지 사설인지 구분의 애매함, 속에 있는 뭔가를 거침없이 토해내는 시원함, 확실히 기성세대의 어법과는 차이가 있다. 직설적인 주절거림 빈정거림을 통해 일종의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기성세대는 돌려 말하기, 반어적으로 말하기, 가려서 말하기에 익숙해 있다. 그런가 하면 신세대의 어법은 다분히 직설적이다. 때로 이기적이며 냉소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세대 간의 거리다.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 **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술빵 냄새의 시간 -김 은 주 (동아일보 당선작, 전문)
 이 시에서도 그런 ‘당돌함’이 드러난다.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나 ‘이 한 통속들아’에서 ‘구속’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거침없는 감정의 표출이 그 예가 된다.  ‘어떤 걸 좋아해?’ ‘떠오르고 싶어’와 같은 독백과 자조는 공허한 내면의식을 드러내는 랩 형식의 화법이다. 이 시의 관심이 절박한 현실문제라는 점에서 보면 비장함, 냉혹의 어조가 어울릴 법하다.
그런데 상황에 비해 가벼운 랩 형식의 주절거림과 직설법인 솔직한 심경의 토로는 신세대 화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현의 나열, 덜 성숙한 유아기 감상적 어휘의 돌출 등이 그슬린다.

5 일상(日常)의 재발견

시를 가장 특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낯설게 말하기’이다. 일상은 반복적이고 권태롭다 이런 일상의 무료를 새롭게 말하는 형식이 시다. 따라서 일상의 자질구레한 상투적 이야기를 벌이는 것은 일종의 금기인 것이다. 시 쓰기는 일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재해석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생활의 재발견을 소재로 한 작품은 강지희 <즐거운 장례식> 하상만 <따뜻한 종소리>이영휴 <숲의 농담> 등이 보인다.

 금년 신춘문예의 수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주요 일간지 외에도 인터넷 매체인 한국문학방송과 창조문학신문이 동참하게 된 점이다. 이는 대형신문이라는 독과점적 지위가 줄 수 있는 폐해를 줄이고 신춘문예 제도의 ‘확대 재발견’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문학방송의 경우 첫 공모를 통해 1명의 당선자를 내고 당선작품도 5편 모두를 발표하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에 비해 창조문학신문은 시 시조 포함 총 8개 부문에 시부문 만(해외 포함) 6명의 당선작을 내어 ‘동시 대량발굴의 의욕과잉’을 보이기도 했다.  신춘문예 강점인 희소성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壽衣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즐거운 장례식 - 강지희 (문화일보 당선작, 일부)
 
보리차를 마신 후
컵을 두 손으로 안는다
컵이 아직 따뜻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컵을 간절히
안았던 적이 있었나
 
컵은 보리차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누가 잠시 머물렀던 기억으로
빈 컵이 나를 데우고 있다
-따뜻한 종소리-하상만 (한국문학방송 당선작, 일부)
 
꽃도 열매도 아닌
천 년 전 가을빛 바람이 내 우듬지를 흔들지 않았다면
나는 두 잎사귀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다
타오른 숲의 가을 향만큼 아린 것이 있을까
바람은 눈썹 밑에 시간의 잔물결을 남긴다
산 그리며 흔들리는 낮짝을 부려놓으며
우리가 언제 힘겨루기 한 적 있냐고
바람의 무게로 웃는 이유는 묻지 말자
우듬지까지 타오르던 자의 몰락이나
만취한 무너짐에 대해서
-숲의 농담-이영휴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일부)
 
 <즐거운 장례식>은 가족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재정립한다. 남의 일로 여기던 죽음이 한층 가까운 곳으로 다가올 때, 보다 분명하게 떠오른다. 관념에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즐거운 죽음’은 역설이며 준비된 죽음이다. 화자는 장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새소리를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에서 죽음의 의미가 재발견된다.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따뜻한 종소리>에서도 ‘생활의 재발견’이 보인다. 보리차를 마시는 행위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다. 그런 길들여진 행위를 통해서도 새로운 느낌을 자각한다. 컵은 보리차의 따뜻함을 간직하는 사물이자 매개체이다. 그런데 "빈 컵"이 나를 데워주는 인격체가 되는 역할의 전이가 놀라움을 준다. 이외에도 다른 4편의 작품이 고른 수준으로 탄탄한 저력을 보여준다.
 <숲의 농담>은 -대관령 옛길에서란 부제가 붙은 7장의 비교적 긴 작품이다.  ‘가을 빛 바람’ ‘가을 향’ ‘바람의 무게’에서 관념(비사물)을 시각화 청각화 하는 수사(修辭)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바람의 흔들림은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매체이다. 바람을 통해 숲의 가을 향-아린 것, 바람-시간의 잔물결(시간의 경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상적 삶을 보다 ‘의미 있는 삶’으로 각성해가는 계기는 ‘바람’(시간)이라는 매개물 때문이다.
 

5 어디로 갈 것인가?-마무리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이 말은 영화 속의 유명한 말이다.(폴란드의 작가 센케비치 원작의 쿼바디스)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도 오늘 우리 시대에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바꾸어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미망(迷妄)과 혼돈(混沌)의 현실에서 탈출구는 없는가? 개인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다. 문학이 예외일 수 없다. 문학을 생산하는 사람들(작가, 시인)은 소비자(향수자, 독자)를 너무 왕으로 대접하는 것은 아닌가. 매개자인 매스 미디어는 너무 독자의 편에 서있지 않은가. 다른 말로 편식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그러다 보니 작자는 소비자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고 지조를 잃어버린 건 아닌가.  요즘 잘 나가는 일군(一群)의 생활시 대중시 감성시가 대접을 받고 있다. ‘읽히는 시’를 빙자해서 질 낮은 대중적 취향에 길들여지고, 독자의 눈에서 멀어진 시는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다시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신물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꽁무니를 붙들고 가는데 까지 가볼 것인가. 값싼 대중적 취향에 흥이 나서 덩달아 춤을 출 것인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주류가 맥을 이어가고 실험군(實驗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한다.  실험군은 나름대로의 방향을 잡아야한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경향이든 우리 체질에 맞는 것으로 갈아야한다. 멀리서 찾기보다는 우리 내부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시의 본류는 서정이고 주류는 문학성을 지닌 시라는 언어예술이어야 한다. 서정만으로 부족하다. 알맹이가 있어야한다. 서정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 지성 열정 시대의 고민과 철학 그리고 어떤 새로운 것으로 채워 나가야한다.  얼마간의 감성과 엇비슷한 비유로 얼버무린 ‘사기그릇’만 생산할 수 없다. 장인정신으로 질그릇도 만들고 조상의 얼이 벤 백자 청자도 만들고 현대감각이 빛나는 신개념 그릇도 나와야 한다.
시인은 쇠를 녹여서 날을 세우는 대장장이가 되어야한다. 때로는 호미나 곡괭이도 만들지만 때로는 날선 ‘단검’이나 시대의 강물을 돌려놓을 수 있는 ‘장검’을 만들 수 있어야한다.  우리 시의 주류가 ‘읽히는 시’의 포로가 될 수 없다. 독자를 빙자해서 가벼운 생활시 대중시 감성시가 우리 시의 주류로 정착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사견(私見)이지만 조지훈의 지조와 품격, 미당의 서정과 전통, 김춘수의 지성, 김수영의 현실감각이 어우러진다면 어떨까. 문제는 답습이 아닌 새로운 고민이 녹아든 것이어야 한다.  보다 큰 관점에서 보면 오리엔탈리즘의 심화, 반문명(反文明)을 지향하는 신자연주의. 본질로의 회귀인 신서정주의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신춘문예 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신춘문예의 강점이 희소성, 참신성. 전파성에 있다면 이제 그 위력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여건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기대를 거는 것은 얼마간의 실험성과 경향성을 이끌고 있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번번이 무너지고 또 다른 빈정거림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이라는 독과점적 지위가 파급효과를 가져오지만 매개자의 역할이 왜곡되었을 때 그 부작용 또한 큰 것이다.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는 이제 연례행사 정도로 무감각해져 버렸다. 어떤 의무감에서 단순 반복하는 ‘길들여진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책임감이나 새로움을 지향하는 열정이 식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심사위원 선정에서부터 심사의 공정성 객관성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미흡하다. 심사위원은 단골,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당선작은 심사위원의 구미에 맞는 ‘단골메뉴’로 결정된다. 그러니 적당한 신인냄새가 풍기는 정형화된 ‘신춘문예형’ 작품이 매년 확대재생산 되는 것이다.  이제 바뀌어야하고 바꾸기 위한 고민이 전제되어야한다. 식어버린 열정을 되살려야한다.  생산자가 먼저 바뀌어야한다. 매개자도 진지한 자성(自省)으로 거듭나야 하고 최종 소비자(독자)도 바뀌도록 열정을 바쳐야한다. [끝]
        월간 [문학공간] 09. 4월호 발표
필자 약펵===================
  기 청 (본명; 정 재승)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1977)
-이후 시, 시조, 비평, 극작, 칼럼 등 집필
*경남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전, 대학 강사 잡지사 편집장
저서; 시집 [풍란을 곁에 두고] [길 위의 잠]
[대학 국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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