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유 태 경
‘그래! 네 똥 굵다.’
‘그래 너 잘 났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똥이 굵다는 의미는 건강에 상징되는 말인가도 싶다. 배설물이 건강하지 않으면 건강에도 문제가 있다.
어린 시절 혈기왕성하게 뛰어놀며 자신만만하게 내 뜻을 주장하며 친구끼리 주고받았던 말이다. 지금은 들어볼 수도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잃어버린 추억의 명언이었다는 생각이 되어 옛날이 그리워진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발가벗고 물고기 잡느라 풍덩풍덩 하던 내 모습도 눈앞에 선하여 이슬비에 젖어가는 황혼의 신세가 된 나는 옛날을 그리워하며 산다.
우리의 뱃속에는 똥과 오줌이 들어있다.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똥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자기는 없는 양 더럽다고 왼손으로 코를 막고 오른손 바닥으로 코를 부채질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리라. 화투판에서는 아니다. 똥만 뜨면 두 전구에 촉수가 높아진다. 꿈도 같으리라. 똥 꿈을 꾸면 하늘에서 큰 복을 내리는 암시로 사업이 번창하고 집안에 재물이 쌓일 징조라 했다. 운수 대통하여 재물과 이득이 많아질 징조라 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나 득을 본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옛날에는 배설물도 농촌에서는 큰 재산이기도 했다. 측간에 가야 하면 밖에 나가 놀다가도 집에 뛰어들어와 알뜰히 모았다. 모든 농작물이 먹어야 하는 음식물이기 때문이었다. 오줌똥을 먹고 자란 농작물을 먹으며 상부상조하며 살았다.
‘그래 네 똥 굵다.’라는 말은 종합검진 결과다. 똥이 굵다면 건강도 굵어 좋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목에 힘주고 애걸해도 결국 피를 보아야 나온다거나, 준비도 전에 쏟아져 나온다면 먹었던 음식 때문이리라. 고생을 심하게 했으니 과일즙이나 미음(米飮)으로 위장을 위로해 주고 영양 보충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네 똥 굵다.’라는 너도 건강하고 나도 건강하자며 서로 걱정해주는 지혜로운 말을 어떻게 어린 나이에 주고받았을까? 가난에 찌들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살았지만, 마음만은 친구와 형제처럼 정겹게 놀았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산다. 어느덧 세월은 나를 막차 안으로 밀어 넣어 석양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심정으로 사는 신세가 되어 있는 나를 본다.
피부도 숨을 쉰다. 태어나자마자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도록 옷을 입혀 피부를 감싸기에 다른 동물에 비해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나를 종합병원이라고 생각도 해 본다. 음식물이 내 입을 통해 들어가면 우선 소화하기 쉬운 것부터 성분을 분석하는 소화기 내과의 임무가 우선이다. 영양학과에서는 흡수해야 할 것은 흡수하고 버릴 찌꺼기는 똥이나 오줌으로 분류할 것이다. 비뇨기과, 기생충학과 등 여러 학과를 거처 장내 세균, 신진대사에 의해 떨어져 나간 장의 벽 세포의 노폐물, 밖에서 들어오거나 몸속에서 만들어진 독소까지 배설물로 분류하여 검사실을 거처 예방의학과에서 진단서와 처방전을 발부하여 변기 안으로 쏟아낸다는 나만의 생각이리라. 변기 안에는 나의 건강진단서와 처방전이 있다.
옛날 내가 살았던 시골에서는 평생 병원이라는 곳을 모르고 살았다. 아프면 소다 한 숟가락 입에 털어 넣고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 피를 내거나, 어머니가 배를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며 ‘엄마 손이 약손이다. 쓱쓱 내려가라.’라고 하며 살았다. 두드러기라도 나면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 발가벗겨 세워놓고 볏짚에 불을 피워 소금을 몸에 뿌려가며 방이나 마루를 쓸던 비로 몸을 쓸어내린다. 이빨이 심하게 흔들리면 실을 걸어 문고리에 매고 문을 활짝 열어 빠진 이빨을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며 지붕에 던졌다.
가난에 찌들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살았지만, 도회지에 사는 사람보다도 건강하고 마음만은 편하게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이라도 정을 나누며 살던 고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마음만이라도 뛰어가려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다.
옛날 시골, 측간에서 코를 찌르던 독한 냄새마저도 향수 냄새로 다가오지만,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그리운 고향마저 버리고 이억 만 리 먼 타국에 와 사는 나는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무심한 세월마저도 나를 깔고 앉았는지 마음대로 행동하기조차 버겁다.
측간이나 병원에서는 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때가 되면 가야 하기에 측간도 병원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들어가면 썰렁하고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뿐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찾아 들어가 정숙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옷을 내린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마음까지도 모두 보여준다. 숨을 쉬지 못하게 팬티와 두툼한 바지로 감싸 놓았던 중요한 부위의 피부가 실컷 숨을 쉬도록 벗고 쭈그려 앉는다. 솔솔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엉덩이 피부의 숨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대문을 통해 위 속으로 들어간 산들바람이 위장을 대청소한다. 소장, 대장, 심장 등 위장들의 즐거운 춤사위가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 마침내 천둥소리에 황금 같은 우박이 힘차게 장대비까지 쏟아져 내린다. 가슴에 품었던 나쁜 마음조차 쏟아버리고 나니 나는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과 측간 밑바닥에서 투영되는 내시경 검사를 끝으로 종합검사와 치료가 끝난 듯싶다.
솔솔 부는 산들바람이 따듯한 간호사의 손길처럼 피부를 보듬어주며 친절하게 배웅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새로운 나의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잘 먹고 잘 싸면 만사태평이리라. 무엇이든 먹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잠자는 시간 일 초라도 쉬지 않고 똥과 오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나의 삶이리라.
‘그래 네 똥 굵다.’라는 건강검진을 받기위해 오늘도 화장실에 들어가 건강을 확인하고 하루의 문을 활짝 열고 일터로 가리라.
QAQA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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