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속으로
사람의 방귀 뀌는 소리가 이렇게 감미로운 예술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평소 같으면 냄새도 맡기 싫어서 코를 막고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비켜가고 있을 텐데
오늘의 내 역사는 어떻게 된 것인지 흐름을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먼저 화장실부터 들려 볼일을 보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조용하기만 했던 옆방에서 고장 난 수도꼭지를 잡아 트는 것인지
매우 귀에 거슬리는 삑삑 쇠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예리하게 들렸다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지 나는 벌써 볼일을 그만 그친 채 어쩔 줄을 모르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변기 위에 토라지듯 앉아서 소나기 맞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누군지 몰라도 참 대단하다
나 같으면 시끄러워서라도 갔다 버리겠다." 했더니
참 귀도 밟지 어떻게 잘 알아들었는지 조용해졌다
그런데 또 무슨 일인지 뿡 하고 가스 새는 소리가 아주 가늘게 떨리면서
아주 길게 여운을 지으며 자지러지러 질 듯 뿡 하며
화장실을 묵직하게 보이기 위해 거대하게도 웅장하게 새어나와 버린
가스 내뱉는 소리가
내 귀를 하나 가득 채우다 못해 충만해져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거참! 누군지 몰라도 아침부터 여러 가지 하네" 하고
나는 투덜거리고 말았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볼 일을 다 보고 방으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는데
왠지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 묵직하고 웅장하게 화장실을 울리는
가스 내뱉는
그 소리는 지워지지 않고 뭐 묻은 것처럼 살아서 꿈틀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게 공격하느라 난리였다
마치 내 몸 곳곳에서 뿡 하는 소리를 내면서 닭살이 소름 끼치게 돋는 듯한
그 괴로움을 아주 진기하게 맛봐야만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나를 괴롭히는가
아무리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영어사전을 찾아보며 텔레비전을 봐도
도저히 떼어버릴 수 없는 전염병으로 옮은 것만 같이 볼일 보고 뒤처리도 못 한
아주 찝찝한 느낌의 장벽이라는 그런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정말 미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나는 점점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그 해답을 알았다
"그래 맞다 맞아
바로 달팽이다
뿡 하는 소리를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뿡 ~~ 하는 스치는 소리에 종이가 말려 돌아가듯
그렇게 가스는 그의 몸에서 새어나와 내 귀속의 달팽이관에서
도르르 말려 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내 귀는 달팽이 집을 훔쳐와 지었거든."
달팽이관을 돌돌돌 말아 들어가는 그 시간을
나는 전율하며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을 나는 내일이면 어제의 밭에 심심치 않게 묻어놓고
매일 생각날 때마다 밭에 심어놓은 보화처럼 꺼내어 보며
즐겁게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역시 옛말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잘났든 못 났든 좌우지간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먼저 시간의 간격을 알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모든 날의 신비스러운 비밀에 일을 알을 될 듯한
매우 이상야릇한 봄이 내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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