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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호호 아줌마 2/2
2009-02-03 16:12:34
sionsira

조회:2003
추천:115

 

<호호 아줌마 2>

 

최 윤 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고,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인생이었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시아버지 병수발을 나 또한 도맡아서 해 왔었고, 병든 시어머니의 갖은 헤살을 받으며 겨우겨우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었다.

혀짜래기면서 코푸렁이 같은 남자의 무능함, 병들고 의심 많은 시어머니에 지쳐 난 이혼을 결심했고, 홀로서기를 하며 내 꿈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내 생각은 한쪽 구석에 밀어두고 그녀의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병든 시아버지 병수발을 도맡아서 하면서 식당 일을 돕던 그녀를 경쟁의 대상이요, 경계의 대상으로 여긴 시어머니의 행동은 분명 투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시아버지가 가게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그녀의 처지도 좋았었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시어머니는 시동생 부부와 의기투합을 해서 그녀를 몰아내고 말았다.

욕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에겐 시아버지의 유언 따위는 흘러간 물처럼,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여길 뿐 가슴 속에 흔적도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가. 내가 죽거든 이 식당은 네가 맡아서 경영하도록 해라.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말고 반드시 네가 맡아서 해야 하느니라.”

마지막 눈을 감기 직전 시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다.

임종하는 자리에 시어머니, 시동생 부부도 그녀와 함께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귀머거리는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귀머거리가 되고 싶었겠지만.

그녀를 지켜줘야 할 남편은 날파람둥이 같이 쏘다니기만 할 뿐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벌어놓은 돈마저 사기꾼에 의해 날리고 보니 그야말로 찬 서리에 홍 낭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들의 모략에 빼도 박도 못하고 내몰린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작은 분점을 내게 되었고, 아이 셋을 키우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나가야 했다.

함초롬한 그녀의 낯빛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노래방에 가자고 우긴 건 나였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그녀에게 노래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사는 게 바빠 반년 동안이나 노래를 끊고 살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슬픈 눈동자를 보자 내 마음이 도리어 슬퍼졌기 때문이었다.

노래방에서 그녀가 귓속말로 내게 말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대중 앞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고. 그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가슴이 뭉클했다.

작은 식당에서 꽃물 간이나 보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전 국민 앞에서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춘 흙속의 진주라고 나는 생각했다.

말한 후에 괜히 쑥스러움을 타는 그녀의 눈동자가 조명에 비쳐 반짝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이슬이 맺혔다 또르르 떨어졌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울고 있다는 것을.

세상엔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다.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를 반년 동안 한 번도 부르지 못했다니, 사는 게 무엇이기에 이토록 꿈 많은 여인을 붙잡고 있단 말인가. 그 좋아하는 노래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옥죄고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살살이 꽃을 닮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무한해 보였다.

그녀의 노래가 차근차근 이어졌다.

나는 경외하는 맘으로 그녀의 노래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열린 음악회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작고 허름한 지하노래방에서 한 무명 소프라노를 통해 나는 느끼고 있었다.

가자미콧구멍 사장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아예 문을 삐죽이 열고 들어왔다.

그럴 거면 인심이나 좀 곱게 쓸 것이지.

나는 흘기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주인을 째려보았다.

눈치를 챘는지 황급히 나가더니 서비스 십 분을 추가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짜기가 사해바다 소금물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노래 부르기에 열중을 했다.

그녀가 분점을 낼 때 보태준 보증금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주기적으로 찾아와 이자를 내놓아라, 원금은 언제 갚을 것이냐, 가게 명의를 아예 내게로 넘겨라. 온갖 협박을 다하는 시어머니의 등살에 멍이 들대로 든 그녀였다.

턱자가미에 심술을 덕지덕지 붙여서 쏘다니는 시어머니는 그녀가 약간이라도 얇은 옷을 입고 있으면 여기가 술집이냐, 술집 계집같이 옷 꼬라지가 뭐냐, 하며 생트집을 잡아 뜨더귀로 찢어놓고 돌아갔다.

그럴 때마다 마음까지 갈기갈기 찢긴 그녀였다.

그녀의 가슴에 피멍이 들 때 남편은 어느 카페에서 늑놀다 샐녘에나 들어오거나 아예 몇 주일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었다. 

현실로 받아들이며 참아내기엔 너무나 가혹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 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고통을 잊을만하면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이자가 며칠 늦었다는 이유로 소중히 간직했던 액자가 투깔스러운 시어머니 손에 의해 깨어지고, 머리채가 잡히는 바람에 단골손님들에게 망신을 당하여도 그녀는 참는 방법밖에 몰랐다.

초롱초롱한 세 아이들의 눈동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단골손님들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행패를 부리던 시어머니가 돌아가고, 구경하던 단골손님들도 돌아가고 난 후 그녀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조용히 노래로 풀었다.

텅 빈 식당 안의 의자가 무대요, 어둠속에 누르스름한 불빛을 내뿜는 가로등이 관객이었다.

식당 한쪽을 막고 꾸민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그녀와 세 아이들을 지켜줘야 할 신랑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술 먹고 어디 가서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리라.

살아보려고, 아이들 셋을 훌륭하게 키우면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칠 때마다 옥죄어오는 시어머니의 압박에 대한 피멍울을 그녀는 항상 노래로 풀었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여인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맹지를 대출금으로 사놓고, 매달매달 이자 갚느라 허리가 휘청할 때도 어찌할 수 없어 노래로 그 시름을 달랬다.

다시는 남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결심하면서 …….

한창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온몸에 사랑살이 올라야 할 젊은 나이에 벌써 물기가 마르고 있음이 애젖하여 차라리 수도사가 되리라 입술을 깨물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 훌륭하게 키우는 일에만 몰두하리라, 섹스 따위는 잊고 살리라 하면서 …….

그래서일까. 그녀의 노래에는 늘 서러운 한이 묻어있었다.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컥하게 끌어올려 눈물 쏟게 만드는 한이 서려있었다.

경쾌한 가락의 트로트도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가면 그 맛이 변해버렸다. 가슴 찌릿찌릿하고 싸한 맛으로.

무반주로 불러도 웅장한 그녀의 노래.

어둠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았다.

검은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과 빛나는 별들도 그녀의 노랫소리에 심취해 깊은 잠이 들었다.

꾸벅꾸벅 졸던 가로등이 누런 침을 닦으며 게슴츠레한 눈을 떴다.

노래를 부르며 그녀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었다.

화려한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올림머리를 한 무명의 하이소프라노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에 맞추어 전 국민 앞에서 아리랑을 부를 것이다.

박수갈채가 하늘의 별처럼 쏟아질 것이고, 그러면 그녀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할 것이다. 그녀의 긴 속눈썹에 이슬이 맺히고, 발그레한 얼굴에는 땀도 맺혀 있을 것이다. 뜨거운 조명 아래에 드레스가 촉촉이 젖어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뭉클하게 했을 것이다.

지휘자와 나란히 인사를 한 후 마지막 신청곡을 부를 것이다.

그녀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다 신 새벽을 맞이했다.

목욕가방을 챙겨 근처 사우나에 들어가 지친 심신의 피로를 그때서야 풀었다. 그리고 날달걀로 목도 풀었다.

모든 것을 벗고 알몸으로 있을 때가 도리어 편했다.

엄마라는, 며느리라는, 아내라는 옷마저 훌훌 벗어던진 것 같아 홀가분함에 뜨거운 탕 속에서 나오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로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그녀가 눈 뜰 때쯤 뱃살을 출렁이며 아줌마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희뿌연 김이 시야를 흐렸다.

간단하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치는 아줌마들도 때론 있었다.

젖은 몸을 말리고, 멎은 머리를 말리고, 눈물로 얼룩진 마음마저 뽀송뽀송 말리고 나면 또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

손님들은 그녀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어린애마냥 찾아대곤 했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저, 여기 있어요~.”

그녀는 노래를 부르듯 경쾌하게 대답하며 주방에서 나왔다.

화려한 목소리와는 대조되게 헐렁한 바지와 낡은 티셔츠 차림의 그녀가 방긋 웃으며 얼굴을 내비쳐야 손님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사실 그녀는 한시도 자리를 뜰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시어머니가 심어놓은 주방장 눈치도 봐야하고, 홀에서 심부름하는 연변아줌마들의 눈치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실상 속사정은 아주 피곤한 것이었다.

그 누가 그런 사정을 알까.

곳곳에 그녀를 감시하는 눈초리들이 번뜩이는 식당 안에서 그녀는 조금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모두가 시어머니가 심어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알면서도 모른 척, 싫으면서도 싫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이었다.

그녀가 칼자루를 손에 쥘 때까지는 참아 넘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잠시 잠깐 손님 테이블에 앉아 수다라도 떨라치면 대번 엄펑스러운 주방장의 눈빛이 그녀의 등짝에 머물렀다. 그리고 몇 분도 안 되어 그 소식은 시어머니의 귓구멍으로 돌진하고 말았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렇게 감시되어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크고 환하게 웃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살 길이니까.

아파도 웃고, 슬퍼도 웃고, 기분 나빠도 웃는 법을 그녀는 이미 터득했다.

가끔 누군가가 물어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와요?”

“그래도 웃어야지요.”

그녀의 대답은 늘 그랬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 속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가식적으로 웃을 때와 정말 즐거워서 웃을 때의 비밀.

진정으로 좋아서 웃을 때 그녀의 귓불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비밀이었다.

남몰래 스푼만큼 작아지는 호호 아줌마처럼, 그녀도 낮새껏 통통걸음으로 식당 안을 누비고 다니다가 주위가 까만 어둠으로 싸이면 침침한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작아지는, 그런 비밀.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내 가슴도 아팠다.

무엇이 그녀를 짓누르는 것일까.

보무당당해도 충분할 것 같은 여인이 왜 기가 죽고 풀이 죽어 맥을 못 추는지 안쓰러웠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철부지 막내아들은 온 식당을 헤집고 다니면서 분탕질을 했다. 그러다가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지청구를 부려댔다.

아줌마랑 만 얘기하지 말고 자기랑도 놀아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지갑을 열어 용돈을 아이에게 건네주며 손님과 얘기할 때는 얌전히 있어야지? 하면서 달래보았다.

돈을 받아든 막내아들이 방으로 들어가 TV를 보며 키드득거렸다.

그녀는 종이컵에 사이다를 따라서 나의 소주잔과 건배를 했다.

웃고 있어도 속은 울고 있는 그녀에게 앞으로 밝은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바깥에선 때늦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화단 나뭇가지에 눈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나와 그녀는 동시에 우와-! 함성을 지르며 턱을 괴고 눈꽃구경을 했다.

나지막한 앞집 회색 지붕이 어느새 새하얀 옷으로 덧입었다.

겨울이 가고 나면 꽃피는 새봄이 오듯이 아픔이 지난 자리에 행복의 꽃이 피기를 간절히 원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눈꽃처럼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눈꽃과 웃음꽃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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