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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형식 논쟁]시조,그 새로운 형식 모색의 당위성/기청
2008-07-10 20:32:20
sosickr

조회:2567
추천:171

 

    [문학형식 논쟁] "월간문학" 06.7월호 발표

  시조, 그 새로운 형식 모색의 당위성

 / 氣  淸  

 -"조 00식 시조론"에 반론을 겸하여

 


 시조의 형식문제를 둘러싸고 그동안 적잖은 논쟁이 있어왔다.
그 논쟁의 핵심은 현재의 시조형식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보고 그대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쪽과, 시대적 정서와 괴리되어 문학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후자의 견해를 표방하는 쪽에서 그동안 얼마간의 실험창작이 있어왔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데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필자는 후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나름대로 고민해왔다.
시조형식의 장점을 지키면서도 보다 시대정서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식을 찾아 스스로 자유연행시조(줄여서 연행시조)란 이름으로 수년 전부터 작품을 써왔고, 더러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에 월간문학(06. 5월호)에 <아름다운 결별> <뻐꾸기 울음>두 편을 발표한 바 있다..
모두 7행(장)으로 된 "연행시조"로서 처음 접하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의 3장 형식을 벗어나 행을 자유롭게 확장해 가는 새로운 개념의 시조형식"이라는 각주를 달아놓았다.
그런데 동지 6월호 월평에서 조 00 시인은 한마디로 "이건 시조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월간문학 5월호에는 새로운 정형시라 하여 새 장르를 들고 나오고, 시조와는 상관없는 것을 새로운 시조라고 발표하고 있다.(월평 인용)

  마치 시조의 수호자인양, 준엄한 심판이라도 내리듯이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묵살하려한다.
이웃집에 가서 김치를 먹어보고 자기 입에 맞지 않는다 해서"이건 김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물론 관점에 따라 시조가 "아니다"라고 볼 수도 있겠다.
조 시인 논리대로라면 지금까지 변화와 모색의 소산인 엇시조, 사설시조, 양장시조 등도 모두 시조가 아니라고 보는지?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문학 형식의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폐쇄적 관점이다.
알다시피 문학 형식도 그 시대의 옷과 같은 문화양식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문화도 변하고 문학형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문학은 시대인의 정서와 문화양식을 반영

 지난 문학사를 보더라도 고대시가에서부터 신라의 향가, 고려의 가요, 조선대의 시조와 가사라는 대표적 문학양식이 있었다.
시대에 따라 자연스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러는 모습을 바꾸어서 태어나기도 하고 더러는 그 수명이 다하여 사라지기도 했다.
무엇 때문인가?  이유는 자명하다. 그 시대인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필자의 실험적 시조는 시조가 아니라며 장황하게 논거(論據)를 들고 있는데 모두 상식적인 것들이다. 그 중에서 역사성을 말한 대목을 보면,

  -다섯째, 한 형식의 시를 창작하고 감상해온 시간이 수백 년,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하나의
시 형식으로 굳어진 오랜 역사성이 있어야한다.(동지 월평 인용)

 얼핏 맞는 말 같지만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오랜 역사성 이란게 결국은 한시대 한시간, 한순간의 연속선상이라는 점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서 큰 물줄기를 이룬다.  어느 날 하늘에서 새로운 것이 뚝 떨어지는게
아니라 작은 노력들에 의해서 하나의 공통 형식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같이 모색하고 격려하지는 못할지언정 힘을 빼는데 열을 올리는 건 같은 문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문학형식도 진화(進化)한다는 진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직전시대인 개화기까지만 해도 개화가사나 창가가 널리 향수(享受)되었지만 얼마 못가서 영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변혁기의 문명개화와 계몽의식을 고취하는데는 유효했지만 그 이후의
복잡한 현대정서를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신체시나 서구에서 들어온 자유시에 그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시조가 조선시대에 가장 융성했고 개화기에 와서 자취를 감추려다가 육당에 의해
되살아나게 되었다.  카프파에 이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족의식의 상징인 시조를 대입시켰던 것이다.   육당의 시도는 성공했고 마침내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언제까지 시조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시조는 우리 민족어의 최대공약수이며, 최고의 미학적 결정체로 완결된 미학이라고 한다.
(동지 월평 인용)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시조가 오늘날 독자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시조가 100년 혹은 5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필자의 생각은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실험과 모색을 하는 것은 우리시대인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본다,  더욱이 문학을 한다는 문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의 변화와 모색

 

시조의 연원을 향가나 민요에서 찾기도 하고 무속적 주술에서 기원을 찾기도 한다.
그중 고려가요의 형태상 특징이 무너지면서 단형화(單形化) 되어 새로운 시조형식으로 굳어
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쨌거나 시조라는 형식이 고정되기까지는 수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왔슴이 분명하다.
형식이 완성된 이후에도 여러 형태의 변화를 거듭했다.
처음 단형에서 연형으로, 평시조에서 엇시조와 사설시조라는 형식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변화는 결국 단형 시조가 갖는 "정제된 언어의 결정"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이념의 변화를 수용하고 내용의 분량을 조절하려는 지혜롭고 자연스런 모색으로
생각된다.

 근자에 와서도 일련의 모색이 있었다.
두 장만으로 이루어지는 양장시조, 마지막 종장만으로 더욱 압축하려는 절장시조 등이
그것이다.   이들 특징은 축소지향의 실험으로, 양적 팽창을 가져오는 현대의 특성에
오히려 역행하는 축소지향의 방향을 택하여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경향은 시조의 3장 형식의 배열을 구별배행 혹은 자유배행으로
하여 일반인이 보면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는 배행구조 파괴현상이
거의 보편화되었다.
시조의 "장"을 초정 김 상옥은 그의 시집 "삼행시"를 통해 "행"개념으로 불렀고 이는 시조의 시적 개념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었다, 
그리고 시조의 핵심이라 할만한 기-승-전-결이라는 의미상 전개구조는 상당부분 그 효력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1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은 三更인제
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전개구조가 분명한 고시조의 예

  2
시냇물 따라가자
고운 음악 함께 가자.

 스치는 바람에도
고운 음악 뒤따르자.

  산사에 노승이 간다
목탁소리 함께 간다.
-현대시조, 대등 병렬적 구조

 위의 예시에서 보듯 기=발단, 승=확장, 전=전환, 결=완결이라는 의미구조가 분명할 때  정형시로서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시조에서는 대등 병렬구조나 대칭구조, 점층 점강구조처럼 다양한 구조가 사용되고 있다.
 현대시조에서는 시조의 정형성을 많이 허무는 대신 자유시의 특성을 닮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외형적 자수율만을 고수하고 의미상의 구조적 특성을 다분히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조의 정형시다운 특성인 3장 6구 12음보라는 것도 음보율이라는 율격의 특성을 제외한다면 자유시와 그리 다를게 없다
또 한편으로는 형식보다 내용 면에서 현대시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고시조풍"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오늘의 시조단 현실이다. 

 

 확대지향 형식의 모색

 

 3장 6구 형식만이 최선인가?
기-승-전-결 구조만이 완벽한 것인가?
시조가 현대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도구로서 아직도 유효한가?

  이런 의문에서부터 나의 실험은 비롯되었다,
앞에서 본 것처럼 3장 배행구조의 파행이나 의미상 전개구조의 파행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문학이 동시대인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시조는 분명 불편한 그릇이다.
시를 흔히 "언어의 결정체"로 "언어의 정수"로 표현한다.
시조는 이보다 더 정제된 그야말로 "언어의 핵"이라 할 만하다.
말의 홍수 시대에 "말의 효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시조가 단연 으뜸이고 바로 이점이 시조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으로 현대의 복잡다단한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그 형식의 한계 때문에 무리가 따른다.

  1
앞산 허리께 너머 기러기 떼 줄지어 가고
그 아래 공동묘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문 날 줄줄이 서서 가물가물 늘어선 행렬
영문도 모르는 어린것들 아장아장 돌아오고.
- <가고 오고>[작은 문학]지 발표

2
왜 우나 밤낮 없이 꽃은 지고 또 피는데
왜 우나 청승스레 달은 뜨고 또 지는데
잔 가득 비치는 달 꽃잎 막 내리는데
내리자 부는 바람 꽃잎 막 날리는데
왜 우나 저승서도 못 잊을 그리움 한 점
얼마나 저미고 아픈 그 사연 참다못해
한 순간 핏물을 풀어 마구 붓칠을 하나.
- <뻐꾸기 울음>[월간 문학] 06, 5월호

 3
시여 그물을 쳐라 달콤하고 향기롭게
시여 사로잡아라 요리조리 빠지는 토끼
북 치고 꽹과리 치는 몰이꾼도 불러와서
서서히 조여오는 포위망 건너뛰어
용케도 빠지는 토끼 드높은 허공으로
시여 그물을 쳐라 덮치는 푸른 파도

찢겨난 그물 새로 하늘만 밀려나고
시여 절망하라 허망한 숨바꼭질
고향 뒷산 언덕배기 한 그루 나무로 서서
비 오면 비에 젖고 눈오면 눈에 묻혀
비우고 비워내는 개살구 꽃도 피우고
후두둑 꽃잎마저 지면 빈 가슴으로 울어라.
-<시 또는 개살구꽃> 계간 [한국시학] 창간호

  필자는 73년 시조문학 추천, 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뒤 그동안 나름대로 시조형식의 실험적 모색을 해왔다.
필자의 시집 [길 위의 잠](2001년 간)에도  "연행시조 연습"이란 별도의 장을  통해 "겨울 황사"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빨강머리 김군" "호두껍질 속의 우주" "북은 울지 않는다" "금지된 장난-앤디에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연행시조를 발표하였다.
(한국문학도서관 개인서재 참조/ 
http://sosickr.kll.co.kr ->시집 [길 위의 잠]->둘째마당 자유연행시조 연습-> 열람 )
위의 예시 1은 4행 구조를, 2는 7행 구조를, 3은 6행 연장체로 전부 12행 구조를 띤다.
행을 자유롭게 확장한다는 의미로 "자유연행시조"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현대는 음풍농월식의 한가한 놀이를 즐기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나"라는 존재의 문제에서부터  환경문제, 우주과학과 생명과학의 문제, 신과 인간의 문제 등 복잡미묘한 문제들을 시조라는 한정된 형식으로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시조의 중요한 특성인 음보율과 마지막 장의 전-결 구조를 살리고 기-승 구조를
자유롭게 확장하여 형식의 확대를 실험하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정해진 형식에다 내용을 맞추는 선 형식-후 내용의 방식에서 내용에 따라 형식을 결정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내용의 길이에 따라 4행, 5행, 7행, 11행, 등 자유롭게 행(장)을 결정하는 방식을 택하다보니
훨씬 자유로우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도 실험적 모색을 계속할 것이며 나의 소신대로 글을 쓸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자유연행시조" 만으로 묶어 시집을 낼 계획이다.
남은 과제는 일반인과 창작을 전공하는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반응도 조사와 함께 보다
폭넓은 가능성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논문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새로운 형식의 모색은 우리시대의 과제이다,
지금까지 축소지향의 실험에서 그 한계가 드러난 만큼 역으로 확대지향의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형식에 대한 실험은 궁극적으로 글을 쓰는 각자의 소신에 따르는 것이다.
현재에 만족한다면 그대로 따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모색을 한다해서 무슨 이단(異端)이나 별종취급을 해서는 곤란하다. 
세상은 다양성으로 충만해있다.
문학도 다양성의 추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끝>
-06. 6. 6 현충일에

     참고// 월간문학의 거부로 미발표작으로 남은 재반박문

     [ 현대시조의 근본 문제는 문학성이다]를 다음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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