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문인글방_문학이론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은 역사다. 한국문학방송의 기사는 곧 대한민국 문학의 역사다.
HOME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등업신청/기타문의]
로그인 회원가입
회원가입


한국문학방송은 지상파방송 장기근무경력 출신이 직접 영상제작 및 운영합니다
§사이트맵§ 2022년 10월 01일 토요일

한국문학방송작가회
카페


DSB 문인 북마크페이지


전자책 출간작가 인명록



시조
동시
영시
동화
수필
소설
평론
추천시
추천글
한국漢詩
중국漢詩
문학이론

홈메인 > 문인글방_문학이론 > 상세보기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판매정산 페이지
도서판매/온라인강좌

전자책 제작·판매·구매의 모든 것

사랑의 정의 찾기
2012-12-01 19:04:23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1532
추천:170
첨부파일 :  1354356263-100.hwp

1). 사랑 정의 찾기

 

(1). 다윋 이름과 같은 사랑의 의미

 

솔로몬이 아가서를 지었다. 이 때문에 솔로몬과 사랑이야기는 불가분의 관계로 본다. 그러나 다윋과 그 밀접성이 더 강하다. 그 이유는 히브리어로 살펴본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다윋을 중심하지 않고서는 사랑이 논의 될 수 없다. 한국말에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화자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하는 말이다. 그런데 히브리어로는 이 안타까움의 시선은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가 있다.

 

① 도데하 󰗘י󰕋󰕔(네 사랑 , 아 1: 2)

② 네 사랑이 · 네 사랑은 󰗗י󰕋󰕌(도데하, 아 4: 10)

③ 나의 사랑하는 자는 י󰕉וֹד(도디, 아 1: 13, 14, 2: 3, 8, 16)

④ 나의 사랑하는 자가 י󰕉וֹד(도디, 아 5: 4)

⑤ 나의 사랑하는 자야 י󰕉וֹד(도디, 아 1: 16, 2: 9, 10, 17)

⑥ 나의 사랑하는 자가 י󰕉וֹד(도디, 아 4: 16)

⑦ 나의 사랑하는 자요 י󰕉וֹד(도디, 아 5: 11)

(2).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히브리어의 그로부터 온 물 󰗫(마/물)에서 나타난다.

 

사랑스럽구나 םי󰕑󰗫󰖖󰗫(마함딤/사랑스럽구나, 아 5: 16)

히브리어의 많은 글자어휘들이 이 물을 처음 접두어로 사용한다. 특히 사랑스럽구나 םי󰕑󰗫󰖖󰗫(마함딤/사랑스럽구나, 아 5: 16) 히브리어는 물 언어가 3회나 반복된다.

 

(3). 사랑의 목적

 

사람은 사랑을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랑은 성경언어에서 가슴과 가슴끼리 바라보는 상형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י󰕉וֹד󰗡(레도디, 아 6: 3, 아 7: 10)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י󰕉וֹד󰗡(레도디, 아 5: 5, 6, 7: 9, 13)

 

י󰕉וֹד󰗡(레도디)의 וֹ(오)는 가슴 사이 󰕉וֹד(도드)에서 서로 바라보는 관계를 형상화한다. 바라보는 목적은 하나님에게 속하기를 바라서이다. 한국말에 ‘달리다’. 혹은 ‘달래’ ‘달려’라는 말이 있다.

(4). 하나님 안에서 숨 쉬어야 진정한 사랑

 

희안하게도 한국의 ‘아프다’라는 말 그대로 히브리어 발음도 ‘아프다/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숨 쉽이다.

(5). 헤어짐의 뜻은 내가 하나님 안에 있지 않은 것

 

헤어짐의 의미는 내가 하나님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다.

.

사랑하는 자야 ה󰔧󰕟אָ󰚆(쉐아아하바아, 아 1: 7)

사랑하는 자를 ה󰔧󰕟אָ󰚆(쉐아아하바아, 아 3: 1, 2, 3, 4)

 

ה󰔧󰕟אָ󰚆(쉐아아하바아)의 ה󰔧󰕟אָ가 사랑의미인데 앞에 󰚆(쉐)가 붙어 사랑을 분쇄해버린 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이다.

 

(6). 사랑은 머리와 눈 안에 하나님이 들어 있는 삶

 

내 사랑아 י󰚕󰖷󰘤󰙧(라야티, 아 1: 9, 15, 2: 2, 13)

내 사랑 י󰚕󰖷󰘤󰙧(라야아티, 아 4: 1)

내 사랑아 י󰚕󰖷󰘤󰙧(라야아티, 아 6: 4)

나의 사랑 י󰚕󰖷󰘤󰙧(라야티, 아 4: 7, 5: 2)

 

(7). 사랑은 나의 전부를 주는 것

 

네게 나의 전부의 사랑을 주리라 󰗗󰗚 י󰕈󰕔 -ת󰔟 ן󰚞󰔟(에텐 에트-도다이 라크, 아 7: 13)

 

사랑 의미는 십일조 의미와 같다. 전체를 바치지만 그 중에서 아홉을 얻는다. 한국말 ‘아프다’라는 발음과 같다.

사랑은 머리와 눈 안에 하나님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다.

2). 사랑

 

(1). 사랑은

 

ה󰔧󰕟אָ󰚆(쉐아아하바아)의 ה󰔧󰕟אָ가 사랑의미인데 앞에 󰚆(쉐)가 붙어 사랑을 분쇄해버린 사랑과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의 사랑은 ה󰔧󰕟אַ(아하바아/사랑은, 잠 10: 12; 아 2:5) 아픈 관계이다. 아프다는 말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잠 10: 12)는 마음을 말한다. 사랑은 י󰚕󰖷󰘤󰙧(라야티/사랑은, 아 2: 2) 백합화이다. 네 사랑은 󰗗י󰕋󰕌(도다이/네 사랑은, 아 4: 10) 향기가 향품보다 승하다. 사랑은 ה󰔧󰕟אַ(아하바아/사랑은, 아 2:5, 8: 6) 질투가 강하며(아 8: 6). 사랑은 ה󰔧󰕟אַ󰕗(하 아하바아/사랑은, 아 8: 7) 막을 수가 없다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롬 13: 10)는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 ή δέ άγάπη(헤 데 아가페, 고전 8: 1)은 덕을 세운다.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고전 13: 4)은 오래 참는다.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고전 13: 4)은 온유하며 · 투기하지 아니하는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고전 13: 4)이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한다.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고전 13: 8)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는 사랑 ὅτι άγάπη(오티 아가페, 벧전 4: 8)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사랑하자 Άγαπητοι,άγαπωμεν(아가페토이, 아가푸멘, 요일 4: 7 4: 8) ·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요일 4: 7)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ή άγαπήκαμεν(헤 아가페카멘, 요일 4: 10)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

(2). 사랑이

 

모든 것 중에 사랑이 선택되는 이유는 사랑 ב󰕚󰔠(오헤브/사랑, 잠 17: 17)이 사이를 끊어지지 않게하는데 있다. 네 사랑 󰗘י󰕋󰕔(도데하/네 사랑, 아 1: 2)이 포도주보다 나으며 네 사랑 󰗘י󰕋󰕔(도데하/네 사랑, 아 1: 4)이 따라가게 하고 즐겁고 기쁘게 한다. 사랑 ה󰔧󰕟אַ(아하바아/사랑, 아 3: 10)이 입혀지면 아름답게 장식된다. 네 사랑 󰗘י󰕋󰕔(도데하/네 사랑, 아 4: 10)은 아름다운 사랑이다.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요 15: 13)이 자기 목숨을 버릴 수도 있게 하는 바 그 이유는 나를 사랑 ήγάπησας(헤가페사스, 요 17: 26)하신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요 17: 26)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고 ·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롬 5: 5)이 들어오면 소망이 있는 제일의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고전 13: 1, 2, 3)이 된다. 사랑 ή άγάπη(아가펜, 고전 16: 24)이 공동생활 속에 사랑 τήν άγάπην(텐 아가펜, 고후 2: 4)으로 넘치어 대신하여 죽은 사랑 ή γάρ άγάπη(헤 가르 아가펜, 고후 5: 14)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 άγάπη(아가페, 엡 6: 23) 실천은 사랑 τῄ άγάπη(테 아가페, 살전 3: 12)이 말씀을 온전히 지키게 한데 있다. 예수님 사랑 ή άγάπη(헤 아가페, 요일 2: 5)이 내 안에 온전하여져 남을 도우는 사랑 ή άγάπη(아가페, 요일 2: 15)이 하나님 사랑 άγάπη(아가페, 요일 4: 8)인 것이다. 서로 사랑 άγάπώμενη(아가푸멘, 요일 4: 12)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 것이다. 그의 사랑 άγάπη(아가페, 요일, 4: 12)이 우리 안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랑 άγάπη(아가페, 요일, 4: 18)이 된다.

이 안에 긍휼과 평강(유 1: 2)이 존재한다.

(3).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 ה󰔧וּה󰔣(아후바아/사랑, 신 21: 15)을 받는 자는 사랑을 가진 자다. 그 사랑 ה󰔧וּה󰔣󰕘(하아후바아/그 사랑, 신 21: 16)은 우리를 그의 아들로 삼는 사랑이다. 사랑 די󰕉󰖾(예디드/사랑, 신 33: 12)을 입은 자는 하나님 곁에 안전히 거한다.

하나님의 사랑 ן󰖑(헨/사랑, 느 13: 26) 입은 자는 사랑 ן󰖑(헨/사랑, 시 109: 5), 곧 그 사랑 ן󰖑(헨/사랑, 잠 5: 19)을 항상 연모하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י󰗼󰘁󰔡󰙄󰗱󰖹 י󰙝󰖖󰚃󰗱וּ ב󰕗󰔞 הי󰔨󰕟󰔠 הי󰔨󰕞󰔠 י󰗼󰔣(아니 오바이 오하바이 에에하브 움솨하라이 임메자운니, 감 8: 17) 했다.

이 때 사랑 ב󰕘󰔞(에에하브/사랑) 의 3회 반복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ב󰕗󰔞 הי󰔨󰕟󰔠 הי󰔨󰕞󰔠(오바이 오하바이 에에하브, 잠 8: 17)라 하였다. 정직히 말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 ב󰕗󰔥󰖻(예아하아브/사랑, 잠 16: 13)을 입는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의 사랑 ה󰔧󰕟אַ(아하바아/사랑, 잠 17: 9)을 구하는 자가 사랑 ה󰔧󰕟אַ - ם󰕀(감 - 아하바아/사랑, 잠 9: 1) 받을 자이다.

이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다.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 άγάπών(아가푼, 요 14: 21)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사랑 άγάπών(아가푼, 요 14: 21)하는 자는 예수님에게 사랑 άγάπαώ(아가파우, 요 14: 21)을 받는 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 άγάπήσω(아가페수)하여 주시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사랑 άγαπην(아가펜, 롬 5: 8)이 확증되었다.

믿음의 조상들로 하여 우리들은 사랑 άγάπητοί(아가페토이, 롬 11: 28)을 입어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고전 14: 1)을 구하였다. 서로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고후 2: 8)하라 하신 하나님은 사랑 άγάπών(아가푼, 고후 12: 15)할수록 서로 사랑 άγάπμαί(아가푸마이, 고후 12: 15)을 받는 사이가 된다 하시었다. 주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엡 1: 15)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άγάπησεν(아가페센, 엡 2: 4의 그 큰 사랑 άγάπην( 2: 4)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엡 3: 18)을 아는 일은 이제 우리가 사랑 άγαπητα(아가페타, 엡 5: 1)을 입은 자녀로 하나님을 본받는 일이다.

사랑 άγαπητός(아가페토스, 엡 6: 21)을 받은 우리들은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빌 2: 2)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골 1: 4)을 듣는 일이다. 성령 안에서의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골 1: 8)을 듣는 일은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골 3: 14)을 더하는 일이다. 사랑의 온전한 띠로 매고 사랑 άγαπητός(아가페토스, 골 4: 7)을 받는 일은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벧후 1: 7) 을 우리가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요일 3: 1) 받아서이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사랑 άγάπην(아가펜, 요일 3: 16)을 갚아야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εΧει(엑세이, 요일 4: 16)하시는 사랑을 άγάπην(아가펜, 요일 4: 16)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 άγάπη(아가페, 요일 4: 16)이시다. 사랑 άγάπη(아가페, 요일 4: 16)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는 일이다.

 

 

(4). 사랑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궁한 사랑 ת󰔨󰕟אַ󰔮(베아하바트/사랑, 렘 31: 3)으로 대하시었다. 우리를 사랑 󰗗י󰚝󰔮󰕘󰔣(아하브티헤, 렘 31: 3)하시는 고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이 사랑 άγάπη(아가페, 고전 16: 14)을 행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사랑 άγάπη(아가페, 갈 5: 6)로 나아갈 때이다. 오직 사랑 δια τής άγάπης(디아 테스 아가페스, 갈 5: 13)으로 서로 종노릇 할 때 하나님은 이 사랑을 베푸신다. 사랑 έπί τῄ άγάπη(에피 데 아가페, 몬 1: 7)에는 서로 기쁨과 위로가 있다.

 

(5). 사랑함으로

 

믿는 사람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서로 사랑 םי󰕉󰕌(도딤/사랑, 잠 7: 18) 한다. 사랑 םי󰔩󰕗󰔤󰔯(바아하빔/사랑, 잠 7: 18)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희락한다. 형제 사랑 ὅτι άγα πώωμεν(오티 아가푸멘, 요일 3: 14)은 그 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사망에서 옮겨지는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후(19장) 부활(20장)하시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를 3회나 반복하시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다짐하신다. 사랑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마음이 아픈 상태를 말한다.

 

사랑함은 힘을 가진다. 사랑이 가득 든 사랑함은 아브라함의 아비라 함이다. 이 함은 하나님의 사랑함이다.

(6). 사랑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그들을 사랑하여 וּת󰔪󰕟󰔠󰕯(바아오하베투/사랑하여, 호 11: 1) 애굽에서 출 애굽시키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항상 지키는 일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일이다. 이 때에도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אָ󰔮(베아하베타/사랑, 신 11: 1, 13) 하는 일이다.

사람의 사랑표현은 야곱의 딸 디나를 사랑하여 ב󰕘󰔟󰖻󰔨(바예헤하브/사랑하여, 창 34: 3)할 때 쓰여졌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하여 ב󰕘אָ(아아하브/사랑하여, 창 37: 3)와 요나단이 다윋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וֹת󰔧󰕟אַ󰔮(베아하바아토/사랑하여, 삼상 18: 3)로 쓰이어 졌다.

우리는 서로 사랑 φιλαδελφίπια(필라델피아, 롬 12: 10)해야 한다.

다음은 요한의 사랑장이다.

 

* 사랑장 요한복음

요한 복음은 사랑을 전제로 2회의 의미가 예수님과 요한(1장) · 가나안 혼인 잔치에 물이 포도주로 되는 · 다시 거듭나는 의미(2장)와 예수님과 나사로 두 사람, 즉 2의 의미를 거듭나는 문제(3장)로 한다. 사마리아 여인의 물을 통한 거듭남의 문제(4장)를 베데스다 연못(5장)의 물로 한다. 오병이어(6장)와 초막절이 뜻하는 생명과 할례와 교육을 통하여(7장) 빚진 자의 후손(8장)은 소경이 눈을 뜨게(9장)해야 하는 임무로 선한목자(10장)를 든다.

나사로의 눈물(11장)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12장)하여 세족식(13장)을 행하심과 같이 다시 살아나게 하시어 씻어진다. 예수님은 고별설교(14장)로 헤어짐 기간이 있을지라도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붙어 있어야(15장)한다 하시면서 보혜사 약속(16장), 중보기도(17장)를 하시는 따뜻한 사랑 실천 후 기드론 골짜기에서 빌라도의 분명하지 않는 행보 속에서 체포(18장)되신다.

십자가 후(19장) 부활(20장)하시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를 3회나 반복하시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다짐하신다. 사랑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마음이 아픈 상태를 말한다.

 

요한복음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다양한 대상을 그 대상보다 더 먼저 말씀하시면서 사랑하여 고쳐 주시는 일이 전개된다.

신앙 작품 『진주』는 사랑을 주제로 한다. 『진주』(중부지방의 방언으로 된 작품)는 ‘진주’를 잃어버리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환상 중에 에덴에서 만나 그리스도의 신부인 모형 진주로 꾸며진다. 이레네우스(130-200)는 인류구속으로 천국입성의 끈을 마련 · 오림푸스의 메토디우스(311)는 『향연』에서 복음이 생명나무(잠 3: 18) 열매로 회복 · 시릴(130-200)은 세례로 낙원 회복 · 밀리노의 암브로시우스(339-97)는 영혼이 즐거움을 누리는 유쾌하고 질서정연한 세계 ·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속을 거쳐 종말이 되는 의미를 그리스도 때문이라 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천년왕국에 관심을 가졌다.

계시록에서 천년왕국은 재림과 최후심판 사이에 있는 천년의 기간을 하늘의 의미개념과 동일시(계 20:4) 한다. 천년의 ‘천’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삶 전체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여 마음껏 즐기는 은총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이다.

 



   메모
추천 소스보기 수정 삭제 목록
다음글 : 물의 의태어에 대한 하이퍼성 연구 (2013-03-21 08:39:41)
이전글 : 주일날 (2012-11-25 08:11:45)

[특별공지]댓글에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라도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사기를 꺾지 않게 각별한 유념 부탁드립니다. 글방의 좋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상, '빈정거리는 투'나 '험담 투'류의 댓글 등 운영자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한국문학방송의 가장 큰 운영방침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폄훼보다는 격려를! (작가님들께서는 좀 언잖은 댓글을 보시는 즉시 연락바라며, '언제나 기분좋은 문인글방'을 위해 적극 협조바랍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차원의 댓글도 아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 겸허한 자세로~!"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가지십시다. 기타 (작품 또는 댓글 중)욕설 또는 저속한 언어,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 등의 글도 삭제합니다.
◐댓글 말미에는 반드시 실명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실명이 없는 댓글은 무조건 삭제합니다.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