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6)-이용우 편
HOME 사이트소개 이용약관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독자회원등업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어서오십시오 인터넷문학방송 드림서치입니다
기본스킨 오렌지스킨 보라스킨 연두스킨 그레이스킨
2022년 5월 22일 일요일
홈메인 > 문학인 > 문단야화
2009년03월17일 00시00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6)-이용우 편
경포대에 달 뜨거든

“해지지 않은 신 한 켤레 못 얻어 신은 화가, 그러면서도 산화를 근심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나라의 재보를 아끼는 그의 마음을 나는 예술가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 황금찬 시인
이용우 화백의 호는 묵로(墨鷺)이다. 그는 익히 알고 있는 대로 한국화에서 솜씨가 뛰어났던 화가이다. 

그의 마직도(麻織圖)―여인이 베틀에 앉아 북을 던지며 바디를 치는 그림.―를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본인 자신이 무척 아낀다고 했던 그림이다. 그리고 <신관동팔경>, 이는 명주 스물다섯 자에 그린 그림인데, 강릉서 시작하여 저 삼척까지의 해안 절경을 화폭에 담은 그림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의 작품 중에서 가장 힘을 들인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그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에서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내가 묵로 이용우 화백을 처음 만난 것은 1946년 4월 20일 강릉농업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고 강당에서 취임 인사를 하고서였다. 강당에 올라서서 보니, 강당 양쪽 벽에 그림이 한 장씩 걸려 있는데 오른편에 걸린 그림은 백두산 천지요, 왼쪽에 걸려 있는 그림은 동해의 물결이 소리를 내는 듯한 바다의 그림이었다. 그 두 폭의 그림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인사가 끝나자 교무주임에게 물어 보았다.

최용근 교무주임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미술 강사로 나오고 있는 이용우라고 하는 분인데 조국 해방 기념으로 학교에 두 폭을 기증한 것이지요. 나는 잘 모르지만 화단에서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분이랍디다.”

나는 곧 이용우 화백을 찾았다. 그도 내게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서울에서 살았는데 전쟁이 자기를 서울에 두지 않아 그림도 그리고 살아갈 곳을 찾다가 강릉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강릉농업학교에서 시간을 좀 맡아 달라고 해서 일주일에 몇 번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분의 나이 40이 좀 지나 보였다. 그 후부터 이용우 화백이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만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었다.

그는 술을 대단히 좋아했다. 해가 지면 언제나 술을 찾아 거리로 나갔고, 그리하여 아는 사람을 만나면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당시 나는 한 잔의 술도 못 마실 때라 묵로의 술 마시는 것이 약간 불만이었다. 어느 땐가 술을 좀 삼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인생이 술도 안 마시고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남의 술 마시는 것을 나무라지 말고 같이 마시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추석이 되면 강릉 경포에 달이 좋다. 흔히들 말하기를 달뜨는 밤이면 경포의 달은 4개라고들 한다. 하늘에 달이 있고 바다에 있으며 호수에 달이 있고 술잔에 달이 있다는 것이다. 

추석날 오후에 만나자는 기별이 이 화백으로부터 왔다. 나는 약속된 곳으로 그 시간에 나갔다. 어느 무덤 옆 잔디밭에 앉아 나를 기다리다가 그는 크게 웃으며 “왜 좀 빨리 오지.”하며 일어섰다.

억새꽃이며 들국화 몇 가지를 꺾어 들고 오솔길을 걸어 경포호수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달구경을 나와 있었다. 그날만은 술을 마시지 않고 있었다. 달이 오르기 시작했다. 월주(月柱)가 서고 사람들은 징을 치며 환호를 올렸다. 묵로는 호수에 발을 넣고 머리에 물을 덮어 쓰며 “달님, 달님”을 연발하며 달 쪽을 보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달에 취해 있었다. 달도 웃고 있었다.

1947년 봄.  5월이었을 것이라고 기억된다. 밤 11시가 지났는데 누군가 내 집 앞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보니 묵로였다. 빨리 신을 신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밤중에 왔으면 술을 사라고 할 텐데 돈도 없고 해서 근심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신을 끌고 나가 보니 묵로는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빨리 오라는데…”하며 자꾸 걸어가는 것이다. 저쪽 언덕 밑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그리로 가자 묵로는 내 손을 잡고 언덕 위로 끌고 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묵로가 하는 대로 맡겨 두었다. 그는 언덕 위에 올라서더니 나를 대관령 쪽을 향해 서게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저게 보이지. 산화(山火) 말이야. 생명들이 불타고 있어. 자연이 죽어가고 있어. 국가의 재보들이 소멸돼 가고 있어. 어쩌면 좋다는 말이야.”
대관령에 산불이 밤하늘을 물들이며 타고 있었다.

“저걸 글로는 쓸 수 없나. 나는 초저녁부터 저 산불을 보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이리로 온 거야. 글을 써보란 말이야, 글을. 저 자연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겠단 말이야? ‘아니야, 글을 써보겠오.’하고 대답해 봐.”

산불은 하늘을 물들이며 타고 있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한참 말이 없다가 “이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림으로 저 산불을 그려 보시지요.” 했다.
“아, 그게 됐으면 내가 이리로 찾아왔겠어? 그림은 틀렸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재주로는 자연이 소멸해 가는 것을 그릴 수가 없단 말이야. 틀렸어. 나는 틀렸어. 내 그림은 틀렸어.”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무심히 묵로의 발을 내려다보니 낡은 지하족(일본 시대에 신던 운동화와 비슷한 신)이 해져서 묵로의 발가락이 불거져 나와 있었다.
해지지 않은 신 한 켤레 못 얻어 신은 화가, 그러면서도 산화를 근심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나라의 재보를 아끼는 그의 마음을 나는 예술가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묵로의 모습, 눈물에 젖어 있던 화가 이용우의 모습을 지금도 어제같이 생각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기를 예술과 인생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은 곧 그 사람이다. 사람이 시원치 않으면서 어찌 훌륭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으며 훌륭한 예술을 창조한 사람이 어찌 시원치 않은 사람이겠는가. 하지만 어떤 예술가에게서 흉이 발견되면 그 순간부터 그의 예술까지도 멸시를 받는 경우를 우리들은 보고 있다. 저렇게 술만 마시는 것이 무슨 예술가며 무슨 그림이야. 그렇게들 묵로를 멸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묵로의 또 한 세계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묵로가 내 집을 찾아왔다(그 당시 나는 묵로와 아주 가까이 살고 있었다).
“나, 내일 서울로 가는데 한 20일 가량 걸려야 오게 되겠어.” 하는 것이다.
“갑자기 서울엔 왜요?”

의아해 하는 나에게 “실은 서울로 가는 것이 아니고 아는 사람에겐 서울로 간다고 해 놓고 방에 앉아 한 20일간 그림을 그리려고 그래.” 하는 것이었다.
묵로는 그 이튿날부터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밖에서 그에게 이해를 구하고 화실에 들어갔을 때 묵로는 작업복에 담배와 술을 다 폐하고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나는 묵로의 예술가적인 면을 다시 보았다. 

■ 황금찬
시인. 《문예》와 《현대문학》등단.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외


(월간《문학세계》2009년 2월호 수록)

 

 

 

 




[ 조회수 6,385 ] [추천수 7]
 
황금찬 시인
황금찬 시인-한국문단의 큰 산, 원로시인
자료스크랩하기
DSB 기자 
이 등록자의 다른 자료 보기
문단야화섹션 목록으로
1950년대의 진주 학생 문학...
[조회수 16302] [추천수 270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13)-유...
[조회수 11767]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4)-...
[조회수 19372] [추천수 56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12)-김...
[조회수 11759] [추천수 55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3)-...
[조회수 12089] [추천수 55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11)-이...
[조회수 5096]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2)-...
[조회수 5563] [추천수 6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10)-이...
[조회수 5603] [추천수 7회]
1950년대의 진주 학생 문학...
[조회수 7216] [추천수 7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9)-김...
[조회수 5028]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1)-...
[조회수 5668] [추천수 6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8)-김...
[조회수 4957]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40)-...
[조회수 4899] [추천수 7회]
뚱뚱한 시골 아줌마와 이문...
[조회수 5995] [추천수 7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7)-신...
[조회수 5277]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9)-...
[조회수 5153] [추천수 7회]
이유식의문단비화(6)-조연...
[조회수 5135]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8)-...
[조회수 5367] [추천수 7회]
김광규, 김승옥, 김화영의 ...
[조회수 5218] [추천수 6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5)-김...
[조회수 5169]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7)-...
[조회수 5325] [추천수 6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4)-천...
[조회수 5139]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6)-...
[조회수 4967] [추천수 8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3)-김...
[조회수 5364]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5)-...
[조회수 6214] [추천수 6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2)-황...
[조회수 5499]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4)-...
[조회수 5128] [추천수 8회]
이유식의 문단 비화(1)-박...
[조회수 4933]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3)-...
[조회수 5624]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2)-...
[조회수 5114]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1)-...
[조회수 4990]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30)-...
[조회수 5367]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9)-...
[조회수 4977]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8)-...
[조회수 5630] [추천수 8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7)-...
[조회수 5551] [추천수 9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6)-...
[조회수 6385]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5)...
[조회수 5868]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4)...
[조회수 5950] [추천수 8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3)...
[조회수 5444]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2)...
[조회수 5733]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1)-...
[조회수 5484] [추천수 6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0)-...
[조회수 6140]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19)-...
[조회수 5609]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18)...
[조회수 5766] [추천수 7회]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10)-...
[조회수 6410] [추천수 7회]
{ {유저리뷰타이틀} }
{ {유저리뷰} }
{ {댓글페이지출력} }
다음자료 :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7)-이원수 편 (2009-05-05 00:00:00)
이전자료 :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25)―이상로 편 (2009-02-11 00:00:00)
 
 
 
최신 자료(기사)
[전자책] 행복의 징검다리 (전자...
[전자책] 동행 Ⅴ (전자책)
[전자책] 화석시대 (전자책)
[DSB앤솔러지] 한 생애를 돌아보며 (전...
[학자] 주채혁 사학가
[전자책] 우리는 존재를 그리워 ...
[전자책] 탐라국 바이킹배 고려 ...
[전자책] 스무네 고개 수수께끼 (...
[전자책] 현대 작가와 작품의 이...
[전자책] 소꿉 각시 [개정판] (전...
[전자책] 꽃밭에서 (전자책)
[전자책] 황수빈의 꿈 (전자책)
[전자책] 한때는 같은 풍경 속에...
[전자책] 거울의 헛기침 (전자책)
[수상] 김대호·이령 시인, 제2...
문인글방
시조 존재하지 않는 게시판입니다
게시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힘차고 영롱하...
『詩와늪』제18집...
'시를 부르는 소...
2012 '울산시조문...
《시와수필》창간 7주년 기념식 및 시상식 ...
'계양산 시노래 축제' 성료 (화보)
또 한해가 지났습니다. 정유년이 후...
우선 늦었지만 칠순을 맞이하신 ksny81...
정말로 죄송하네요. 게시판의 글방에 ...
낭송회 소식
문인글방
제100회 시사랑 노래사랑 기념 음악...
제12강 제1회 구마르트르 시낭송회의...
제1회 구마르트르 시낭송회
<2013년 청록파 전국시낭송대회 공고...
2013 한국낭송문예협회 신년하례회와...
시화전 소식
문인글방
원주여성문학인회 제 5회 정기시...
양천구청 후원 * 양천문학회 주...
양천문인협회 주최 * 양천구청 ...
양천문인협회 주최* 양천구청 공...
구로역사 자유통로에서 열린 시...

[한솔문학] 2019...
[영남문학] 창간...
[청일문학] 창간...
[시낭송] 창간호 ...
[문예플러스]창간...
[영남문학] 창간...
[청일문학] 창간...

베스트셀러
한국문학방송 출간 전자책 2014년 9월중 베...
2014년 4월 4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2014년 4월 2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2014년 3월 5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2014년 3월 4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오늘의 책
아카시아 ...
어머니의 ...
저녁 들에...
인생수필
조각보
인생 그 아...
애나
잔아
2020년 한국문학방송 신인문학상 원고(전자책 출간용)...
제3회 윤동주 시낭송대회 개최 / 2019.10.30 접수 마...
한국문학방송 신인문학상 작품집 2019년 제1차 공모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