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1. 문제 제기
국제화와 다문화(多文化), 다민족(多民族) 사회 추세인 오늘날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舊蘇聯) 지역의 고려인 문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실체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오래도록 모국(母國)과 단절된 채 너무 먼 철의 장막 속에서 갇혀 지내온 한인동족(韓人同族)들의 작품들이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님은 물론이다. 구한말 이래 한반도에서 소련으로 건너가서 연해주 해삼위(海蔘威) 땅에 신한촌이나 그 인근 지방에 육성촌 등ㅇ을 이루고 살다가 1937년에 중앙 아시아 등지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삶과 수난은 그대로 한겨레의 근현대사적 자상(自像)인 것이다.
더욱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키스탄, 키리키즈스탄 등지에 모여 사는 고려인 문화의 중심인 알마타는 중국의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주 못지않은 한글문학의 메카로서 중요시된다. 일찍이 원동(遠東)의 《선봉》신문을 중앙아시아 이주 이주에도 현지에 계승한 한글신문 《레닌기치 역시 크졸오르다를 거쳐 정착한 알마타에서 발행해서 전 소련지역에 배포해 왔으며 10여권의 한글 작품집도 간행해 온 고려인 문단의 중심지인 것이다. 특히 이곳 알마타의 고려인 문단은 1945년 광복 직후 소련 진주군을 따라 한반도 북반부에 입성하여 북한의 사회주의 문학을 소비에트 문학화(文學化) 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모델 역할을 해왔다.
그러므로 실로 분단(分斷) 60년 동안 이질화된 남북한 문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동질성(同質性)을 찾아 바람직한 한겨레 통일문학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한문학의 뿌리를 이룬 고려인 문학의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역시 알마타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한글문단과 여러분의 작품은 한민족문학사(韓民族文學史)의 소중한 자료로서 정리, 활용할 민족 문학의 실체(實體)이기 때문이다.
고려인 문단이 한국 현대문학에서 이렇게 중요한 연구 과제임에도 우리 학계나 문단에서는 영미문학 내지 중국 조선족 문학의 그것에 비해서는 적잖이 소외되어 온 편이다. 이 분야 연구 성과는 상대적으로 일천한 것이 사실이다. 공산권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자료를 금기시하여 폐쇄된 데다 이 분야의 중요성을 내쳐버린 결과이다. 그러다가 겨우 88올림픽을 전후한 무렵부터 고려인의 한글문단에 대한 김연수, 고성무 등의 소개와 개괄적인 글들이 장윤익, 홍기삼 등에 의해 문제 제기된데 이어 러시아문학 전공의 장실이나 알마타 현지의 김필영 등이 단편적인 논문으로 다루기 시작한 바 있다.
하지만 고려인 한글문단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접근은 2천 년대에 들어와서 한국문학 전공자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업에는 필자도 참여하여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현지에 수차 답사하고 실재의 텍스트를 섭렵하여 수편의 개별논문과 입체화된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장사선과 우정권 또한 학진 프로젝트로 알마타 현지 탐방 등으로 연구한 저서로 내놓고 있다. 그리고 김종회는 아나톨리 김 등의 작품을 통해서 본 고려인 문학을 비중 있게 다룬 해외 동포문학을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으로 엮어서 입체적인 접근을 계속하고 있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국외에서 활동하는 김필영이 방대한 자료 충심의 저서를 추가하여 평소 소홀시해 오던 이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위와 같은 중요성을 지닌 채 연구, 평가되고 있는 고려인 문단의 실체에 효율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접근방법들을 논의해 보기로 한다. 이들 고려인 문학 작품들은 이전의 경직된 사회주의 문학 이념과 검열에 따른 규제 및 흔히 장르의 비전문화 성향 등으로 적지 않은 미학적 취약성을 지닌 채로 옛 소비에트 연방(現 독립국가연합) 여러 곳에 산재(散在)해 있거나 혹은 묻혀 있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수난의 역정을 걸어온 이민족(異民族)으로서 낯선 땅에 이산 유랑(離散 流浪)하는 데서 오는 디아스포러적인 속성과 한사코 한글을 통한 민족 정체성(正體性) 지향 및 문화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 양상은 한겨레 문학의 또 다른 단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2. 연계적인 문단사 과정으로 파악
한국 근현대 문학사(文學史)의 인자(因子)일부를 내장(內藏)하고 있는 고려인 문단은 역시 구한말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험준한 역사 발자취를 따라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나 사할린 지역을 포함해서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친 시공간(時空間)의 입체적 시각(視角)으로 다루어야 마땅하다. 이를테면, 1920년대 말 당시 서울 문단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포석(抱石) 조명희가 러시아 땅에 망명하여 연해주 한인사회(韓人社會)에서 한글 문단을 개척해서 키운 수많은 제자 문인들에 의해서 30년대 말엽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 문단이 형성된 것이다. 연해주에서 조명희에 의해 문예 페이지를 열어 한글문단을 가꾼 《선봉(先鋒)》의 법통을 이어서 중앙아시아 이주(移住) 이후에 카자흐스탄 소재 한글신문 《레닌기치》(現 고려일보》)의 전후 80여년에 걸친 고려인 문학의 성과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이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인 일부 - 시인 조기천, 시인 명철, 평론가 기석복, 정율 등을 1945년 직후 평양에 입성(入城)시켜서 해방 조선의 소비에트 문학화(文學化)를 행한 사실은 중요한 사안이다. 그처럼 한반도의 문단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단은 직간접적으로 밀접한 공간적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감안할 때, 여러 해에 걸쳐서 방대한 관계 자료를 섭렵하여 저서로 펴낸 김필영의 고려인 문학사에서는 적잖게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이곳 고려인 문단은 역사적 문단사적으로 자생(自生)하면서 동시에 종횡으로 뿌리 깊은 한반도 문학과 연계되었는데 그의 저술에서는 이런 시공면(時空面)에 걸친 연결 관계의 문제점이 간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고려인문학은 한글과 현지어 작품을 통괄하여 세계 각 지역에 산재한 채 진행 중인 공간적 유대나 대비 관계도 고찰하여 보다 입체적인 시각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물론 기준이나 견해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생길 수 있겠으나 그 개괄적인 성격상 구소련지역에서 이루어진 고려인 문단과 그 작품성과는 다음처럼 시대 구분할 수 있다.
1) 고려인 소비에트 문학 건설기 (1925~1937)
구한말 이래 돈벌이나 독립운동 등으로 해삼위(블라디보스톡)와 소왕령(우쓰리스크) 등지에 모여 살던 조선 동포들 사회에 점차로 조선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 극장을 가진 데에 이어 초보적인 신문학을 시작한 단계이다. 연해주 지방의 한인들 언론지인 《선봉》의 문예 페이지 등을 통한 독자 중심의 다분히 습작 수준 정도의 고려인 초창기 문단을 가리킨다.
이 기간은 당시 한반도의 유력한 작가 조명희가 망명하여 그곳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글문학을 가르치고 손수 모범을 보이며 창작활동을 이끌어온 활동이 주축을 이룬 것이다. 조생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시「짓밟힌 고려」, 「해삼위에 와서」, 산문시 「아우 채옥에게」 등은 한글문학의 불모지인 당시 현지 문학 지망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김두칠, 김세일, 김준, 김광현, 림하, 박일, 연성용, 우제국, 태장춘, 한 아뽈론 등이 영향을 받아 글을 발표하며 고려인 문단의 주역으로 커 나왔다.
2)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및 수난기 (1937~1953)
예의 고려인에 대한 중앙아시아로의 무자비한 이주가 행해진 이후의 척박한 문화 여건과 스탈린의 공포 정치에 의한 탄압 시기를 지칭한다. 어쩌면 소련지역 고려인의 암흑기라 할 만큼 소련공민권의 지위도 확보하지 못한 채로 겨우 한글신문 《레닌기치》에 소박한 한글 작품을 발표해 오던 것이다. 더구나 소련의 경직된 이데올로기와 레닌과 스탈린에 대한 직설적인 송가적 내용은 고려인문단의 경직성을 야기하기 마련이었다.
바로 이주 다음 해에 발표한 강태수의 시 「밭 갈던 아씨에게」 작품으로 인해서 필화를 입은 시인의 경우는 조국이나 민족의식은 물론이요 고향에 대한 향수마저 금기로 당해야 했던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가 된다. 이주해서 터를 잡던 그곳 크졸오르다 조선사범대학 벽보신문에 게재한 이 작품에는 멀리 떠나온 원동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죄목이다. 이 문제로 반동으로 체포된 강 시인은 무려 스무 한 해 동안 감옥과 거주지에 연금된 삶을 살아야 했던 사실이 그것이다.
3) 재소 고려인 문학 부흥기 (1953~1991)
스탈린 사후(死後) 개선된 재소(在蘇) 고려인에 대한 지위 향상과 더불어 당이나 정부 등에서 고려인의 문단활동을 지원받고 해서 활성화된 시기이다. 후르시초프 집권에 의한 다소의 인권보장 추세 속에서 북한에서 선발되어 모스크바 유학 중 탈북(脫北)한 여러 사람이 새로이 고려인 문단에 합류한 일도 참고가 된다. 당시 사회주의 종주국에서 생활하던 중에 북한의 정치 제도나 사회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탈북하여 진실을 밝히고 참되게 살자는 의미로 본명 대신 새로운 필명을 사용한 삼진 문인(삼(三眞文人-ㅡ리진, 한진, 허진)의 가세 역시 두드러진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기간에는 김준의 시집을 비롯한 일부 고려인 문인(文人)의 창작집과 『시월의 해빛』(1971), 『오늘의 벗』(1990) 등, 여러 문인의 공동 작품집들을 펴낸 성과가 눈에 띈다. 예의 고르바초프에 의해 행해진 거대한 소연방(蘇聯邦)의 해체와 개혁, 개방 물결에 힘입어 소련 체제 막바지에 모처럼 다소 표현의 자유가 완화된 가운데 고려인 한글작품집 출간의 붐을 이룬 것이다. 더욱이 이즈음에 와서 그야말로 까마득하게 갈 수 없을 정도로 막혀 있던 한반도가 새롭게 개방되고 발전된 모국으로 부상한 가운데 재래의 친선관계이던 북한보다는 남한과 밀접하게 왕래하고 문학교류를 원활히 하게 된 현상은 여기에 특기할만하다.
4) 알마타 한글문단의 위기와 재정립기 (1991~현재)
끝으로 1980년대 말엽, 소련의 개혁, 개방 여파로 구소련(舊蘇聯)이 붕괴, 변모되고 고려인 작품의 모국(母國) 왕래 길이 열린 대신에 소련 한글문단은 심히 위축된 기간을 이른다. 당에서 출판비 등을 지원받아 내던 작품집들이 끊기고 한글 신문 독자가 격감된 나머지 레닌기치》가 축소되어 《고려일보》로 바뀐 채 새 국면에 이른 것이다. 이런 한글문단 쇠퇴 현상은 자꾸만 한글 해독 능력을 지닌 세대들의 노화와 별세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려인 문단이 노화와 한글 해독자 격감 현상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이전의 고려인 문단과는 상이하게 새로워지거나 재건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외면할 수 없다. 중앙아시아 현지의 원로 문인인 연성용, 정상진, 양원식, 허진 등의 작품집들이 서울에서 출판되어 고려인 문단의 양적 증가현상을 보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노쇠해서 소멸해 가는 기성 고려인 세대에 대신해서 최석 시인 경우처럼 새로 서울에서 이주하여 그곳 알마타 등지에서 한글로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한글세대들의 합류로써 고려인 문단의 재정립을 맞게 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상의 시대별 상황과 변천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한미족문학사의 일부로서 실체화된 고려인 문단의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마땅하다. 방금 지적했던 방대한 ‘고려인 문학사’ 작업은 역시 초창기 단계를 소략(疏略)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겠다. 우리는 앞으로 위의 저술사항을 보완해서 이해하는 태도가 바람직할 것이다.
3. 고려인 문인에 대한 유형별 접근
모름지기 한민족의 통일 문학사 작업에 직결된 만큼 보다 효율적인 텍스트 조사와 연구 성과를 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고려인 문인에 관한 어느 정도의 구분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근래 이 분야에 이론접근과 현장 탐방 양면에서 필자 나름대로 실체험한 바를 주로해서 고려인 문학 접근문제를 고려하면 필자는 편의상 다음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함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상이한 성장환경에 따른 체험의 차별성과 함께 세대의 차이도 아울려서 살필 수 있는 셈이 된다.
1) 연해주 계열 문인 - 고려인 문단 1세대 및 1.5세대
본디 원동(遠東)이라 불리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자라거나 한반도(韓半島)에서 출생한 뒤 그곳 신한촌 등에 가서 지내다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移住)해 와서 작품 활동을 하던 문인들이다. 강태수, 태장춘, 김광현, 김준, 연성용, 조기천, 김기철, 기석복, 전동혁, 정상진 옹 등.
거의가 이미 작고했거나 한 두 분만 원로문인(元老文人)으로 활동하는 고려인 문단 1세대 및 1.5세대급 문인을 지칭한다. 이들 선배문인들은 본디 구소련 연해주에서 태어난 1세대나 한반도에서 출생하여 어릴 적에 부모를 따라 연해주에 건너와 살던 1.5세대처럼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연해주의 신한촌(新韓村) 풍정과 아무르 강변의 낭만은 물론 혹독한 이주열차의 악몽을 실체험한 당사자들로서 고려인 문단의 중추이다. 현재 알마다 현지에 생존해 있는 평론가 정상진(필명: 정석) 경우가 가장 연장자격인 처지이다.
2) 사할린 계열 문인 - 고려인 문단 2세대
대개 일제(日帝)강점기에 징용으로 사할린 섬에 가서 일하던 당시의 동포 자녀들로서 해방 이후에 점차 소련권내에서 고려인이 많이 모여 사는 카자흐스탄 공화국이나 우즈벡키스탄 공화국의 수도로 합류(合流)한 문인들이다. 이정희, 정장길, 최영근, 남경자, 등. 이들은 거의 노쇠해간 원동출신 일 세대에 이어서 현재 알마타 고려인 문단의 중심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문인들은 원동에서 이주해온 문단 1세대 못지않게 부모나 조부모 등으로부터 익힌 모국어와 한글 구사력을 통해서 알마타의 한글문단 발전에 이바지해온 셈이다. 여기에는 일제 말엽에 교포 광부의 아들로서 현재 사할린에서 한글과 러시아어 대역(對譯)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하고 있는 허남령 경우도 포함된다.
3) 탈북자 계열 문인 - 고려인 문단 2세대
조국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아픔을 겪는 한반도 휴전 무렵을 전후하여 앞에서도 살핀 바 소련에 유학 중에서나 혹은 벌목장 등에서 일하다가 탈북(脫北)하여 여러 소련(蘇聯)지역을 전전하다가 특히 알마타에 주거지를 두고 활동해 온 문인들을 이른다. 예의 모스크바 유학생이던 리진(이경진), 한진(한대용), 허진(허웅배), 양원식, 맹동욱과 스스로 두만강을 건넜던 박현 및 국외 벌목장에서 남은 남철 등.
극도의 분단 이데올로기 체제 하에서 숱한 규제를 벗어난 대신, 뼈저린 가족 이산의 아픔과 고독 속에 살아오면서 또 다른 금기를 당해 온 이들 작가들은 앞의 연해주 계열이나 사할린 계열 문인들에 비해서 모국어 활용 정도가 원활한 편이다. 또한 이들 문인들은 태어난 본디의 고향이 한반도였다는 점에 거의가 소련 태생인 전자들과는 상이한 속성을 지님은 물론이다.
4) 정착한 서울 계열 문인 - 추가로 편입된 신세대
예의 88올림픽을 전후해서 한국이 공산권과의 교류를 시작하고 소련 또한 개혁, 게방의 물결이 일자 1990년대 이후 구소련 지역에 나가 사는 남한 출신으로서 그곳 고려인 문단에 합류한 문인들이다. 거의 서울에서 성장하며 정상적인 수련과정을 거쳐서 문단활동을 시작하다가 그곳 문단에 새롭게 편입된 문인들로서 기존의 고려인 문인들과는 차별성을 드러낸다. 우선 모국어 활용이 여느 고려인들에 비해서 유창할 뿐 아니라 모국과의 유대나 왕래도 원활한 것이다.
현재 고려인 문단의 본거지인 중앙아시아 알마타 경우만 하더라도 현지에서 여러 모로 참여활동을 펴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현지 고려인 문단의 새로운 중흥을 모색하고 있는 최석 시인과 카자흐스탄의 대학에서 강의를 겸하고 있는 김흥준 평론가, 문희권 번역문학가, 현재호 수필가, 그리고 현지서 서울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김병학 시인 등. 앞으로도 점차 증가하여 활성화될 이들 문인들은 재래의 침체한 고려인 문단을 계승하여 일신할 옛 소련지역 문단 부활의 신세대 세력들로서 뿌리 깊은 재외(在外) 한인문학의 발전에 기대를 모은다.
5) 기타 현지어(現地語) 계열 문인 - 고려인 문단 3세대
이 분류에는 중앙아시아 여러 곳에서 태어나서 소비에트 사회문화와 언어에 동화된 고려인 2, 3 세대들 가운데 일부 한국어와 현지 러시아어에 익숙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거의 한국어에는 서투른 대신 현지 러시아어를 통해서 작품 활동을 해나온 경우가 해당된다. 여기에는 이미 작고한 장편 소설가 김 로만, 리 드미뜨리, 아동소설가 강 게느리에타를 비롯해서 현역의 저명작가인 김 아나톨리나 박 미하일을 들 수 있다. 또 현역시인으로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박 보리쓰, 리 영광(리 웨체슬라브 보리스비치), 그리고 알마타의 리 스타니슬파브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려인의 혈통을 이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체로 소속 국적(國籍)에 못지않게 중앙아시아 문화에 길들여 있어서 여느 한글 작품과는 판이한 문학 세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는 해외 한인문학임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사 범주로 삼기에는 어느 정도의 단서와 제한점이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모국어 대신에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러시아를 익힌 이들은 앞으로 한글 사용의 현지 문인이 갈수록 줄어드는 자리를 메우면서 더욱 많은 고려인 문단의 판세를 좌우해 나갈 신진세력임에 틀림없다.
4. 발표 매체별 접근, 정리
역시 특수한 옛 소련지역에서 형성된 고려인 문단의 문인과 작품 원전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올바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발표 매체별로 접근함이 바람직하다. 엄격한 검열과정과 열악한 출판여건 및 규제가 많은 까다로운 고려인 문단의 글쓰기 조건들을 감안할 때, 우선 고려되어야 할 전제사항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특수한 옛 소련지역에서 이루어진 고려인 문학을 제대로 다룰라치면 여러 문단여건이 원활한 한국이나 영미문학에서 행하는 방법과는 상이한 접근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사실 필자 자신도 구소련 시절에 발표된 한글 작품들을 수집, 조사하기 위해 여러 번 연해주와 사할린의 도서관이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알마타, 우즈베키스탄 타스켄트 소재 도서관 및 서점 등에 들렀지만 정작 관계 자료는 극히 일부분뿐 목록에서 발견되지도 않았다. 고려인들의 한글로 된 작품집들은 오히려 현지 고려인 개개인으로부터 직접 확인하고 구하여 거의 입수할 수 있었다. 앞으로 구소련 시절의 고려인 한글문학에 대한 원활한 연구를 위해서는 보다 개방적이고 종합적인 자료의 검토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터이다. 여기에서 고려인 문학 자료의 체계화를 다루는 이유도 이런 점에 있다.
우선 정기간행물(신문, 문예지 등)과 단행본(개인작품집, 공동작품집)의 두 부류로 나누어 다루어 본다. 그리고 이들 두 가지 부류에 속하지 않은 대로 압수나 보류 혹은 본인의 기피 등에 따른 이유들로 묶여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일부 문제 작가 유고(遺稿)의 정리 대응문제도 감안해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조명희가 연해주에서 고려인문학의 씨를 뿌리며 집필했던 유고로 일컬어지는 장편소설 『붉은 깃발 아래서』와 『만주빨치산』의 확인, 평가 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1) 정기간행물류
구한말 이후 연해주애서 발행되어온 한인들의 각종 국한문 혼용의 신문들은 적지 않았다. 비록 좁은 지면과 독자수의 제한 및 출간비 부족 등으로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 신문들은 한인들의 살아있는 눈과 귀 이상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문예면은 소외된 채로 《권업신문》에 시 몇 편을 발표한 외배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오랜 지령(紙齡)을 유지하며 연해주로부터 중앙아시아 이주지에까지 끈끈하게 맥을 이으면서 겨레의 일체감을 이끌어오던 《선봉》과 《레닌기치》가 고려인 문단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은 큰 것이었다. 실로 1930년대 초엽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80여년ㅇ을 이어온 이 한글신문은 고려인 문단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함께 실로 고려인의 정체성 지키기와 민족적 지향점을 담보한 보루였었다.
그런 만큼 대상지역인 옛 소련지역 내에서 오래도록 이루어져 온 고려인 문단은 무엇보다 대표적인 한글신문인 《선봉》과 《레닌기치》의 문예 페이지들을 두루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신문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열세인 대로 잡지성격을 지닌 《노력자의 조국》 등의 실체에도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선봉》과 《레닌기치》
한진 희곡집, 『한진 희곡집』 ,알마아따, 사수싀출판사, 1988. (국판 총 160쪽).ㅡ소비에트 고려인 문단의 희곡으로는 첫 작품집으로 국립조선극장에서 공연했던 한진의 희곡과 창작희곡 2편을 실었음.
1923년 3월 1일에 <三月一日>이란 이름으로 해삼위에서 벽신문 형태로 창간된 《선봉》은 혁명의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며 주간과 격주간 또는 격일간으로 발간해온 한글신문이다. 문화면에 문학특집이 마련되기는 25년부터였으나 투고자가 적어서 존폐를 거듭하던 중에 연해주에 망명온 조명희가 문예페이지 지도를 맡은 1928년 이후 들어서 활성화되었다. 여기에는 조생(조명희)의 여러 신작시 발표를 비롯해서 이에 영향 받아 새로 모국어와 문학에 눈을 뜬 젊은 문학도들이 많이 참여하여 습작품을 투고하였다. 강태수, 김준, 조기천, 연성용, 태장춘, 한 아나톨리 등의 신작들이 이 신문지상에 자주 게재되어 《선봉》은 고려인 한글문학의 기초를 닦는 텃밭이 되었다.
또한 《레닌기치》는 1937년에 행해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이후 그곳에서 간행한 고려인 한글신문으로서 《선봉》의 후신이다. 원동에서 이주할 때 신문사의 윤전기까지 옮겨온 그들은 이주 이듬해인 1938년 5월에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창간하였다. 처음엔 신문규모나 독자층 등, 열악한 여건이 점차 발전되어 전 소련 지역과 북한에까지 배포되어 그 영향력을 배가시켜갔던 것이다. 이 신문에는 매월 두세 번의 문예 페이지를 마련하여 원동으로부터 옮겨온 고려인 문인들의 한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여 고려인 문단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온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한 바대로 북한문학을 소비에트 문학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오늘의 한국 현대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왔음도 사실이다.
《레닌기치》에는 신문 속성상 일회용 시편이나 단편 말고도 중,장편 작품을 실어서 단행본 출판이 쉽지 않은 고려인 문단에 기여 하는 바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김세일의 장편 역사소설 『홍범도』(1968~69)와 김기철의 중편소설 『이주초해(1990,4~9)』 밖에 여러 작품들이 연재되어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두칠의 장편서사시 『송림동 사람들』(1974. 12. 25ㅡㅡ27), 장윤기의 단편소설 『두 할머니』(1972. 12. 30ㅡㅡ 31)도 발견된다. 다음처럼 본디 시 창작 전문인 시인들이 즐겨 쓴 단편소설들도 참고 된다. 리진의 「우리 마당」(1961.1.30ㅡ31), 김광현의 「해명」(1962.8. 10ㅡ12), 김광현의 「호두나무」(1963. 5.14.ㅡ15.) 등이 그것이다.
《로력자의 고향》
해당 기간의 한반도에서와는 대조적으로 당시 소련지역에서는 문예지가 적은 형편이지만 “ 1934년에 쏘베트 조선인 저자들의 첫 문예작품집 《로력자의 고향》이 하바롭스끄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당시 연해주에 망명해 와 있던 포석(抱石)이 손수 지도해서 점차 중앙아시아 한글문단의 주축을 이룬 문학 지망생들의 습작품들이 많이 실려 실로 고려인 문단의 못자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초기 고려인 문학 지망생들의 작품을 한데 묶은 이 작품집에 관한 당시 기사는 중요한 증빙자료가 되고 남는다.
원동 고려문단의 첫 수확인 문예선집 《로력자의 고향》이 하바롭쓰크 원동국영출판부의 00으로서 나오앗다. 내용으로는 김와실리, 막심 고리끼는 젊은 작가에게 무엇을 가르치엇는가? 론문과 <하산>(단편소설)과 진우이 <곡물도적>(희곡)과 최호림, 조동규, 한아나톨리, 에미사오, 전동혁, 김인섭, 태장춘, 강주먹, 유일룡, 조명희 여러 사람들의 시, 놀애, 긔타산문들이 130페ㅡㅡ지에 니르도록 긋득 실리엇다. 값은 1루 70전.
연해주 고려 뮨사 쎅찌야에서는 앞으로 사업을 더 힘잇게 하여 나아가기 위하여 ㅡㅡㅡ(중략)
《로력자의 고향》제2호에 실릴 문예원고를 수집하니 글쓰는 동무들! 속한 시일안으로 원고를 보내어 주시오. 『 로력자의 고향에 실릴 원고라고 쓰어서 『선봉』신문 편집부로나 하바롭쓰크 원동 국영출판부루 보내시오.』》
위의 1935년 1월 중순의 <문예통신> 내용을 보면 선봉신문사에서 편집해내는 이 문학 지망생들의 문예선집은 어쩌면 알마타에서 1980년대에 수차 간행해낸 기성문인들의 공동 작품집 성격과 유사하다. 연해주의 고려인 문학 지망생들이 출판한 제2집은 1937년 8월에 출판되었음을 이 작품집에 발표한 조명희의 여러 글에서 발견되고 있다. 《로력자의 조국》이라고 이름 붙여진 제2집에는 머리말과 《로력자의 고향》 1집에 실린 작품들에 관한 평설문을 싣고 있어 참고가 된다. 아직 필자는 물론이요 우리에게는 이 문예선집 원고를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직전에 발행된 이 텍스트도 러시아의 문서보관소 등에서 열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옛 소련 시절에 연해주에서 한사코 이런 한글 문예선집을 펴내서 고려인문단을 가꾸어온 취지와 보람을 다음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 문예의 꽃다발이 두 번째 나아간다. 빛깔이 찬란하지 못하고 향기가 높지 못하다고 탓하지 말아라.
압박의 조선에선 입도 못 벌릴 ㅡㅡㅡ혁명과 건설에 끓는 말, 원쑤를 견우는 칼 같은 말들이, 이 말의 꽃들이,
원동 조선인 로력자들의 예수의 처녀지에서 피기 시작한다.
팔십년전부터 봇짐 메고 도망온 사람의 자손들이 오늘에 이 꽃을 피울 줄이야 누가 뜻하였으랴?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해 둘 바로는 이전인 1910년대에 이미 노령 치따지역에서 한인들이 발행하던
국문 월보형태의 잡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근래 윤홍로가 조사하여 제기했던 것처럼 이광수가 한때 러시아 치따에서 지내며 주필을 맡았던 《대한정교보》(1912.1 2.~1914. 10.)가 그것이다. 이광수는 이 월보에 손수 여러 편의 시편도 게재헸으나 일시적 발표에 그친 기성 문인의 작품 활동이었으므로 연해주에 정착해 지내면서 문학 수련을 했던 여느 고려인 문단활동 경우와는 상이하다.
《고려문화》
이전과는 달리 구소련이 해체되고 한글을 해독할 세대층이 쇠퇴함과 동시에 기성 고려인 문인들이 줄어든 대신에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일부 고려인 문단인과 더불어 위에서 열거했던 바, 구소련 개혁, 개방 후에 한국에서 중앙아 현지에 들어가 살며 활동하는 몇 문인들이 펴내는 유일한 한글 문화예술지이다. 2006년 11월에 중앙아시아문인협회 이름으로 카자흐스탄의 알마타에서 창간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계간으로 간행되고 있다. 이 문예지에는 기성의 고려인 문인 일부와 서울에서 합류한 신진들은 물론 서울의 일부 문인들에 의한 찬조 원고를 싣고 있다. 신국판 305쪽 분량으로 서울에서 출간된 창간호의 권말에는 <고려인 문학의 연구논문 및 작품목록>도 싣고 있어 참고가 된다.
2) 단행본류
신문 외로는 문예 잡지가 드문 이 무렵 소련지역에서는 오히려 소책자 형태로나마 개인 작품집과 공동 작품집을 여러 권 간행해서 눈길을 끈다. 그런데, 이들 단행본에 실린 시나 소설 및 희곡 작품들에는 흔히《레닌기치》에 게재된 경우가 많을 뿐더러 개인 작품집이나 공동 작품집에도 서로 재수록된 중복성이 적지 않으므로 이를 감안하여 어떻게 첨삭되었는가 하는 점도 검토해야한다.
이들 단행본류를 나누어 보면 다음처럼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개인 작품집과 공동 작품집으로 분류하여 순서를 정하되 되도록 장르별, 발행 연도 차례로 정리해본다. 참고로 옛 소련의 고려인 문인들이 서투른 대로 한글로 써낸 해당 작품집의 규모를 측정하기 위해서 대강의 판형과 쪽수의 분량도 적어둔다.
(1) 개인 작품집 (국판 570쪽). 1928년에 소련 영토인 연해주로 망명한 포석 조명희가 일본 유학기나 한반도 문단서 발표한 시집 『봄 잔디밭 위에』, 소설 「땅 속으로」「낙동강」작품과 소련에서 쓴 시「짓밟힌 고려」 「10월의 노래」등을 모은 퍽 호화 장정의 단행본임. 1938년에 스탈린 치하에서 일본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포석이 복권된 후 포석의 제자 겸 처남인 황동민이 조명희 탄생 65주년을 맞이하여 소련 당국의 지원으로 출판한 책자임. 싸할린서적 출판사, 유즈노 사할린스크, 1961.(국판, 31쪽)ㅡ드물게 사할린에서 출판한 소책자의 한글소설임. 이야기는 1940년 말엽에 반도로부터 사할린(화태)지방의 한 제지공장에 취업하여 일인 기술자들로부터 학대를 당하던 최운보 3형제가 소련 해방군에 의해서 풀려나는 이차대전 후의 당시 상황을 다루고 있음.
황동민 편, 조명희『선집』, 모스크바, 소련과학원, 1959.
장윤기 중편소설 『삼 형제』,
김준 장편소설 『십오만원 사건』알마아따 , 카자흐 국영 문예서적 출판사, 1964. (국판, 총358쪽)ㅡ1919년 만주 간도에서 최봉설, 김성일, 림국정 등의 여섯 사람이 한국의 독립군 자금 마련을 위해 만주 철도부설에 필요한 자금을 운반하는 길목에서 일본의 은행 돈을 탈취했던 실화를 다룬 실명소설임. 구소련의 소비에트 고려인 사회에서는 최초의 한글 장편소설로서 항일적인 면이 짙음.
김준 시집 『그대와 말하노라』,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77. (반국판, 총239쪽)ㅡ 중앙아시아 뿐 아니라 소비에트 전역 고려인 문인으로서는 정부나 당의 공식적인 지원금으로 펴내는 첫 번째 개인 작품집으로서 대부분 서정성 깃든 미발표작들을 싣고 있음. 여기에는 「나는 조선 사람이다」, 「고드름」, 「직녀」 등 218편을 옛 고사를 곁들여 부연, 설명하고 있음.
연성용 종합창작집 『행복의 노래』,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3. (반국판 392쪽)ㅡ극작가 연성용의 시 75편의 시편과 「금빛 꾀꼬리」, 「영원히 남아 있는 마음」의 소설 2편, 「자식들」, 「강직한 여성」, 「양산박」등, 희곡 3편이 실려 있음.
김준 시집 『숨』,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5. (반국판, 총 191쪽)ㅡ김준 시인이 작고한 후에 그의 미발표 유고작 184편을 모은 것인데 구소련 체제 밑에서 소련 작가동맹 조선분과장을 맡은 만큼 이 작품집에는 이념적인 행사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음.
김광현 시집 『싹』,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6. (반국판, 총 272쪽)ㅡ여기에는 김광현의 시 「내 고향」, 「별들을 우럴어」,「삶을 위해」, 「제 나라 강토를 지켜」등, 86편을 위시해서 서사시 5편, 단편소설 1편을 함께 싣고 있음.
김기철 소설집 『붉은 별들이 보이던 때』,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7.(반국판, 총 167쪽ㅡ이미 《레닌기치》에 발표된 소설 작품 「붉은 별들이 보이던 때」,「금각만」, 「복별」을 함께 묶어낸 것임. 중단편으로서 1920년대 초엽에 연해주에서 백군파에 맞서 적군파로 싸운 고려인들의 빨치산 투쟁들을 다룬 내용들임.
한진 희곡집, 『한진 희곡집』, 알마아따, 사수싀출판사, 1988. (국판 총 160쪽).ㅡ소비에트 고려인 문단의 희곡으로는 첫 작품집임. 국립조선극장에서 공연했던 「산부처」,「토끼의 모험」와 한진의 창작희곡인 「의부 어머니」,「나무를 흔들지 마라」를 실었음.
리진 시집 『해돌이』,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9.(국판 255쪽)ㅡ소련 유학을 마치고 망명했던 시인(리경진)의 무국적자로서의 고독과 귀향의지를 담은 수많은 시작품을 묶었음. 나이테라는 의미의 이 시집에는 「악사칼」, 「잘 있거라, 증가르산아」, 「유르따의 밤」 및 이야기시 「신돈」등의 148편이 당시로서는 좋은 장정에 고급 지질로 되어 있음.
여기에 열거한 여러 단행본 가운데 장윤기의 중편소설과 조명희 선집을 제외하고 난 나머지 책(작품집 등)은 모두 알마타의 작가(사수싀)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역시 중앙아시아 알마타가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못지않게 고려인 한글문학의 메카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을 전후하여 구소련 현지가 아닌 서울 등지에서 여러 고려인 문인들의 작품집들이 출판되었는데 그것의 중앙아시아 현지 발표 작품과의 신, 개작과정이나 중복 여부의 확인 검토가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참고로만 언급해 둔다.
(2) 공동 작품집
한편 구소련 해체를 전후한 무렵에 전 소련지역에서는 극히 일부 문인들에게만 소련 공산당・당국에 의해서 작품집이나 소설전작을 출판해 주었을 뿐, 나머지 대다수 고려인 문단인들에게는 합동게재 형식의 공동 작품집을 내고 있다. 출판비 부족과 열악한 문화계 사정 내지 제한된 문인과 작품 수효의 영세성에 의한 종합 요인 때문으로 보인다. 그나마 태반이 국판 200쪽 안팎의 소책자 형태로 이루어진 책이라서 많은 분량을 싣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수난 속에서 옛 소련 사회의 78개 민족어 가운데 한사코 한글로써 꾸준히 소담한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온 이 작품들은 한겨레문학사의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여러 문인의 글을 한데 묶은 공동 작품집을 편의상 몇 가지로 구분해서 제시해둔다. 각각 시나 소설 등의 한 장르를 묶은 것은 종합으로,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의 여러 장르를 함께 묶은 것은 합동으로 모아서 연대순으로 정리하였다.
종합시집 박일 편『조선시집』, 크솔오르다ㅡ알마타 카자흐 국영 문예서적 출판사, 1958. (반국판, 총 448쪽)ㅡ소비에트지역에서는 최초의 한글 시집으로서 소련 정부와 당에서 출간한 단행본임. 대체로 한국시 전반에 대한 주요 시인들의 작품을 교양적으로 소개하고 있음. ‘고전 조선시편’에서는 정몽주의 「단심가」, 황진이의 “청산리 백계수, 정철 등의 시조 50여 편과 구전동요 「호랑장군」, 김삿갓의 「삿갓」‘고대 녀류 시가 선집’에서는 허난설헌의 「채연곡」등 50여 편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특히 ’현대 조선 문인 시편‘에 김소월의 「금잔디」, 조명희의 「짓밟힌 고려」, 박세영 시 여러 편씩, ’쏘련 조선인 작가 시편‘에 계봉우, 태장춘, 리은영 등 30여 명의 당시 고려인 작품들이 실려 있음.
합동작품집 『시월의 해빛』, 알마아따, 작가 출판사, 1971. (국판, 총 359쪽)ㅡ구소련에서 발간된 최초의 한글로 된 공동 작품집으로서 조명희의 시 「시월의 노래」, 조기천의 「두만강」(초) 등 그때까지 활동한 소련 조선인 시인, 작가, 평론가 등 27명의 작품을 실었음. 이 작품집에는 여느 공산권 경우와는 달리 보기 드물게 작품 게재 문인의 간단한 푸로필을 싣고 있어 고려인 문인에 대한 정보를 참고할 수 있음.
합동작품집 『씨르다리야의 곡조』,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75. (국판, 총 237쪽)ㅡ중앙아시아 지역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초기정착지인 크즐오르다를 거쳐 젖줄처럼 흐르는 강 이름을 딴 한글 작품집임. 여기에는 모두 25명의 고려인 문인이 발표한 시. 소설, 희곡 등을 대개 두 장르에 걸쳐 싣고 있음. 강태수의 시 「아리랑」, 김기철의 단편 「첫사귐」, 채영의 발췌희곡, 한병연의 오체르크 등.
합동작품집 『해바라기』,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2. (국판, 207쪽)ㅡ당시 21명의 현역 고려인 문인들 작품을 여러 장르에 걸쳐서 수록하고 있음. 강태수의 장편서사시 「시월의 밤」, 김두칠의 산문시 「송림동 사람들」, 연성용의 단편 「영원히 남아 있는 마음」, 김빠웰의 「쟈밀라, 너는 나의 생명이다」,남경자, 조영의 수필 및 장윤기의 실화 등.
종합시집 『꽃피는 땅』,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8. (반국판, 총 222쪽)ㅡ당시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에서 한글로 시작 활동을 하는 시인 20명의 시 작품 서너 편씩을 모은 아담한 시집임. 조명희의 「시월의 노래」, 조기천의 「휘파람」, 명월봉의 「조국의 품」 등.
종합소설집 『행복의 고향』, 알마아따, 사수싀 출판사, 1988. (국판, 142쪽)ㅡ구소련 당시에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활동하던 고려인의 한글소설을 모은 것임. 강태수, 김광현, 량원식, 리진, 연성용, 리정희, 정장길, 남철 등의 작품이 실려 있음..
합동작품집 『오늘의 빛』, 알마아따, 자수싀 출판사, 1990. (국판, 198쪽)ㅡ소연방이 붕괴된 무렵에 정부 기관에서 출판한 마지막 작품집임. 여기에는 한진의 단편소설「공포」, 박미하일의 중편 「밤샐 무렵」,그리고 강 알랙산더, 리진의 소설이 발표되었음.
위와 같은 형태로 출판되던 단행본류가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였던 소련이 해체되고 15개 독립국가연합으로 전환된 이후로는 그나마 개인출간은 물론이요 공동 작품집마저 출판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는 물론이요 러시아마저 출판 재원이 없을뿐더러 그런 한글작품을 해독할 독자층이 격감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나마 원활한 한글 구사력을 지닌 원로급 작가들은 거의 다 노쇠해 버린 처지라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5. 고려인의 한글작품과 러시아어 작품
여기서는 고려인으로서 문학작품활동을 하되 그 문인(文人)이 한글로 쓰느냐, 아니면 현지 러시아(카작어 등도 포함) 말로 쓰느냐 하는 사용언어별 경우가 문제된다. 이를테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키스탄 국적(國籍)을 지닌 채로 한국어와 한글을 구사할 줄 아는 예의 연해주계 문인이나 사할린계, 또는 탈북자 계열 문인들 작품은 한국문학으로 그렇게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 혈통을 이어받은 고려인이면서도 모국어(母國語)와 한글 사용에 서투른 나머지 현지어(現地語)만 활용하는 일부 중앙아시아 나라 문인들 작품은 차별성 문제가 대두된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은 실제의 사용 언어별로 기준삼아 다음의 두 갈래로 구분해서 파악함이 현실적이다. 이럴 경우, 과연 그 문인과 작품들을 한국문학의 범주로 넣어서 한겨레 문학사(文學史)에 편입될 수 있는가 여부를 논의할 대상도 된다 하겠다.
1) 한글로 쓴 작가·작품 경우
일찍이 원동(遠東)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이주(移住)해 온 이래 옛 소련 시절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대다수 고려인(高麗人) 시인, 작가, 극작가, 수필가, 평론가들과 그들 작품이 이에 속한다. 연해주 체험의 고려인 1세 문인들은 이미 노쇠하여 소진된 형세지만 거의 1백여 명을 헤아리는 그들 작품만은 빛바랜 《레닌기치》신문이나 앞에서 열거한 여러 단행본과 공동 작품집들에 활자로 길이 남아있다. 현재는 사할린서 옮겨온 고려인 2세와 탈북자 계열 현역문인 10여명이 고려인 한글문학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모국어를 통한 이들 고려인의 작품들은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에 피어서 한민족 문학의 또 다른 재료로서 적지 않은 문학사적 가치(文學史的 價値)를 지니고 있다. 문학이란 본시 언어와 문자를 매재(媒材)로 한 예술인데 바로 한글로 쓰여진 이들 문학작품은 속문주의(屬文主義)와 속인주의(屬人主義)에 부합한 한민족문학의 전형(典型)이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뼈아픈 근대사적 격랑 속에서 디아스포러적 수난을 겪으며 민족 정체성 찾기 등의 특성을 지닌 작품들이므로 새로운 한겨레 문학사에 포함시켜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2) 로시아어로 쓴 작가·작품 경우
여기서 논하는 대상은 앞에서 살핀 고려인 1세대 문인들과는 대조적으로 평소 중앙 아시아 현지에서 러시아 말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로어 작품집을 펴낸 경우이다. 흔히 한국어에는 서투른 대신에 로어로 발표한 만큼 전소련권에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도 적지 않다. 아나톨리 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고 추리작가였던 로만 김이나 음유시인인 율리 김도 널리 알려진 고려인 문인이다. 앞으로도 한글문인은 점차 줄어드는 대신에 러시아어를 통해서 작품 활동을 할 차세대 고려인 문인들은 자주 늘어날 터이다.
그런데, 이들 현지어를 활용한 고려인 작가의 작품들도 앞에서 논의한 한글 문학에 이어 부차적인 한국문학사 자료로 활용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 현지어 작품은 아무래도 앞에서 논의한 바의 속문주의(屬文主義)와 속지주의(屬地主義) 견지에서 러시아의 문학이면서도 동시에 고려인으로서의 속인주의적(屬人主義的) 성향이 없지 않을뿐더러 주제와 소재 면에서 보다 심층적인 재외한인(在外韓人)의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리차드 김(김은국), 이창래 경우처럼 영어로 쓴 소설작품이나 이회성(李恢成), 이양지(李良枝), 현월(玄月) 같은 교포작가의 일본어 소설을 번역판으로 읽는 속성도 참고 되는 일이다.
참고로 고려인 문단의 한글 사용현황과 중요성에 대한 견해를 살쳐보면 그곳 한인문학의 고민을 알아차릴 수 있겠다. 당시 강력한 소련체제하에서는 개인 작품집에서나 공동 작품집에서 솔직한 견해를 밝히기가 부자연스러우므로 대개는 서문이 생략되기 마련이지만 다음 같은 경우의 서문에서는 그 일부에서나마 숨은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소련에서 지닌 고려인 문학 위상의 중요성과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 본 것이다.
위대한 시월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출판되는 쏘련 조선인 작가, 시인들의 작품집은 우리의 문화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사변으로 된다. 이 작품집은 또한 조선인 문단이 쏘련에서 50년을 걸어온 , 당과 인민 앞에서의 문학창작에 대한 총화이기도 하다. ㅡ(중략)ㅡ
이와같은 조선 문화의 높은 발전으로 오기까지의 경로에로 우리의 우수한 문학의 대가들이 서 있었으며 이 대가들은 형제적 로씨야 문학의 태양 아래에서 현대 조선인 문화의 선구자들로 되었다. 필자는 포석 조명희, 조기천, 한 아나톨리와 같은 재능 있는 시인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무엇보다 고려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건 고유한 감성과 여사성을 지니는 문제를 고려인 자신부터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라며 강조한다. 조선어나 한글 쇠퇴로 인한 고려인문단 위기의식을 겸하여 작품집 출판을 건의하는 당면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본다.
1986년 봄, 모쓰크와 크레믈리에서 진행된 제8차 쏘련 작가대회에서 현재 다민족쏘베트문학은 78개의 민족어로 창조되고있다고 선포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조선말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어 쏘베트문학은 78개어가 아니라 77개어로 창조될 위험성이 없지 않다.ㅡ중략ㅡㅡ
1937년과 1989년, 그러니까 금년은 이주 52주년이 되는 해이다. 반세기 동안에 조선쟉가들이 출판한 책은 도합 13권에 불과하다. 이 수자 자체가 말하여 주듯이 쏘베트조선문학은 풍족한 생활을 누르지 못하였다. 그 존재자체에 대하여 론하기도 거북한 상태이다. 하기야 조명희, 한 아나똘리, 김준, 태장춘 같은 여러 시인들과 작가들이 훌륭한 작품들을 창조하였지만 그들의 많은 작품들은 아직 책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있다.
6. 나머지 과제
위에서 우리는 광복 60주년을 맞은 민족사적 시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 문단의 중요성과 그 실체를 통한 자료정리의 접근방법 등을 중심으로 논의 해 보았다. 어쩌면 다소 새삼스럽고 열띤 의욕이라 싶지만 오랜 분단(分斷)의 벽을 헐고 이질화가 깊어가는 남북의 문학을 풀어서 다시 하나로 엮는 열쇠를 바로 이곳 한반도 밖 한글문학의 메카에서 찾아보려는 탐색작업의 일환이다.
앞에서 살핀 바처럼 중앙아시아 알마타 중심의 고려인 문단은 1945년 광복 직후의 북한문단을 소비에트 문학으로 동화시키는 전초기지(前哨基地)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통일문학을 이루는 완충지대일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런 현장에서 분단시대 남북한 문학의 산 증인인 고려인 한글문단의 주역들을 비롯한 현지어 사용 동포 문인 여러분과 더불어 본국의 일선 평론가, 학자들이 자주 고려인 문학 세미나 등을 열고 진지하게 접근, 협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한겨레 통일문학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고려인 문단과 남북한 문학의 상관관계는 보다 연계적이고 입체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가까이는 대조적인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한글문단과 일본의 현지어(現地語)를 통한 교포문단은 물론이요 고려인 문단여건과 상이한 미주나 호주 등의 한인문단과도 대비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통일문학사, 한글문학
그리고 이런 세계 여러 지역의 한인문학(韓人文學)을 통한 새로운 문학사 정립(文學史 定立) 노력은 마땅히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걸맞을 만큼 거듭난 시각을 전제로 한다. 이제는 한반도에서 한글로 표현한 글만을 한국문학으로 치부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범세계화 추세에 부응할 만큼 한반도 밖의 한인문학들도 아우르는 한겨레 문학사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문학계 여러분의 참여나 행정당국의 협조와 지원이 따라야함은 물론이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이미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퍽 오랜 고려인 문단의 생생한 희귀자료들을 연구자들에게 개방한 바 있다. 아무쪼록 이 논문에서 다룬 고려인 문학의 자료 체계화문제가 세계 각지에서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한인들의 문학 성과물들을 제대로 분석, 정리하여 실용화하는 데 다소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핵심어: 고려인, 공동작품집, 구소련, 레닌기치. 선봉, 연해주, 조명희, 중앙아시아, 통일문학사, 한글문학
■ 이명재
문학평론가.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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