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조]
글 쓰는 선비의 처신을 비교할 때, 소나무가 자주 쓰인다. 논어의 자한(子罕)편에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날씨가 추워져야(歲寒)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란 말이다.
모든 나무가 잎을 털고 가지만 앙상하게 보일 때 소나무는 푸른 잎을 가지고 세상을 압도한다. 성삼문의 시처럼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 하는게 소나무다. 잡초처럼 사는 시정잡배들 사이에서도 선비는 독야청청의 기개를 버려서는 안 된다. 바람 부는 대로 밀려가며 세상을 사는 무리들은 지조가 없다. 글줄이나 쓴다는 선비가 그들과 함께 섞여서 구별할 수 없이 산다면 부끄럽지 아니한가.
나는 어젯밤, 늦게까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며 공자의 말에서 세한(歲寒)이란 말을 따왔다고 생각하면서 글 쓰는 선비들의 처신을 생각했다. 추사 김정희가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 하다가 헌종 6년(1840)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와 관련되어 제주 대정현에 유배되었을 때, 친구도 끊어지고 오로지 역관 출신의 제자 이상적(李尙迪)만이 중국의 귀한 책을 가끔씩 보내줘 그 고마운 마음을 그림에 담아 그린 것이 세한도다.
추사는 그 그림의 발문에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해외의 초췌하게 마른 사람에게 보냈다’라고 쓰면서 공자의 이 글귀를 그림의 제목으로 삼았다. 생각해보면 추사의 마음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소나무에 담고 있는 것이다.
가지가 축 늘어진 소나무를 낙랑장송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깊은 산사에서 도를 닦던 노승이 갑자기 득도하여 그 기쁨을 폭넓은 장삼에 담아 긴소매를 펄럭이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형용과 같은 것이 낙락장송이다. 또한 왕직방시화(王直方詩話)에 보면 큰 소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모양을 형용한 말로 구름의 그림자와 파도소리라는 말로 나타냈다.
크고 잘생긴 소나무를 목공(木公), 송목(松木), 창관(蒼官)이란 말로도 쓰는데 이것들은 모두 사람, 또는 벼슬에 관계된 말로 소나무를 올곧고 바르게 사는 선비에 견주어 쓰는 말이다.
윤선도는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난다/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이노라’라고 읊고 있다. 소나무의 절개를 그린 시조다. 모든 나무들이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이 떨어진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도 소나무만은 다른 나무들이 잎이 진 뒤에도 푸르고 싱싱한 잎을 지니고 당당하게 살아 간다.
김동리는 송찬(頌讚)이란 글에서 ‘진실로 솔은 충신열사의 고절, 은일선인의 초속(超俗)에 그칠 뿐 아니라 그 공덕에 이르러서는 성인의 대덕을 갖추었다 하겠다······. (중략) 오오, 솔이여, 솔은 진실로 좋은 나무, 백목지장이요’라고 쓰고 있다. 소나무는 당연히 모든 나무에서 으뜸이다란 결론이다.
이 모두가 소나무에 관한 예찬인데 따지고 보면 소나무는 나무 중의 으뜸이요, 사람과 함께 절개를 지닌 나무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절개는 아무나 지니는게 아니다. 사람답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사람, 올곧게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에게서 찾게 된다. 때문에 예부터 절개는 글 쓰는 선비의 전유물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오늘 날, 글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하는가를, 소나무를 보면서 스스로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삶의 방편으로 이루어지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말을 바꾸고 마음을 바꿔도 된다고 생각하는 선비들이 숱하다. 이 경우, 선비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꽤 이름을 얻은 사람들까지도 편하게 태도를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경우를 보고 아찔해진다. 부끄럽다. 과연 이 시대에 올바른 선비가 있고 선비정신에 목숨을 걸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세상이 하도 어지러워 선비가 없기 때문에 옛날처럼 바르게 사는 선비가 많이 나오라고 곳곳에 소나무를 심는가? 요즘 서울시내 곳곳에 새로 짓는 아파트에도 몇 십 년씩 자란 소나무를 이식한다. 보기도 좋다. 아파트의 정원에서, 거리에서도 소나무를 무척 많이 보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거짓말과 말 뒤집기가 횡행하던 한 해가 저문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점쳐지는 때, 추위를 이기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겨울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2009년을 마무리하련다. 겨울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 성기조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중국낙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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