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하]
동산의 무지개는 그대로 떠오를 것이렸다. 동산이 그대로일 텐데, 무지개가 신기루로 될 수 없고, 무지개 색깔이 변할 리가 없겠지. 어린 시절 고향의 동산위
로 영롱하게 뻗쳐오르던 무지개빛깔을 바라보며 색조의 구분과 감탄이란 걸 알아차리기 시작했던 기억이 그대로 마냥 새롭다. 고향을 떠나사는 지 50년을 훨씬 넘기면서도 어쩌다 타향의 하늘에 걸쳐지는 무지개를 바라보면, 고향의 동산무지개가 그대로 겹쳐떠오르는 게 조금치도 이상하거나 야릇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울의 하늘에선 무지개가 사라져버린 것인지 볼 수가 없다. 한없이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무지개를 바라보며 무지개는 왜 허공에만 뜨는 것일까 하고 원망스러워 하던 소년은 시를 읽고 외우며 자라서 이 나이를 지내온다. 그러니까 가슴속에 시를 품고 알기 시작하면서 시가 곧 무지개가 아닌가 혼동을 하면서 아니, 착각이나 실감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소년의 가슴으로부터 의식은 무지개와 시를 하나로 인식하며 하늘아래 감격을 불러일으키고 나름으로 역사를 해석하며 오늘과 내일을 헤아린다.
시대가 사뭇 급변하고 기우뚱거리다 못해 현기증을 달래며 살아야 하는 판국이다 보니, 무지개 따위야 그 무슨 얘기감이나 되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해야 할 것은 단 한 번 이세상에서의 기회를 아무렇게나 스쳐 지나갈 수는 없잖은가.
더군다나 한 쪽에서 인문 과학과 문학 예술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근자의 마당이다. 그렇게 문제가 야기되는 사안으로는 영상 매체와 대중 문화의 범람과 횡포, 거기다가 경제 논리의 최우선이라는 명제를 들지않을 수 없다.
이같은 첩경에서 정신을 다잡으며 가슴에 무지개를 안고 살기를 바라는 욕구는 버겁기만 하고 이단시(?)되기까지 할런지 모른다. 이자리에서 시정신을 새로이 다짐하고 경각심을 자발해야 할 핵심이다. 오류와 저속, 치기·천박의 타산으로부터 투철한 가치관으로 실행의 안목을 튼실히 지녀야 할 차제다.
본격 예술을 지향하는 데 시대 감각을 잃지않고 무엇(주제)을 어떻게(표현) 해야 할 것인가를 부단히 가ㅣ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한 켠에 실험적인 시문학 운동이나 사조, 시류를 무시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크게 보면 모두가 시의 본령에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는 우선 릴케의 체험 시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추구해오던 나름을 되새겨본다. 그러니까 물건너간 얘기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던 소년의 1차적 체험이 먼저라는 것이다. 1차적 체험없이 써놓은 작품이 어떤 독자(제2차)를 감동시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 때 유아 교육과 동화 구연 강의 시간에 몇 번이고 장조하던 말이 생각난다. 유아 교사가 유치원에서 동화 구연을 할 때에는 구연할 동화를 선택해서 교사 자신이 먼저 크게 감동을 받고 그다음 원생들에게 구현을 하라는 것이다. 1차으로 교사의 감동없이 원생들에게 2차적 감동의 효과를 바란다는 것은 한 마디로 터무니없는 억지일 따름이라는 말이다.
시인이라면 언제나 깨어나 탐구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돈독해야 한다는 기본이다. 보이지않는 세계의 진실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자기 수련과 도량을 가꾸는 성실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구상해서 쓸 때에도 '쓰지않고는 못 견딜, 도저히 배겨낼 수 없을 때 비로소 펜을 들라.' 는 잠언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도 고향의 언덕엔 무지개가 떠오르겠지. 고향을 떠나온 소년은 이제 노익장을 추스르며 시를 품고 무지개를 그리워하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려 안간힘 다한다. 정신을 놓치지않으려 안팎으로 눈빛을 밖고모아뜨면서.
■ 최은하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
[《한국현대시》2009년 하반기호 권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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