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아직 현대시조의 흐름을 못 짚어서 그런 것일까. 내 시조를 읽어본 몇몇 시조시인들의 평에 의하면 고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어본 즉 너무
시형에(특히 글자 수에) 얽매어 있다는 것이다. 시행의 배열이 항상 삼장 형식으로 된 것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조란 엄격한 형식을 지켜야 하며 글자 수 또한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왜냐하면 ‘시조’는 문자 그대로 정형시이기 때문이다. 혹시 어쩌다 예외를 범하는 경우는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인이 의식적으로 시형을 파괴하거나 파격을 지향한 시를 어찌 바람직한 정형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바람직한 정형시는 그 어느 때나 정형을 고수한 시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정형을 일부러 파괴하는 시도를 계속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두가지 이유에서 비롯할 것이다.
하나는 전통적 정형시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시조의 정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이 경우는 그 파격이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형성의 확립에 있는 까닭에 시조의 정형성을 부정하는 행위는 아니다. 따라서 이와같은 태도에서 전통적 시조의 정형성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시인들은 하루 빨리 ---최소한 그 자신 만의 것이라도---새로운 시조의 정형성을 확립하여 그나름의 일관된 새로운 정형성으로 시조를 창작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매 작품마다 다른 파격의 시조를 매번 창작한다면 그는 결코 정형시의 작가가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고 싶은 의사도 없는 시인이다. 그러한 분들은 차라리 시조를 포기하고 자유시를 써야 할 것이다.
둘째는 자유시 창작을 동경하여 시조를 자유시화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자유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바람직한 정형시의 창작이 될 수 없다. 이들 역시 진정한 시조시인이 되기 힘들다. 차라리 시조를 포기하고 자유시를 창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조는 원래 정형시이고 정형시가 아닌 것은 시조가 아니다. 따라서 시조의 현대성이란-새로운 정형시형의 확립을 제외할 경우-그 형식의 일탈이나 파괴로 이루어질 수 없다. 즉 형식적 차원에서는 논의될 수 없다. 형식이 사라지면 시조 그 자체가 사라지는데 어떻게 ‘없는 시조’를 두고 현대성을 운위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현대성을 운위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내용적인 측면(소재적 측면)이나 어휘선택 수준에서 가능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오늘날의 자유시는 정형시의 해체에서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원래 자유시 즉 ‘vers libres’란 문자 그대로‘자유로운 운문’ 즉 다소의 파격을 지닌 운문 정도를 뜻하는 말이다. 이것이 고전적 개념의 자유시이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요즘 우리 시조시단에서 쓰이는 파격적인 시조는 모두 고전적 개념의 ‘자유시’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18, 19세기 유럽에선 그같은 고전적 개념의 자유시를 썼던 것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오늘날의 산문시에 준하는 자유시를 쓰기 위한 하나의 도정이자 방편이었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오늘날에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완전하게 자유로운 자유시 즉 산문시 자체가 널리 보편화되어 있음으로 굳이 ‘고전적 개념의 자유시’ 즉 파격으로서의 정형시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조는 어디까지나 엄격한 정형을 고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유시가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날 그것이 존재해야 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 오세영
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경남문학관 '화요일의 문학이야기'(2010.9.14) 발표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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